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 동화나라에 사는 종지기 아저씨 청소년인물박물관 8
이원준 지음 / 작은씨앗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피를 찍어 글을 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읽는 도중에도 서너 번은 울컥했다. 

선생은 우리 곁에 잠시 와서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간 성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고 배고프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난한 이웃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지 않은 적도 없었다. 

제 몸 편히 뉘일 곳 없는 좁은 공간을 생쥐와 나누고 매번 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강아지와 함께 했다. 




작가가 되기 전 가난이 운명적 가난이었다면 작가가 된 이후의 가난은 선택한 가난이다. 

원고료로 운명같은 가난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것을 원치 않았다.

주위에서 도움주는 것도 새로 산 것, 값어치 나가는 것은 모두 거절했다.

정생은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곁에서 함께 가난해지는 것 뿐'이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소박한 인간으로 우리 곁에서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잘릴 뻔한 대추나무를 부퉁켜 안고 울었다.

집에 사는 생쥐를 위해 씨옥수수를 매달아 두고

새로 이사간 흙집 마당의 잡초조차 베지 못하게 했다.




권정생의 동화는 정생 자신이다.

정생의 동화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생활, 일본에서 헤어졌던 형들, 고국에 돌아와서도 이어진 가난,

집을 떠나 부산에서 만났던 기훈과 명자, 거지로 떠돌면서 만난 문둥병 청년

겨울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던 교회 옆 쪽방, 함께 살던 생쥐,

배우지 못한 아쉬움, 평생을 이어온 투병생활, 그리고 어머니.

너무 슬픈 이야기만 적지 말라는 아이들의 당부에 

'세상이 슬픈데 어찌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냐'면서 아쉬움을 표하던 선생이었다.




피를 찍어 글을 쓰다.

이오덕 선생 말씀.

"상태가 좋을 때가 보통 사람이 지게로 한 짐 가득 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잉크로 글을 쓰지만 권정생은 피를 찍어서 글을 쓴다."

병약한 몸으로도 누구보다 강한 신념으로 글을 썼지만 이미 중병을 앓고 있는 정생의 글 한 줄 한 줄은 인내다.




유언장을 쓰다.

p217. 최완택 목사는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하다. 정호경 신부는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에 믿을 만하다. 박연철 변호사는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갔지만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남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 바란다. 내가 쓴 책들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인세를 그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들만 남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다시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25살 때 22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환생했을 때도 세상에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중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장례위원장 염무웅 교수의 조사

p230.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평화와 통일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절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정생은 강아지 똥처럼 봄에 민들레를 피울 거름이 되었다.

2007년 5월 70세를 일기로 눈을 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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