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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책에 관한, 또는 도서관에 관한 6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책에 이야기가 여섯 개. 하나 씩 읽기 편합니다. 화장실 들고 가서 한 토막씩 읽고 오면 딱인 책입니다(아닌가^^). 이야기는 다르지만 책에 관한 다양한 상상이 있다는 점에서 카를로 프라베티의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가 떠올랐습니다.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엘 바르코 데 바포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책을 처방해드립니다>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독서클럽 번개로 진행된 선정도서였기 때문입니다.
소설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내가 <환상도서관>을 만나고 또 다른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 책을 떠올릴 수 있는 건 분명 특별한 일입니다. 책에 관한 소소한 판타지라고 했는데, 주제가 책이다 보니 쉬이 읽고 넘겨버릴 일만은 아니더라구요. 책이 좋아서 사고, 읽고, 소장하기를 반복하다보니 삶과 삶의 공간이 책에 치입니다. 기회가 되면 거부하지 못하고,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돈 걱정은 잠시 잊어버리고 아내의 잔소리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굳게 믿어버립니다. 책 놔 둘 공간이 부족해서 책장을 더 들여야 하는데, 해결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책을 파는 겁니다. 그래도 책을 더 많이 채울 수 있다면 살을 에는 아픔을 견뎌야지요.
'나는 우편함 자물쇠를 열었다'로 시작하는 두 번째 이야기 [집안도서관]은 우편함을 열 때마다 책이 들어있습니다.(이렇게 좋은 우편함이 있다면 값을 따지지 않을텐데...^^) 보낸 사람도, 언제 보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우편함을 열 때마다 분명히 책이 들어 있습니다. 화수분이 따로 없지요.
<환상도서관>은 번역된 제목이고 원제는 입니다. 그리고 이 책도 큰 상을 받았습니다. 2003년 World Fantasy Award.
▶ 벽돌책장 -> 책을 파는 수 밖에
읽는 내내 공감, 또 공감! . 자물쇠를 열 때마다 책이 나오는 우편함은 없지만 책에 잠식당하는 삶에 가슴이 시렸습니다(가슴이 시리기까지...^^). 그런 진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집안도서관]편의 많은 부분을 옮겨 봅니다. 나머지 다섯 편의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책에 대한 풍자+판타지.
'<세계문학>을 차가운 타일 위에 내려놓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부적절하게 느껴졌다. 거의 신성 모독에 가까울 정도로. 집 안으로 들어오자 이번에는 책을 어디에 놓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문가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다가 결국 좀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탁자에 올려놓기로 했다. 최고의 해결책은 책장이다.
책이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칙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책에 아무리 많은 공간을 할당해도 항상 부족하다. 처음에는 벽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는 발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천장만이 그 침공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곳이다.
짐가방을 한 번 더 채워오면 작은 탁자의 가는 다리가 책 무게 때문에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하지?
가벼운 신발을 놔 두는 화장실 입구가 책더미로 막혀 있었기 때문에 양말만 신고 움직였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감기에 걸릴 위험은 없었다.
새 책을 놓을 자리를 찾는 수 밖에 없었다.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가구가 무엇일지 생각하느라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침대로 결정했다. 어쨌든 오늘밤에는 필요 없을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엌으로 통하는 문을 책으로 막을 시점이 되자 나는 식기와 수저는 포기해도 냉장고와 소형 스토브 정도는 꺼내오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커다란 물건을 갖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