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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2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평점 :
올가 토카르추크 - 태고의 시간들
한줄평 : 신이 아둔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뜻을 이해시키려 작가를 보냈고 그 작가는 올가 토카르추크다.
폴란드의 작은 마을 <태고>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어낸 이야기 <태고의 시간들> 과연 올가 토카르추크가 왜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인지 알게 된 작품이다.
성경과 신화, 역사와 일상의 조화가 이렇게 완전할 수 있다니.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계속 귀 기울이며 모두에게나 공평하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작가의 배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외면 당하고 또 그들에게 죽임 당할 수도 있는 신. 모두가 다른 선택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살 것 같지만, 다시 똑같은 삶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에게 손 때 묻은 <사물>이란 사실까지. 이 신선한 충격을 계속 받으며 나아가다 보니 500페이지 가까운 이 소설이 조금도 버겁지 않았다.
창공처럼 무겁고, 무한한 연민. 이것은 천사들이 가진 유일무이한 감정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순수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천사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감정,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순수한 감정은 모두 <연민>으로 표현된다. 전쟁과 기근, 반목이 계속되던 어두운 근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모두의 <연민> 때문이 아니었던가.
인간의 세계를, 그들의 삶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작가이기에 그녀가 풀어낸 이 대담한 서사는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주목하고 있다. 여전히 계속 되는 힘. 죽는 줄 알면서도 생명을 잉태하고 또 반복하는 삶의 의미.
올가 토카르추크를 처음 만나본 독자라면 아마 누구나 다 놀랄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스케일이 큰 장편 소설, 폴란드 문학이란 낯선 생김새에 겁먹었지만 의외로 읽어보면 그들의 삶이 우리의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떤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 전, 우리의 시대를 미리 지나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