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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평점 :
파일럿 피시
표지를 넘기면 책 가장 앞부분에 심사평이 있다. 심사평을 읽고 난 뒤에 일독하면 책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문장이 참으로 유려하다. 청아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아름답다. 사랑을 다루는 청춘소설이자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소설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읽다보면 머리가 아프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파일럿 피시에서도 약간 헤맸다. 하지만 파일럿 피시에는 흐름을 부드럽고 깔끔하게 끌고 가는 힘이 있다. 잔잔하게 느껴지는 흐름에서 참으로 매력이 철철 넘친다.
살아가다 보면 사랑을 하게 된다.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가고 때로는 예기치 않게 헤어진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과 이별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3년간 만났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이 19년이라면 어떨까? 전화에서 들려오는 여자 친구의 목소리를 단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까?
주인공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의식과 무의식 아래 그녀와 보냈던 추억들이 쌓여있기 때문이리라! 한 사람이 서있는 위치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과관계가 엮어 있다. 그리고 그 인과관계에는 진하고 흐린 것이 뒤섞여 있다.
뜨겁게 사랑했던 여자 친구와의 인연은 진하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잊지 않았을 정도로 말이다. 평소에는 무의식적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막상 예전의 인연을 다시 접하게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 책에서는 수족관이 등장한다. 수족관의 생태계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단순한 설명이 아니다. 수족관의 생태계는 사람의 인생과 똑같다. 단지 크고 작을 뿐이다. 그냥 작은 세계라고 느꼈던 수족관에 이처럼 복잡한 자연의 이치가 있을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남과 여가 만나면 누가 누구를 보호할까? 사실 이건 의미가 없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한다. 보호 역시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쌍방통행으로 이뤄진 사랑은 서로를 따뜻하게 보호한다. 예전에도 생각했던 부분인데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알고 있던 이야기들도 되새기지 않으면 희미해져간다.
편집자를 희망하는 남자 주인공이 직장을 얻는 과정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결국 원하는 대로 편집자가 되기는 하는데, 취업한 출판사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남자들이라면 원초적으로 선호하는 도색잡지의 편집자!
그저 단순하게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출판사의 인연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인연이란 언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른다. 단순하게 여겼던 인연이 끝까지 이어지고, 한없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던 인연이 바로 끊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라 애절하고, 또 그렇기에 더욱 아름답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에 보다 환하게 불타오를 수 있다. 만약 시간의 한정이 없다면 늘어지거나 나태해지지 않을까?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지만 아프고 애절한 건 여전히 안타깝다. 그래서 더욱 불멸의 인생이나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아파한 경험이 있거나 지금도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망각하고 있던 사랑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추억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도 재조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