-
-
뾰족한 전나무의 땅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평점 :
세라 온 주잇 - 뾰족한 전나무의 땅
전국적으로 눈이 펑펑 내리고, 얼어 죽을 것처럼 추운 시기에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소설을 읽게 되다니 이것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라 온 주잇은 주로 메인주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온 지역주의 소설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이런 훌륭한 작가를 이제야 안 걸까, 궁금했는데 현재 번역된 작품은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뾰족한 전나무의 땅>이 전부인 것 같다.
글을 쓰는 화자가 쇠락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하숙을 치는 토드 부인과 함께 지내며 여름을 보내는 이 몇 달간의 이야기가 얼마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지, 마을 사람 하나하나에게 조금씩 지면을 양보하고 그들의 과거와 좋은 점을 소개하는 소설의 형식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감탄에 감탄을 반복했다.
어느 공동체든 자기들 일에만 함몰되어 난잡한 싸구려 신문만 읽고 바깥 세상 이야기를 접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쪼그라들고 끔찍한 무지만 자라납니다. -34p
"만나러 갈 엄마만 있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살 수 있는 거야!"-59p
토드 부인의 이 명랑한 한 마디에 얼마나 큰 행동이 깃들어져 있는지, 여러번 반복해서 읽었다. 60대의 토드 부인이(이 책이 출간되던 시기는 1896년) 80대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다고 고백할 때, 건강하고 정정하신 모습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을 때 독자들도 똑같이 즐거웠으리라.
"세상에 이렇게 풍경 좋은 곳은 없을걸요?" 아무래도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 없는 꼬마에게 어울리는 말이었지만, 나고 자란 거친 땅을 소중히 여기는 그를 보면 누구든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실연을 당하고 거친 파도 뒤, 무인도에 숨어 혼자서의 삶을 살아간 조애나의 이야기는 마법 같았다. 추운 겨울밤이 걱정 되기는 했지만 이웃들의 적절한 관심과 배려로 잘 버텨낼 수 있었기를 바란다.
이 책의 주인공이 누군지에 대해 역자이자 해설가인 임슬애씨가 내놓은 답은 이 소설 속 마을 <더닛 랜딩>이다. 더닛 랜딩의 자연 그 자체다.
농업과 어업이 주 일거리인 이 작은 마을. 허브가 지천으로 피어나며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보이는 이곳. 다정하고 마음씨 좋으며 서로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경 쓰는 이웃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헤어짐 앞에서 툴툴거림과 외면을 택한 토드 부인의 마음,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던 그녀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 소설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