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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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또는 도서관에 관한 6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책에 이야기가 여섯 개. 하나 씩 읽기 편합니다. 화장실 들고 가서 한 토막씩 읽고 오면 딱인 책입니다(아닌가^^). 이야기는 다르지만 책에 관한 다양한 상상이 있다는 점에서 카를로 프라베티의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가 떠올랐습니다.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독서클럽 번개로 진행된 선정도서였기 때문입니다. 소설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환상도서관>을 만나고 또 다른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 책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분명 특별한 일입니다. 책에 관한 소소한 판타지라고 했는데, 주제가 책이다 보니 쉬이 읽고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더라구요. 책이 좋아서 사고, 읽고, 소장하기를 반복하다보니 삶과 삶의 공간이 책에 치입니다. 기회가 되면 거부하지 못하고,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돈 걱정은 잠시 잊어버리고 아내의 잔소리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굳게 믿어버립니다. 책 놔 둘 공간이 부족해서 책장을 더 들여야 하는데, 해결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책을 파는 겁니다. 그래도 책을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면 살을 에는 아픔을 견뎌야지요. '나는 우편함 자물쇠를 열었다'로 시작하는 두 번째 이야기 [집안도서관]은 우편함을 열 때마다 책이 들어있습니다.(이렇게 좋은 우편함이 있다면 값을 따지지 않을텐데...^^) 보낸 사람도, 언제 보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우편함을 열 때마다 분명히 책이 들어 있습니다. 화수분이 따로 없지요. <환상도서관>은 번역된 제목이고 원제는 입니다. 그리고 이 책도 큰 상을 받았습니다. 2003년 World Fantasy Award. ▶ 벽돌책장 -> 책을 파는 수 밖에 읽는 내내 공감, 또 공감! . 자물쇠를 열 때마다 책이 나오는 우편함은 없지만 책에 잠식당하는 삶에 가슴이 시렸습니다(가슴이 시리기까지...^^). 그런 진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집안도서관]편의 많은 부분을 옮겨 봅니다. 나머지 다섯 편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책에 대한 풍자+판타지. '<세계문학>을 차가운 타일 위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거의 신성 모독에 가까울 정도로. 집 안으로 들어오자 이번에는 책을 어디에 놓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문가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다가 결국 좀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탁자에 올려놓기로 했다. 최고의 해결책은 책장이다. 책이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칙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책에 아무리 많은 공간을 할당해도 항상 부족하다. 처음에는 벽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는 발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천장만이 그 침공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곳이다. 짐가방을 한 번 더 채워오면 작은 탁자의 가는 다리가 책 무게 때문에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하지? 가벼운 신발을 놔 두는 화장실 입구가 책더미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양말만 신고 움직였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감기에 걸릴 위험은 없었다. 새 책을 놓을 자리를 찾는 수 밖에 없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가구가 무엇일지 생각하느라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침대로 결정했다. 어쨌든 오늘밤에는 필요 없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책으로 막을 시점이 되자 나는 식기와 수저는 포기해도 냉장고와 소형 스토브 정도는 꺼내오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커다란 물건을 갖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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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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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라 가는 선암사 이야기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이 나왔다. 밤 늦게까지 읽다가 아내에게 우리 내일 선암사 놀러 가자고 했다. 이런 제안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멀지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은 절을 연애시절 서너 번 찾았다. 집 근처에 있는 절도 즐겨 가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별난 경우다. 그 특별함이 별다른 추억이 있거나 불심佛心이 깊어서가 아니다. 절이 이뻐서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지나친 수식어가 들어가는 것 같고, 그래 선암사는 '이쁜'절이다. 그렇게 아끼는 절을 2년째 못 가보고 있다. 아내는 잊을 만하면 선암사 한 번 가자 노래를 불렀고 나도 매번 그러자고 답했지만 그렇게 2년이 흘렀다. 






▲ 사월초파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등을 배경으로 책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묵직한 카메라 가방 뒤쪽에 책을 넣었다. 절의 가장 이쁜 장소를 골라 책사진을 찍어 오리라 다짐했건만 절 구경에 깜빡 잊고 절을 나와 사하촌에 다 와서 찍은 사진이다. 초파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초파일이라 이런 멋스러운 사진을 찍었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월초파일이 우리의 절구경을 망쳤다고 한다면 지극한 이기심의 발로이겠지만 철거되지 않은 행사 시설물과 연등은 우리가 늘 보아오던 선암사가 아니었다. 연등을 피해 꽃 구경하기 힘들 정도였다.









절구경의 시작은 사하촌에서 절까지 걷는 산길이다. 책에서 유홍준 교수는 건축가 김수근의 글을 빌려 "좋은 길을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 수록 좋다"라고 했는데, 선암사를 향하는 길은 이렇게 넓어질 대로 넓어졌다. 이 길이 오솔길이었다면 산길을 걷는 사람과 자연의 간격이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좋은 길이란 것이 이렇게 산길이나 고향으로 향하는 길이라면 '나쁜 길'이 뭔지를 한참 고민을 했다. 로마시대의 도로가 생각났다. 로마가 그렇게 넓은 영토를 정복하고 통치할 수 있었던 배경에 잘 닦여진 '도로'가 한 몫 했는데, 그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침략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          放出曺磎 一派 방출조계 일파                                    放出曺磎 一派淸 방출조계 일파청


p189. 요즘 학생들은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도 못 읽어 큰 문제인데 어느 해인가 제법 한문에 관심이 많아 한문강습소도 다니는 기특한 녀석이 여기에 이르자 먼저 달려가 읽어보고는 내게 자랑삼아 해석해 보이는 것이다. "선생님, 조계 일파를 방출하자, 데모 구호를 써 놓은 건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제대로 해석해주려고 원문을 읽어보니 마지막 한 글자가 돌무더기에 파묻혀 "방출조계 일파(放出曺磎 一派)"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학생의 번역이 틀렸다고 말할 수가 없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불교의 선맥을 말한 이 멋진 법구가 '맑을 청(淸)자가 빠져버리니 태고종의 데모 구호로 바뀌고 말다니. '맑을 청'자 하나.


그래도 열심히 읽어 석주를 보자마자 셔터를 눌렀다. 처음 찍은 사진은 오른쪽의 '맑을 청淸'자가 보이는 것이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옆에 있던 큰 돌 하나를 주워 '청淸'자를 가렸다. 그것이 학생이 해석한 '조계 일파를 방출하자'이다. 사진을 찍은 후 '청淸'자를 가린 돌을 다시 치웠다. 책에 있는 것은 다 찾아 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이런 엉뚱함까지.









▲ 조계사 승탑밭


일주문 지나 절 가는 길 또는 절간 뒤에서  만날 수 있는 승탑을 모아 놓은 곳이다. 선종 계열이 선승이 많고 사리를 보관하는 승탑이 많다. 승탑밭의 많은 기물들은 선암사의 내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승탑전(田 또는 展)이라 쓰는데 유홍준 교수는 부러 승탑밭이라 쓰는 것이 더 선적(禪的) 여운을 느낀다고 했다. 


p181. 고려 때까지만 해도 고승들에 국한해 승탑을 모셨던 것 같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조선불교가 다시 일어나면서 승탑이 크게 유행해 절집마다 내세우는 스님은 거의 모두 승탑을 모시면서 형식도 팔각당에서 종, 연꽃봉오리, 달걀 모양 등 여러 형태로 간소화되고 변형됐다. 이것은 분명 조형성의 쇠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그 대신 승탑들을 한곳에 모심으로써 집체적 조형성, 요즘 현대미술로 말하자면 설치미술 같은 조형효과를 갖게 되었다.





▲ 선암사 승선교.


선암사하면 첫 이미지는 '승선교' 일면 무지개다리다. 선암사 제1경도 승선교 너머로 강선루를 바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래에 보는 바와 같이 '강선루'는 보수 공사중이다. 다리 너머 '강선루'가 없어도 승선교는 선암사 제일이다. 실제로 보았을 때보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더 이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책에서 말하는 좁은 길로 굽이 가는 것은 상상속 이야기다. 돌아가면 되지 않으냐고 반문할 지 모르나 큰 길을 옆에 두고 좁을 길을 가는 것과  좁을 길을 따라 가다가 승선교가 살짝 보이는 것은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좋은 길을 좁을수록 좋다"는 말이 실감난다.




벌교 홍교(무지개 다리), 사진출처 - 네이버백과사전


선암사 스님들은 승선교 만드는 실력으로 벌교의 무지개다리(보물 제304호)까지 놓았단다. 아치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두 다리라고 하지만 속세의 다리와 깊은 산중의 다리는 뒷 배경만큼 느낌이 다르다.










강선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널리 퍼뜨린 말이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이 당대의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바친 발문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이다"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강선루 앞에서 이 말을 새삼스레 떠올린다. 내가 선암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강선루'는 없었다. 오직 '승선교', '해우소', '삼인당', '야생차밭', '꽃나무 많은이쁜 절' 이게 전부다. 몇 번을 왔어도 내 기억에 승선교 뒤에 강선루는 없었다. 이번에도 강선루는 없다. 보수작업중이라 하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삼인당 연못.


절 앞의 연못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선암사 입구의 삼인당 연못은 종교적, 토목공학적, 미학적 뜻이 모두 담겨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종교적이라 함은 '삼인당' 이름에서 연유하는데, 제행무상, 제법무상, 열반적정 등 세가지 새김(印)이다. 마음속에 불법의 원리를 각인한다는 뜻이다. 토목공학적 의미는 삼인당의 구조가 타원이고 그 안에 섬이 있다는 점이다. 비스듬한 경사를 두고 있는 지형 탓도 있지만 원이 아닌 타원은 다양성을 위한 것이다. 책에서는 달걀처럼 생긴 섬이라 했는데 물이 없으니 봉분처럼 솟은 모양이다. 가운데 섬 덕분에 왼쪽도 물의 흐름이 생겨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못 가운데 섬의 미학적 배려를,  "하나의 공간에 나타난 물체는 또다른 공간을 창출해낸다"는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의 '무대지도(state geography)로 설명한다.


삼인당을 지나가는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세운데. "서~" "왜?" "서~~어!" "아니 왜?" "서어!" "아니 왜 서라고 하는데?"라고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고 고개를 돌리니.....









[서어나무]가 버티고 서~어^^ 있다. 아~~~! 3년전 우리 동네 식물원 기억이 난다. 꼭 3년이 되었다. 3년만에 아내의 복수다. 뒤끝있는여자다.

▶ 우리 동네 식물원 이야기









▶ 선암사 해우소


선암사 하면 '해우소'를 먼저 떠 올리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선암사 '명물(?)'이다. 목조 건물이 이뻐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지만 외양보다 의미가 있는 것이 뒤간의 매커니즘이다. 낙엽을 모아 깔아 놓으면 인분과 섞여 자연퇴비가 된다. 농사용 거름으로 사용했음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스님들의 인분은 좋은 퇴비가 되지만 세속인들의 인분은 먹은 것 만큼이나 뒤도 고약해 좋은 거름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연에 순응하지 않는 삶은 배설물조차도 쓸모가 없구나. 









p199. 시인 정호승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 1999).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의 시를 어느 스님이 각刻을 해서 뒷간에 걸어 두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이제 이것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호승의 시가 아니던가?









선암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꽃과 나무다. 절집 건물들이 어느 것 하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어 작은 꽃나무들과 어울린다. 선암사를 처음 찾았을 때 느낌을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어느 부잣집 한옥에 온 느낌'이라고 했다. 절이 주는 종교의 엄숙함도 대웅전의 웅장한 위압감도 선암사에는 없다. 절 계단 올라가는 곳, 담장길 따라, 가람배치에 따라 꽃과 나무를 심었다. 선암사에 꽃이 없는 곳은 마당과 법당뿐이다.


이 책 p175에서 p180까지는 유홍준의 선암사 꽃과 나무에 대한 '헌사'다. 조선의 3대 '구라', 신흥구라 유홍준의 진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봄,여름,가을,겨울  선암사에 피고지는 꽃나무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읊었다. 어느 랩퍼가 이리 신나게 떠들수 있을가 싶을 정도로 흥이 느껴진다. 









선암사 무우전 매화나무.


사월 초파일이 지나 매화는 떨어졌지만 무성한 푸른 잎이 매화나무의 규모를 가늠케 한다. 육당 최남선의 글이 몇 편 인용되는데, 선암사를 다섯시간 넘게 산길을 걸어 찾아온 육당이 피곤해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지난 밤 매화를 미쳐 알아보지 못한 억울함에 이런 글을 남겼다.


p201. 이럭저럭 '굴묵이' 넘어온 피곤을 잊어버리고, 무엇인지 코가 에어져나가는 듯한 향기를 맡으면서 청량한 꿈을 찾아들었다. 이튿날. 일뜨며 창을 밀치니 맑고도 진한 향기가 와짝을 들이밀어 코로부터 온몸, 온 방안을 둘러싸버린다. 새빨간 꽃을 퍼다 부은 춘매가 바로 지대 밑에 있는 것을 몰랐었다. (.....) 이러한 미인이 창전(窓前)에 대령한 줄을 모르고 아무 맛 없이 곱송그려 새우잠을 자고 났거니 하매, 아침나절에 입맛이 쩍쩍 다시어진다.


지나간 밤은 다시 오지 않는 법.....








권력이 좋구나. 옳은 일, 해야 될 일이라 생각해도 깜냥이 안 되면 무엇이랴? 유홍준은 선암사를 드나들 때마다 이런 것이 천연기념물이 되지 않으면 무엇이 천연기념물이냐고 생각했다. 문화재청장 시절 박상진(농학박사), 이은복(이학박사), 안형재(매화연구원장) 전문가 세사람한테 전국의 노매老梅를 조사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용역을 의뢰했다. 그리하여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장성 백양상의 고불매, 구례 화엄사 백매, 그리고 선암사 무우전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뒤에 야생차밭이 있다. 길을 안내하는 것은 오솔깊 옆으로 도열한 키큰 전나무지만 전나무 사이 산속으로 시선을 돌리면 지천이 야생차밭이다. 야생차에 익숙하지 않고, 보성차밭처럼 계단식으로 정리된 것만 아는 이들에게는 익숙치 않을 것이다. 차배지에서 생산한 야생차는 화개가 으뜸이고, 순 자연 야생차는 선암사가 최고다. 선암사를 구경하거든 경내만 둘러보지 말고  절 뒤 야생차밭에 눈도장 한 번 찍고 오시기를....



 

선암사 절 뒤 야생차밭을 걸으면 나도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2005년 봄 카메라 동호인들과 아침 일찍 광양매실마을 둘러 보고 선암사에 도착했다. 그 당시 여자친구이면서 지금은 아내인 여인과 야생차밭으로 걸어가다가 섬진강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다음 날 카메라 동호회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섬진강에서 나고

섬진강에서 자라고

섬진강에서 살며

섬진강에서 시를 쓰고

섬진강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김용택 시인을 어제 뵈었답니다.

선암사에서 절 뒤에 있는 야생차밭을 구경하고 나무 그늘에서 조금 쉬다가 내려오는데

작달막한 키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걸어오시는 시인을 뵈었지요.

아이보다 더 순수한 얼굴은 사진으로 보나 실제로 보나 똑같았습니다.

제가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조금 당황해 하시길래

'선생님! 저 팬입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그제서야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하시더라구요.

악수를 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드렸는데 다음에 뵐 수 있을런지....

무슨 구실로 어떤 인연으로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런지....

아무튼 이래저래 기분좋은 하루였습니다.

 


그 다음날 조간에 '남도의 봄'을 주제로 한 섬진강 시인의 시와 매화사진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드렸는데 다음에 뵐 수 있을런지....무슨 구실로 어떤 인연으로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런지.....


 











강수연이 묶었다는 선암장 208호실은......


선암사를 답사하면 반드시 들린다는 단골 여관 선암장이다. 계곡 가장 가까이 붙어 있고 동네 토박이가 운영하는 곳이어서 인심이 좋아 단골이 되었다는 선암장이다. 여관주인 아주머니가 답사 선생님 배려한다고 교도소 독방만큼 작은 208호실을 선심쓰듯 내어주는데, 유홍준은 주인아주머니께 "코딱지만한 방을 하나 주면서 웬 생색을 그렇게 내셨수" 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그래봬두 그 방은 「아제 아제 바라아제」영화 찍을 때 강수연이 보름간 자고 간 방이여. 뭘 줘도 몰라"


우리 부부도 사하촌에서 선암장을 찾았다. 그러나 강수연이 보름이나 자고 간 방은 둘째치고 유홍준이 팁까지 줘서 후하게 부탁한다는 산채비빔밥도 못 먹었다. 선암장은 장사 안 한지 1년이 넘었단다. 이제 강수연이 보름이나 자고 갔다던 208호실은 언감생심이다. 









조만간에 선암사 한 번 더 간다. 다녀와서 다시 읽으니 놓친 곳이 한 두곳이 아니다. 다른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책따라 선암사를 다녀왔고 또 다녀올 계획이지만 이 책을 벗어나야 나만의 선암사가 각인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선암사를 위해 많이 읽고 찾고 보고 느끼는 수 밖에 방법이 없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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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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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식이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1. 이해인 수녀님 소식을 듣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곁을 떠나신 여러 분들처럼, 마지막 소식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서였습니다.

몇 년째 암으로 투병하고 계십니다.




2. 최근에 박완서 선생님 다큐에서 수녀님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큐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 글할 길이 없네요.

크고 좋은 화면으로 찾아봐야겠습니다.




3. 중학교 1학년 보충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과 관계없는 프린트물을 내 주셨는데

거기에는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도 있었고, 피천득 선생님의 "엄마"라는 수필도 있었습니다




4. 제가 수녀님을 처음 인지한 것이 중학교 1학년,

국어 보충수업 시간 프린트물을 통한 수녀님의 시 "몽당연필"




5. 그 뒤 서점에서 <민들레 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내 혼에 불을 놓아> 등을 

구입해서 읽고 또 읽는 수녀님의 팬이자 문학소년이었습니다.




5. 새로이 들은 수녀님 소식은 다행히 새 책 소식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산문집을 새로 내셨습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를 여러번 속으로 외쳤습니다.




6.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많은 생각을 몰고 오는 제목입니다.

꽃의 화려함을 뒤로하면 다른 많은 것들이 보이는데

우리는 꽃의 화려함에 정신을 잃고 잎의 푸르름을 보지 못합니다.




7. 글은 언제나 그랬듯이 쉽고 담백합니다.

미사여구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심심하겠지요.

그러나 수녀님의 오랜 독자들은 솔직함, 담백함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8. 작년에 가신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김점선 화가, 장영희 교수님, 이태석 신부님 등등...

살아있는 이들보다 떠나신 분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9. 시인은 항상 작은 것도 소흘히 한 적 없는 분이셨지만

투병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떠나고 없음에 

이전과 다른 묵상을 하셨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10.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동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이해인, <잎사귀 명상> 전문







11.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주시기로 했는데,

먼 곳으로 가시는 바람에 1년전 받은 편지로 추천사를 대신 했답니다.














 

12. 암투병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p253. 어느 날 내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추기경님이 오히려 먼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오셨다. 당시에 나는 평생을 기도하고자 수도원에 온, 말하자면 봉헌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몸이 아플 때는 사람들이 문병 와서 계속 기도만 해주는 것에도 거부감이 생겼다. 물론 수도자로서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의 고통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했지만, 열이면 열 명이 모두 그렇게 말할 때는 야속한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적인 위로를 먼저 해주고 그 다음에 기도하라고 해도 늦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내게 누구보다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셨던 분이 바로 옆방에 입원해 계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이었다. 병실로 불러 주셔서 내가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그분의 방에 갔을 때, 추기경님이 나한테 물으셨다.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

 그래서 내가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라고 대답했더니 추기경님은 무언가 가만히 생각하시는 듯했다. 나는 추기경님이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대단한 고위 성직자이고 덕이 깊은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주님이라든가 신앙, 거룩함, 기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추기경님은 연민의 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딱 한마디 하셨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그 한마디, 인간적인 위로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추기경님의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종교적인 의미와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덕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처럼 인간적인 말을 하는 것임을 그날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힘든 치료를 하는 이들에게 종종 "대단하세요, 정말!" 하며 추기경님의 그 표현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한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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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창의력 키우는 놀토 - 현직교사 짱아샘과 떠나는 체험학습 여행
장은숙 지음 / 하서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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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창의력 키우는 놀토












▶ 우리아이 창의력 키우는 놀토. 장은숙







지인들한테 마르고 닳도록 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부하고 여행가자" 

어느 겨울 날 외로움에 몸서리치다가 겨울 바다 보고 싶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면 공부하고 여행가자.

집 나가면 돈 깨지는 거 일도 아니고, 다시 떠나기 쉽지 않은 우리네 상황에서 시간은 천금이다.

여행 비용의 5분의1 아니 10분의 1만 투자해서 여행지와 관련된 책 한 두 권 읽고 가자.

지천에 널린 것이 여행 정보라지만 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콘사이스다. 

여행지 가서 기나긴 설명문 정독은 것은 천금을 낭비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 창의력 키우는 놀토. 장은숙. 블로그 닉네임 '짱아'. 

국내 여행 블로거 중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고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사람이다.

그녀의 글과 사진은 어느 여행 블로거보다 감성과 지성이 깊게 배어 있다.




여행 책을 낸다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들었고, 책이 마무리 될 즈음 책의 성격을 물었다.

자녀와 함께 여행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여행서적이란다.

약간 아쉬웠다. 그녀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기에는 제약이 있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예를 들면 이런거다. 여행지의 백화 만발한 아름다운 풍광에 흠뻑 젖어 그 느낌을 적어내려가야 할 시점에 

"봄에 피는 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자녀와 함께 자연에 대해 이야기 하여 보아요" 이러는 거.




그래도 블로거 '짱아'의 여행의 매력은 '가족과 함께'다.

조선 천지 수많은 여행 블로거들이 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뽑아낸 블로거는 흔치 않다.

혼자 훌쩍 떠나는 것과 아이와 함께 가는 여행은 다르다.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야한다.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여자다.

블로그에 다 적지 못했겠지만 가족과 함께 하면서 어린 병준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짱아'도 분명 그랬을 거다.

병준이를 위해 여행지를 고르기도 하고,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해줄까 생각하고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고.




책은 한달도 넘게 책장에 있었지만 최근 며칠동안 열독熱讀했다. 정말 열심히 읽었다.

인문서적 읽듯이 책장을 넘겼다.

'초등학교 교과서와의 연계' 이런 문구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

긴 시간 댓글을 주고 받으면서 그녀가 여행을 위해 어떤 과정을 지나고 어떤 책들을 읽어 왔는지 안다.

'짱아'의 포스팅에는 지리, 역사, 인물, 국어가 탄탄하게 받치고 있다.




여행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쯤이면 교양서적이다.

여행준비, 여행지의 유래, 의미, 매력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룬게 없다. 

장문을 엄마들이 꼼꼼하게 읽을까 하는 걱정도 되지만 읽기 시작하면 술술 나간다.




책의 내용도 살펴볼 겸, 봄에 추천하는 1박 2일 여행지 전라남도 광양 구례를 따라가 보자.

며칠 내로 이 책을 참고삼아 광양을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설명해 줄 아이는 없지만^^)




왼쪽에 매화와 관련된 한자 성어가 있다.

아치고절雅致高節 : 아담한 풍치와 높은 절개를 뜻함.

암향부동暗香浮動 : '그윽한 향기가 은은히 감돈다'는 뜻.

빙자옥질氷姿玉質 : 얼음같이 맑고 깨끗한 살결과 구슬같이 아름다운 자질을 뜻함.




p210. 매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3월 초순 무렵, 열흘에서 보름 사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이다.

p211. 화개장터에 가 보지 못한 사람은 많아도, 조영남이 부르는 <화개장터>를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화개장터'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김동리의 소설 『역마』다. 흥미롭게도 이곳은 노래 가사에서는 역동적이고 떠들썩한 삶의 현장으로 그려지지만, 소설에서는 아련하고 가슴 아픈 땅으로 그려진다. 어느 풍경이 화개장터와 어울리는지는 직접 방문하면서 느껴 보시라!

p212. 화개장터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구례 산수유마을로 가자. 구례군 산동면 일대에 있는 산수유 재배 마을을 뜻하는 이곳은 크게 상위마을, 현천마을, 원좌마을의 3개로 나눌 수 있다.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라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 시 구절을 연상시키는 산수유 열매. 그 열매가 불꽃처럼 붉게 익기 전에는 샛노란 꽃이었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신기할까?

p213. 둘째 날은 문화답사 코스다. 먼저 운조루부터 둘러보자.....흥미로운 것은 이 집에 전해져 오는 여러 일화다. 커다란 나무 쌀독의 마개에 '타인능해', 즉 '다른 사람도 능히 열수 있음'이라는 글귀를 넣어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나 쌀을 퍼갈 수 있도록하고....

여행은 화엄사와 광한루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외 추천여행지로 지리산의 삼선궁,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최참판댁을 소개하고 있다. 추천맛집, 숙소, 여행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교통정보도 메모에 담았다.




이 책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책이다.

'짱아'는 이 책을 쓰면서 아들 병준이 얼굴을 몇 번을 떠 올렸을까?

병준이는 아직 어리다.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엄마의 책을 책장에서 꺼내 볼지도 모른다.

그 때 부끄럽지 않게 책에 정성을 쏟았을거라는 믿음이 간다.

책은 물리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묵직하다.
















덧글 : 조금 별난 상상을 해 보았다. 

수십년 후 병준이의 모습을. 

전문적인 일은 자수성가 못지 않게 타고난, 또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던져진 경우를 무시할 수 없다. 




'여행이라면 덧정없다. 내가 울 엄마 뱃속에 있을 때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다. 10살 이전에 대한민국 안 가본 곳이 없다. 내가 뭘 더 하겠나.' 이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말이야.... 남들과 달라. 모태 트래블러야. 타고난 여행가라구. 걷기도 전에 여행을 먼저 배운 사람이야. 엄마로부터 문학적 감수성을, 아버지로부터 강한 체력을 받은 사람이라구. 여행은 업業이라구 업!!' 이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모태 트래블러!




▶ ▶ 국내 여행 블로그 No.1 짱아님 블로그 놀려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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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 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 청소년인물박물관 8
이원준 지음 / 작은씨앗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피를 찍어 글을 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읽는 도중에도 서너 번은 울컥했다. 

선생은 우리 곁에 잠시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간 성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고 배고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지 않은 적도 없었다. 

제 몸 편히 뉘일 곳 없는 좁은 공간을 생쥐와 나누고 매번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강아지와 함께 했다. 




작가가 되기 전 가난이 운명적 가난이었다면 작가가 된 이후의 가난은 선택한 가난이다. 

원고료로 운명같은 가난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것을 원치 않았다.

주위에서 도움주는 것도 새로 산 것, 값어치 나가는 것은 모두 거절했다.

정생은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 뿐'이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소박한 인간으로 우리 곁에서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잘릴 뻔한 대추나무를 부퉁켜 안고 울었다.

집에 사는 생쥐를 위해 씨옥수수를 매달아 두고

새로 이사간 흙집 마당의 잡초조차 베지 못하게 했다.




권정생의 동화는 정생 자신이다.

정생의 동화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생활, 일본에서 헤어졌던 형들, 고국에 돌아와서도 이어진 가난,

집을 떠나 부산에서 만났던 기훈과 명자, 거지로 떠돌면서 만난 문둥병 청년

겨울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교회 옆 쪽방, 함께 살던 생쥐,

배우지 못한 아쉬움, 평생을 이어온 투병생활, 그리고 어머니.

너무 슬픈 이야기만 적지 말라는 아이들의 당부에 

'세상이 슬픈데 어찌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냐'면서 아쉬움을 표하던 선생이었다.




피를 찍어 글을 쓰다.

이오덕 선생 말씀.

"상태가 좋을 때가 보통 사람이 지게로 한 짐 가득 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잉크로 글을 쓰지만 권정생은 피를 찍어서 글을 쓴다."

병약한 몸으로도 누구보다 강한 신념으로 글을 썼지만 이미 중병을 앓고 있는 정생의 글 한 줄 한 줄은 인내다.




유언장을 쓰다.

p217. 최완택 목사는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하다. 정호경 신부는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에 믿을 만하다. 박연철 변호사는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갔지만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남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 바란다. 내가 쓴 책들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인세를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만 남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25살 때 22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중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장례위원장 염무웅 교수의 조사

p230.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절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정생은 강아지 똥처럼 봄에 민들레를 피울 거름이 되었다.

2007년 5월 70세를 일기로 눈을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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