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 현모양처 신화를 벗기고 다시 읽는 16세기 조선 소녀 이야기
임해리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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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조선시대의 삶과 생활상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의 과거 이야기는 어땠을까 궁금했는데, 사임당 책이 일정부분 호기심을 해결해줬다. 책은 조선시대 사임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환경까지 살펴봐야 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여자들의 삶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책은 가치가 상당히 높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조선의 남녀는 평등했다고 말하고 있다. 읽으면서 무척이나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전기 여성의 삶과 성리학이 들어오고 난 뒤는 크게 변화한다. 성리학은 지금도 비판을 받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이다. 남녀와 귀천을 나누는 성리학은 지배계층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성리학이 조선에 팽배하게 되면서 신분의 귀천이 극명하게 갈린다.

여성의 평등과 위치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역사적으로 잘 알지 못 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기존에 배우고 알아왔던 내용과 약간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시각에서 봐야 하는 지도 분명하지 않다. 보는 각도에 따라 조선시대 전기 여성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자료집을 좋아한다. 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사람의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기 위함이기도 하고, 보다 충실하게 바라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자료들이 무척이나 충실하다. 모르고 있던 내용들을 알게 됐고, 사임당이 살았던 조선시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녀가 왜 현모양처로 틀에 박힌 여인이 되어야 했는지도 알았다.

처가살이와 재산분할, 제사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처가살이는 알고 있던 이야기였지만 자녀균분상속 재산분할은 금시초문이었다. 16세기에 남녀 구분 없이 일반적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부분도 모르고 있던 내용이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문중이 형성되고 종손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뒤에야 남자가 제사를 주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신빙성있게 증명하기 위해서 사료집에서 발췌한 내용들이 실려 있다.

일제 강점기시대의 산물이 우리 교육계에는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잘못된 역사인식을 뿌리 뽑고, 한국의 역사관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상당히 가치가 높다. 이런 책들이 보다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1장에 사임당이 살았던 시대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무척 마음에 든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인물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사임당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과거 기록의 부실로 인해 사임당을 추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만으로 과거를 역추적하면서 사임당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

사임당은 어린 나이에 스스로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자가 호를 받는 다는 건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름과, , 호 등을 가지고 있었다. 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덕망, 학문, 예술 등이 뛰어난 자들이었다. 호는 대부분 남이 붙여준다. 그런데 스스로 호를 지은 것은 철부지 행동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뜻을 높이 세운 것이기도 하다. 사임당의 경우는 후자였다.

사임당의 글씨와 그림은 하나의 예술 그 자체이다. 대표작인 포도도5만원권 화폐의 앞면 그림이기도 하다. 오만원권을 유심히 살펴보면 신사임당의 예술 세계까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사임당이 살아온 행적과 조선시대의 삶, 사상 등이 매우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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