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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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소식이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1. 이해인 수녀님 소식을 듣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곁을 떠나신 여러 분들처럼, 마지막 소식이 아닐까 하는 조바심에서였습니다.

몇 년째 암으로 투병하고 계십니다.




2. 최근에 박완서 선생님 다큐에서 수녀님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큐를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 글할 길이 없네요.

크고 좋은 화면으로 찾아봐야겠습니다.




3. 중학교 1학년 보충수업 시간이었습니다.

국어 선생님께서 수업과 관계없는 프린트물을 내 주셨는데

거기에는 박노해 시인의 "손무덤"도 있었고, 피천득 선생님의 "엄마"라는 수필도 있었습니다




4. 제가 수녀님을 처음 인지한 것이 중학교 1학년,

국어 보충수업 시간 프린트물을 통한 수녀님의 시 "몽당연필"




5. 그 뒤 서점에서 <민들레 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내 혼에 불을 놓아> 등을 

구입해서 읽고 또 읽는 수녀님의 팬이자 문학소년이었습니다.




5. 새로이 들은 수녀님 소식은 다행히 새 책 소식입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산문집을 새로 내셨습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를 여러번 속으로 외쳤습니다.




6.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는 많은 생각을 몰고 오는 제목입니다.

꽃의 화려함을 뒤로하면 다른 많은 것들이 보이는데

우리는 꽃의 화려함에 정신을 잃고 잎의 푸르름을 보지 못합니다.




7. 글은 언제나 그랬듯이 쉽고 담백합니다.

미사여구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심심하겠지요.

그러나 수녀님의 오랜 독자들은 솔직함, 담백함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8. 작년에 가신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김점선 화가, 장영희 교수님, 이태석 신부님 등등...

살아있는 이들보다 떠나신 분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9. 시인은 항상 작은 것도 소흘히 한 적 없는 분이셨지만

투병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떠나고 없음에 

이전과 다른 묵상을 하셨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10.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동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이해인, <잎사귀 명상> 전문







11.

박완서 선생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주시기로 했는데,

먼 곳으로 가시는 바람에 1년전 받은 편지로 추천사를 대신 했답니다.














 

12. 암투병으로 성모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p253. 어느 날 내가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추기경님이 오히려 먼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오셨다. 당시에 나는 평생을 기도하고자 수도원에 온, 말하자면 봉헌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몸이 아플 때는 사람들이 문병 와서 계속 기도만 해주는 것에도 거부감이 생겼다. 물론 수도자로서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님의 고통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했지만, 열이면 열 명이 모두 그렇게 말할 때는 야속한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적인 위로를 먼저 해주고 그 다음에 기도하라고 해도 늦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때 내게 누구보다 인간적인 위로를 건네셨던 분이 바로 옆방에 입원해 계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이었다. 병실로 불러 주셔서 내가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그분의 방에 갔을 때, 추기경님이 나한테 물으셨다.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

 그래서 내가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라고 대답했더니 추기경님은 무언가 가만히 생각하시는 듯했다. 나는 추기경님이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대단한 고위 성직자이고 덕이 깊은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주님이라든가 신앙, 거룩함, 기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추기경님은 연민의 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딱 한마디 하셨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그 한마디, 인간적인 위로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추기경님의 그 한마디 속에 모든 종교적인 의미와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덕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처럼 인간적인 말을 하는 것임을 그날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힘든 치료를 하는 이들에게 종종 "대단하세요, 정말!" 하며 추기경님의 그 표현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한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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