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죽음
제임스 에이지 지음, 문희경 옮김 / 테오리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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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

 

제목이 무척이나 우울하다.

제목처럼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가족의 죽음을 각각의 구성원들의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우울하고 음산해 보이지만 이야기 속에는 가족의 사랑이 듬뿍 녹아있다.

 

얘가 내 아들이외다. 따스한 사랑이 전해졌다.

가족을 사랑하면서 외로웠고,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떨쳐내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이들 부분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구절이다.

사실 사랑하는 가족과 살아가면서 때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완전히 알고 이해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람을 살아가면서 섬이라는 느낌을 종종 받고는 한다. 그래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갈 때 가장 풍요롭다. 그런 풍요로움이 책에 넘친다. 그런데 그 풍요로움을 가장의 죽음으로 인해 흔들린다.

가족의 죽음은 상실과 단절을 의미하는데, 역설적으로 다시 연결이 된다.

우리나라 장례식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겠다. 장례는 끝이자 시작이다. 더 이상 소통을 할 수 없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남아있는 자들이 서로 다시금 이어진다.

가족의 죽음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전하는 자의 아픔과 받아들이는 자의 슬픔, 분노,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감정은 간접적으로 느낀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결코 이런 슬픔을 알지 못 한다.

 

누구나 언젠가는 가야하는 거잖아.

삶의 초점이 되돌아왔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인정해야 삶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인정하지 못 하면 죽음의 그늘에 잡아먹히게 된다. 가족의 빈자리를 인지하는 순간 멍한 상태로 밤을 지세우고는 한다. 그러면 집안이 허전해 보인다. 이제 두 번 다시 죽은 자와 함께 누렸던 일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의 죽음은 추억과 회한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서 가족들 사이에 용서의 과정이 일어난다.

죽음이란 불길한 소식을 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머리가 멍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지옥이지. 생지옥, 지옥이 따로 없다.

 

받아들이기까지 버티기 과정이 있다. 상실의 아픔을 받아들이면서 치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이걸 일종의 시험이라고 말한다. 선택이 등장하고, 종교 이야기가 책에 넘친다. 종교 이야기는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다. 개인적인 면도 있지만 보편적인 면에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에 책이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가장 마음에 든 구절은 집에 갈 시간이구나.’ 이다.

기다려주는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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