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기술 - 성공은 내가 던진 질문에서 시작된다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김수경 옮김 / 레몬한스푼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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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기술 : 질문 한 마디가 바꾸는 세상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에 무슨 기술이 있나, 모르면 물어보면 되는 거지. 그런데 책장을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조금씩 변화했다. 아, 지금까지 나는 질문을 너무 가볍게 여겼구나. 아니, 정확히는 질문이라는 행위가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설계될 수 있다는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평소 인터뷰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 대본 없이 흘러가는 흐름을 선호하는 편이다. 뭔가를 캐내려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싫었고,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상대방도 알아서 말을 꺼내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갔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기술 없음'을 '자연스러움'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저자는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명확한 목표 없이 시작하는 대화는 결국 표면을 긁는 데서 끝난다고. 상대방의 마음속 진짜 생각, 다른 사람에게는 꺼내지 않을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다면 질문을 설계해야 한다고. 우리보다 속마음을 덜 끄집어내는 일본에서는 이 기술을 우리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기술이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 설계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이 질문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목표를 분명히 한다. 단순히 정보를 얻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상대방의 어떤 인지적 변화나 행동을 이끌어내려는 것인지를 먼저 못 박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심리 상태, 사전 지식 수준, 그리고 나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와 권력 역학 같은 맥락적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분석을 토대로 세 번째 단계에서 어휘의 수위와 어조를 최종 조율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막상 대화 현장에서 이 세 단계를 의식적으로 밟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일단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말을 던져놓고, 반응을 기다린다. 즉, 도박을 하는 셈이다.

저자가 역산적 접근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질문하는 사람 스스로의 사고 해상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막연히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궁금해하는 것과, "저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내가 원하는 깊이의 답변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고 과정이다. 질문을 설계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스스로의 사고를 다듬는 과정이 되는 보너스가 숨어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기본 원칙은 익숙한 5W1H를 조금 확장한 '5W4H'다. 여기서 핵심은 'Why'를 반복해서 파고드는 것과 'How'로 실행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 그리고 'If'를 통한 가정형 질문이다. "만약 ~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으 전환을 유도한다. 여기에 'And then'으로 상대의 사고를 연속적으로 이어가게 하고, 'So'로 흩어진 논의의 핵심을 수렴하는 방식까지 더하면 평범한 잡담이 입체적인 지식 탐구의 장으로 바뀐다.

솔직히 이 구성 요소들 하나하나는 따로 놓고 보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Why를 반복하면 근본 원인에 다가간다는 것, How로 물어야 실행 방안이 나온다는 것. 문제는 이것들이 계획적으로, 유기적으로, 하나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실천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데 있다. 이론과 실행 사이의 그 거리를 저자 본인도 잘 알고 있는지, 단순히 개념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내재화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묻는다. 책을 읽는 내내 '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그래서 나는 실제로 이걸 얼마나 하고 있나'라는 자기 점검을 멈출 수 없었다.

인지 구조화를 위한 7대 실전 질문 공식 부분은 개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져서 솔직히 한 번 읽어서는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다. 질문을 구조화한다는 발상 자체는 명확한데, 그 공식들이 실제 대화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감하려면 좀 더 의식적으로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그중에서도 "사고 촉진형" 질문, 즉 기존과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면 어떤 새로운 대안이 가능한지를 묻는 방식은 단번에 와닿았다. 사고의 관성을 깨고 창의적 발상을 이끌어내는 이 접근법은 내가 팀 회의에서 꽤 자주 써왔던 방식이기도 했으니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거나 신규 사업을 기획할 때의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 이 방식을 꽤 썼다. 효과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반반이다. 구성원 모두가 그 주제에 진짜 열의를 갖고 있을 때는 놀랍도록 잘 작동했다. 그런데 소위 '꼰대 상사'가 한 명이라도 들어와 "그게 말이 돼?" 한마디를 던지면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아무도 엉뚱한 아이디어를 먼저 꺼내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몸만 그 자리에 와 있고 딴생각을 하는 직원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질문 기법이 아무리 좋아도 참여자의 심리적 안전감이 확보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는데, 야마구치의 책이 그 경험을 이론적으로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질문을 설계하기 전에 참여 인원에 대한 선행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멤돌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부하 직원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챕터는 읽으면서 좀 뜨끔했다. 성과가 미진하거나 실수가 생겼을 때 "왜 이것밖에 못했냐"거나 "왜 지시한 대로 안 했냐"고 따지는 방식이 얼마나 역효과를 낳는지를 저자는 명쾌하게 설명한다. 그런 질문을 받은 순간 상대방은 즉각 방어 태세를 갖춘다. 두려움과 자기 합리화가 작동하면서 정작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는 마비되고 변명만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직원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똑같이 반응한다.

그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라는 방식이다. 공격적인 Why 대신 해결을 돕는 How로 물으면 직원은 감정의 동요 없이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대안을 탐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말인데, 실제로 화가 난 상황에서 이 전환을 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경험해본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이 챕터를 읽으며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기법 자체보다, 질문 하나를 어떻게 던지느냐가 이렇게까지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AI와 질문의 관계를 다루는 챕터는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긴장감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막연한 공포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 요즘, 저자는 뜻밖의 각도로 접근한다. 대형 언어 모델은 인류가 쌓아놓은 방대한 지식을 학습했지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거나 방향성을 선제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한다고. AI가 내놓는 출력물의 질은 전적으로 인간이 입력하는 프롬프트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AI 도구 활용의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정보는 넘쳐나고 도구는 무서울 정도로 강력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의 성과 차이는 오히려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묻는가"가 사고력과 판단력, 나아가 AI를 활용하는 능력까지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AI가 내놓은 첫 번째 답변에 안주하지 않고, 그 답변에 꼬리를 물며 Why와 How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방식이 기계를 더 잘 쓰는 전략인 동시에 스스로의 사고 한계를 돌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질문이라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모르는 것을 채우려는 소극적인 행위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깊이 박혀 있었는데, 저자는 그걸 정면으로 뒤집는다. 질문은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상대의 숨겨진 잠재력을 깨우는 것이다. 흩어진 정보의 파편을 모아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질문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과 알면서도 못 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이 결국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조언이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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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 ㅣ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
강상규.이경수.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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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6권 : 정말 우리와 다른 일본과 일본인, 이유가 궁금하다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늘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깝지만 멀고, 익숙한 듯하지만 끝내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나라. 

지리적으로는 이웃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늘 어딘가 어울릴 수 없는 그림자를 남겨 왔고, 그래서 일본을 이해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복잡한 감정을 조용히 건드린다. 일본을 단순히 관광지나 소비문화의 나라로 보지 않고, 그 사회의 결이나 사람들의 생활 태도, 시대가 남긴 상처와 변화의 흔적까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감정선을 알게 되면서 과거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책의 장점은 무언가를 거창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일상적인 장면, 한 사람의 경험, 하나의 단어, 하나의 공간에서 출발해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 흘러왔는지 조망하고 해답을 찾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를 다룬 대목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 자랑하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루키가 그렇게 도전해도 이루지 못한 꿈 아닌가! 오에 겐자부로는 전쟁 이후 일본 사회가 어떤 가치 위에서 다시 서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고, 문학과 시민운동을 하나의 일관된 행동을 바라본다. 그의 작품에는 전쟁의 기억이 깊숙이 배어 있다.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났고, 그 이후의 일본은 패전의 상처와 성장의 욕망 사이에서 그애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오에는 사회의 절망과 모순을 문학으로 적어내려갔고, 현실에서는 헌법 제9조를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지식인이 작품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한계를 넘어 직접 사회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천이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지매 심한 일본인들이 안보이는 곳에서 얼마나 작가를 괴롭혔을지 안봐도 비디오다.



생활적인 측면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일본의 생활문화, 특히 모닝 서비스와 깃사텐 문화였다. 

몇년 전 혼자 도쿄 여행을 떠났는데, 호텔비 아끼려고 조식이 없는 예약을 했다. 덕분에 근처 문 연 카페에 들어갔는데,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신문을 펼친 노인들,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무료로 함께 나오는 토스트와 달걀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놀란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비스 좋네,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 안에 훨씬 많은 사회적 의미가 들어 있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랐다. 모닝 서비스는 그저 커피 한 잔에 빵이 따라오는 친절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습관이고 생활의 리듬이며, 깃사텐이 담당해온 사회적 역할이라는 설명이었다.

가격도 꽤 저렴해서 5천원이면 간단한 식사와 커피까지 해결하는데, 우리나라 커피 전문점 모닝 메뉴 가격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화는 왜 정착되지 못했을까, 억울해진다.

물론 도쿄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펼쳐들거나 여유있는 커피 한 잔 마시는게 더 부럽지만. (대부분이 그러지 못하리라고 믿고 싶다. 우리처럼)

나고야나 히메지 같은 지역에서 모닝 서비스가 지역 정체성으로 자리 잡은 과정이나, 각 지방마다 아침 식사의 형태가 조금씩 다른 이유들이 단순한 음식 문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과정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겉으로 보기엔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달걀 한개지만, 그 안에는 경제 구조와 상업 경쟁, 지역 상권의 변화, 그리고 노년층의 일상적 고립을 완충해주는 기능까지 숨어있다.


일본의 말을 통해 사회를 읽는 재미도 있다다. 신조어와 유행어는 그 시대를 잘 드러내는 징후다. 책에서 소개된 ‘히키코모리’, ‘1.57 쇼크’, ‘취직 빙하기’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시대적 불안을 압축한 유행어다. 특히 ‘히키코모리’는 이제 일본만의 단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세계적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그만큼 현대 사회의 고립과 단절이 국경을 넘는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단어들을 통해 일본 사회가 어떤 불안 속에서 변해 왔는지 보여준다. 단어 하나가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담아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 반대로 한국어가 일본에서 유행하게 된 단어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데즈카 오사무 이야기도 평상시 알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다. 전쟁을 겪은 만화가가 왜 그토록 생명과 평화를 강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만화를  “종이 요새”라고 생각했는지 인상적이다. 폭격 속에서 사람과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삶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장면은 어떤 예술가에게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데즈카는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만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 웃음과 감동을 함께 주는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가 그의 중심에 있었다. 이 부분은 일본 만화의 대중적 매력 뒤에 숨어있는 따뜻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손길이 느껴진다.


우에노 공원의 국립서양미술관과 오모테산도의 네즈 미술관을 방문했던 기억은 책에 소개된 도쿄 미술관 투어 챕터를 보니 다음에는 추가적인 도전을 다짐하게 만들어준다.

로댕의 유명한 작품들이 마당에 전시되어있는 미술관에서 12월초의 서늘한 바람이 다시금 느껴진다. 추운 바람을 피해 들어간 미술관 내부의 유명한 작품들과 열정적으로 관람하는 사람들. 서양열강에 뒤지지 않는 국력을 한 때 보였던 문화저력이 그곳에 있었고, 이제는 시들어가는 나라의 옛영광이라는 안타까움도 교차되던 기억이 난다.



한 번 읽고 끝나지 않고, 여행의 기억과 생활의 장면을 다시 불러오게 만드는 책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쇼핑과 먹거리 여행도 좋지만 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들어다 보는 기회를 다른 분들도 가져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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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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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숨막히는 지도 위의 전쟁과 역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은 공간이라는 렌즈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본다.

우리 머리 속에서 받아들이던 교과서 역사 이야기는 시간이라는 축과 인물 또는 사건으로 점철되어 공간이라는 3차원 현실 세계의 구성은 머리가 비상한 덕후 기질 다분한 일부에게만 허용되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도를 펼쳐놓고 사건들을 배치하는 출판물들을 자주 만나게 되어 예전의 갑갑함을 다소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를 통한 실감나는 동영상 컨텐츠도 이런 흐름에 역동성을 부여하여 좀 더 역사 현장과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가 포함된 한중일 3개국을 지리적인 상황을, 특히 전쟁이라는 테마를 통해 들여다보는 작업은 흥미는 배가시키며 과거의 역동성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공부가 된다.


임진왜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리적 환경변화나 전쟁, 그리고 정권과 서양과의 갈등과 문물의 수입 등 다각도로 조망한 책의 이야기들은 일부는 새롭지만 대부분은 한번 쯤은 들어본 내용들이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시각으로 조망하다보니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몰랐던 측면을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첫 번째 관심을 끈 대상은 은(銀)이다.

16세기 에스파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퍼 올린 은이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흐름이 명나라 중심의 '천하'라는 세상의 지정학적 질서를 뒤흔든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슬며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는가? 단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 야욕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던 정답과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본다. 일본은 당시 세계 굴지의 은 생산국이었다. 에스파냐 상인들이 동아시아로 교역로를 뻗으면서 일본은 명나라가 지배하던 영역의 외부에서 갑자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경제력은 곧 군사력이다. 

100년 넘게 내전으로 단련된 수십만의 정예 지상군, 그리고 전쟁 외에는 딱히 해소할 수 없는 다이묘들의 넘치는 에너지. 여기에 명나라가 자유로운 무역을 허용하지 않으며 쌓이게 된 불만까지. 임진왜란은 그 모든 압력이 한반도라는 통로로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임진왜란은 어느 한 인물의 광기가 아니라 16세기 세계 은 유통망이 동아시아에 불러온 연쇄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연쇄 속에서 한반도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다쳤다. 지리적 위치는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조건이 가혹한 대가로 돌아온다.


이어서 터진 병자호란이 역사교육에서 임진왜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지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국난을 극복한 이야기지만, 병자호란은 말 그대로 굴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먹먹한 분위기가 화면을 지배하던 영화 “남한산성”의 우울함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조가 청태종 앞에 이마를 아홉 번 조아리던 그 장면은 역사 교과서에서 숨기고 싶은 오욕의 현장이자 압도적 굴복의 공간이 아니던가.

병자호란의 배경에도 지리적 이유가 제시된다. 청나라가 명나라와 장기전을 벌이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처가 필요해졌고, 그 조건에 맞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다. 조선은 군사적으로도 나름의 대비를 했다. 산악 지형을 활용한 방어라던가, 조총 부대를  운용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가 너무 컸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이괄의 난이 연달아 터지며 국력이 소모되었고, 거기에 소빙기라는 기후변화까지 겹쳤다. 평안도 방어선이 뚫리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장기전을 버틸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게 개전 두 달 만에 항복은 이루어졌다.

'소중화 사상'을 다룬 부분은 그나마 조선이 건진 작은 희망이었을까?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은 조선 지식인들이 진짜 중화 문명은 앞으로 우리가 계승한다는 인식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한 자기 위안이나 사대주의로 치부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그 소중화 의식이 조선 학자들의 시선을 중국 대신 한반도 그 자체로 돌리게 했고, 실학과 진경산수화, 한반도 중심의 지리학,역사학 연구로 이어지는 자주적 문화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굴욕이 자존심으로, 자존심이 학문으로, 학문이 나중에 어딘가에서 터지는 역설. 하지만 소중화라는 단어 자체에는 중국을 향한 애정조차 굴욕적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책 중간쯤에서 대기근으로 죽어간 조선인의 숫자가 나온다. 그 수치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달아 할퀴고 간 자리에, 소빙기가 겹쳤다. 전쟁이 끝나면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밭을 일 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밭에 비가 오지 않거나 서리가 일찍 내리면 답이 없다. 무기에 죽은 것이 아니라 밥이 없어 죽은 사람들. 역사책은 대개 전투 장면을 묘사하지만, 진짜 전란의 끝은 그런 참혹한 모습이었고, 우리의 조상이었다는 울컥함이 목구멍에 몰려든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중 관심을 끈 부분은 난학 이야기다. 

에도막부는 겉으로는 쇄국을 유지했지만, 규슈 나가사키 앞바다의 인공섬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허락했다. 선교는 안 된다, 다른 유럽 세력은 들어올 수 없다, 대신 네덜란드만 이 작은 인공섬에서 거래하라.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특혜라고 생각하지만 당시로서는 그 좁은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통로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어 서적이 들어왔고, 일본 학자들이 그 언어를 배웠다. 해부학, 의학, 수학, 천문학, 군사학. 에도 곳곳에 난학을 가르치는 학숙이 세워졌다. 막부의 통제 안에서, 그러면서도 조금씩 바깥 세계의 지식을 흡수했다. 그렇게 쌓인 지적 기반이 나중에 페리 함대가 들이닥쳤을 때 메이지유신으로 폭발했다. 서구 문물의 우수성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용과 변환이 빠를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이 어쨌든 한중일 3나라의 근현대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기에 난학의 수용은 우리에게는 뼈아픈 시샘일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이 서구 문물을 몰랐던 건 아니다. 북학파 실학자들이 청나라를 통해 서양 과학기술을 수용하려 했고, 정약용이 설계한 수원 화성에는 거중기 같은 서양식 기계 기술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체제 혁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가장 위대한 조선의 개혁 군주라던 정조조차 목표는 어디까지나 조선 체제 유지와 왕권 강화일 뿐이다. 서양 기술은 도구였을 뿐, 세계관이 바뀌지는 않았다.


책의 후반부는 좀 더 무거운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일제의 악랄함이 책 곳곳에 표현된다. 특히 중일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고통은 무거워진다.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촉발된 중일전쟁은 흔히  어떤 군인이 실종되었다는 거짓 보고로 시작된 우발적 사건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순수한 우연이었을까?


일본 군부는 이미 만주를 손에 넣은 뒤였다. 중국 본토로의 팽창은 그 다음 수순이었다. 군부의 발언권은 무한대에 가깝게 커져 있었다. 도조 히데키는 중일전쟁 개전을 주도했고 얼마 후 총리가 되어 태평양전쟁까지 주도한다. 고노에 후미마로는 다당제 의회를 해산하고 일당독재 국가로의 변모를 이끌었다. 그 흐름 속에서 루거우차오 사건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치밀하게 중국 본토를 손아귀에 넣으려던 군부의 의도가 거기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중일전쟁 초기 일본군의 연승이 가져온 충격도 인상 깊다. 우한이 함락되자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과 민족 지도자들 사이에서 친일로 변절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이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패자로 자리를 굳히자, 식민지 독립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퍼졌다. 그 패배의식이 변절의 토양이 되었다. 나쁜 사람들이 변절한 게 아니라, 나쁜 지정학적 상황이 나쁜 선택을 양산했다는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 변절하는 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100%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는 이미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변절자들을 이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 이들의 강인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현재로 이어진다. 독도, 센카쿠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동북공정. 냉전이 끝나고 세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까워지는 듯 보이던 1990년대 이후, 억눌려 있던 역사 갈등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중국의 고구려를 둘러싼 동북공정, 그리고 EEZ 경계선을 둘러싼 영토 분쟁.

지리적 인접성은 교류와 갈등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한중일은 한자라는 문화적 공유 기반을 가지고 있고,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지식인들이 가졌던 새로운 자각, 일본이 맛본 자신감, 이것이 세 나라의 권력 균형에 커다란 균열을 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한반도가 가장 크게 떠안았다.

지금도 그 구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1강을 꿈꾸는 중국과, 대륙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포기하지 않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협력을 다짐하는 정상 회담 사진이 찍히고, 그 뒤에서는 EEZ 경계선을 놓고 조용히 신경전이 벌어진다. 미래에도 세 나라는 이 불안한 줄다리기를 계속할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반복되어 왔다.

한일 해저 터널이나 대륙 철도 연결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다.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일본 열도를 잇는 물류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교량 국가라는 지위는 예나 지금이나 축복과 위험을 동시에 안겨준다.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가 '명나라와 일본을 잇는 교량'이라는 지리적 이유로 전쟁터가 되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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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환의 ETF 완전 정복
염승환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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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환의 ETF 완전 정복 : 투자의 기본을 다시 시작하기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식시장이 뜨겁다 못해 이글이글거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장의 일부가 뜨겁다. 

2024년 이후 상승세를 주도하는 건 결국 AI 관련 종목들이고, 그 외의 섹터에 분산투자를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이상한 장이 계속되고 있다. 

투자의 기본 원칙이라고 배웠던 분산투자가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몇몇 AI 테마주만 붙잡고 있는 사람들은 신났고, 교과서대로 넓게 펼쳐놓은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는 상황이 됐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원칙대로 하면 손해고, 원칙을 무시하면 이익인 시장이라니.

그렇다고 원칙이 틀린 건 아니다. 이건 시장의 시간이 짧을 때 나타나는 착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수익률 표를 보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선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나 역시 그런 감정을 갖고 이 책을 펼쳤다.

주식 투자에 본격적으로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에는 펀드가 진입 장벽을 낮춰주는 역할을 했다. 개별 종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전문가가 운용해준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펀드는 사고파는 타이밍이 영 불편했고, 수수료 구조도 불투명한 경우가 많아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새로운 형태의 금융상품인 ETF가 채웠다. 상장지수펀드라는 이름답게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고, 분산 효과까지 기본 탑재된 상품이다 보니 요즘은 ETF 하나도 없는 사람 찾기가 힘들 지경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사람들이 ETF의 구조나 특성을 제대로 알고 투자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이름이 그럴듯하면 사고, 최근 수익률이 높으면 사고, 유명한 운용사 브랜드만 믿고 사는 식이다. 

직접 투자보다 손실 가능성이 낮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게 리스크가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도 이 부분에서 솔직히 말하면 허술했다. ETF 몇 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는 부끄러움 몰려온다. 그러니 상품별 수익률도 제각각.

삼프로 TV에서 꽤 자주 보던 얼굴, 염승환 저자가 100문 100답 형식으로 ETF의 기초부터 심화까지 풀어쓴 책이라기에 기대를 갖고 페이지를 읽어갔다.

책은 크게 여섯 파트로 구성된다. 1부와 2부에서 ETF의 개념과 유형을 정리하고, 3부와 4부에서 실전 투자 전략을 다루며, 5부와 6부에서 트렌드 분석과 절세 방법을 소개한다. 구성 자체는 깔끔하다. 입문자가 처음부터 읽어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고, 이미 투자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2부 이후부터 읽어도 무리없다.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게 이렇게 많았구나"였다. 

분산투자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분산이 아니었다는 대목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S&P500 ETF도 사고, 나스닥100 ETF도 사고, 미국 빅테크 TOP10 상품도 하나 더 넣었더니 왠지 다양하게 갖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을텐데, 저자는 이게 전형적인 착각이라고 못 박는다. 세 상품 모두 결국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가 최상단에 똑같이 들어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어, 진짜! 

포장지만 다르고 내용물은 같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진짜 분산이 되려면 섹터가 달라야 하고, 지역이 달라야 하고, 자산 성격 자체가 달라야 한다. (물론 이러면 서두에 이야기한 요즘 국장의 분위기와 또 다르지만.)

운용보수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이게 읽을 때마다 아차한다. 수익률 계산할 때 운용보수를 빼먹는 습관은 생각보다 흔한 실수다. 표면적인 보수만 확인하고 기타 비용, 즉 매매 중개 수수료나 합성 ETF에 붙는 추가 비용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흙퍼서 장사하는게 아닌데 말이다. 특히 해외 자산형 ETF는 비용 구조가 복잡해서 지수 수익률과 실제 수익률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은 나중에 꼭 다시 체크해봐야겠다고 밑 줄 쫙.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경고도 명확했다. 지수가 10% 하락 후 10% 반등하면 원금은 99%지만, 2배 레버리지는 20% 하락 후 20% 반등해도 원금의 96%밖에 되지 않는다는 퍼센트 계산의 함정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로 보니 더 실감이 난다. 요즘 AI 섹터를 강조하는 레버리지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고 광고도 많이 보이는데, 반도체 주가가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 방향이 맞더라도 레버리지 상품을 장기 보유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동성 때문에 가치가 잠식되는 구조는 방향이 맞아도 타이밍이 틀리면 크게 잃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원자재 ETF와 리츠 ETF 섹션이었다. 나는 아직 금, 은, 원유 같은 원자재 쪽으로는 손을 뻗어보지 못했는데, 이 파트를 읽으면서 조만간 한번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다. 어느 정도 미국-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원자재 상품성이 다소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금이 공부하기에 적당한 타이밍일 수도 있다. 원유 ETF는 실물 보관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물 형태로 구성된다는 것, 그래서 원유 가격과 ETF 가격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구조적인 차이를 이번에 처음 제대로 이해했다. 금 ETF는 실물 금을 금고에 보관하고 가격을 추종하는 방식이라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안전자산 성격도 겸비하고 있어 첫 진입으로 적합하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었다.

리츠 ETF는 예전보다 매력이 떨어진 건 맞다. 오프라인 유통의 퇴조,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오피스 수요 감소 등이 리츠 시장 전반에 영향을 준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은 어떤 형태로든 시대에 맞게 재편되면서 살아남는 시장이기도 하다. 물류센터 수요라든지, 데이터센터를 담은 인프라 리츠처럼 구시대적인 쇼핑몰 리츠와는 성격이 다른 상품들이 나오고 있다. 어떤 리츠 ETF를 담느냐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갈릴 수 있다는 것, 그 안을 들여다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절세 부분은 솔직히 조금 벅찼다. ISA 3년 만기 사이클, IRP 안전자산 30% 의무 규제 돌파 전략, 연금저축 이전 등 내용 자체는 정확하고 실용적인데 한꺼번에 소화하기엔 좀 어려웠다. 특히 ISA 계좌 해지 후 만기 자금을 연금 계좌로 이체하면 이체 금액의 10%까지 추가 세액공제를 받는다는 부분은 기억해두면 꽤 유용한 팁인데, 이런 내용들은 따로 정리해두고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책 한 권으로 ETF의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흩어져 있던 지식들을 정리하는 데는 충분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상품명, 들어본 적 있는 개념들이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체계로 묶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산발적으로 알고 있던 ETF별 특성과 포트폴리오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주요 상품들의 구조와 차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으니 효율적인 공부가 됐다.

다만 책의 숙명적인 한계는 있다. 책이 나온 이후에도 시장은 계속 움직인다. AI 레버리지 상품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전기차 섹터는 캐즘 이후 반등을 준비 중이며, 반도체 주가에 대한 전망도 계속 수정된다. 책에서 소개한 특정 트렌드나 추천 상품은 시간이 지나면 이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독자 스스로 시간의 간격을 감안하면서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건 이 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투자 입문서가 공유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ETF 공부를 미뤄온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시작하기에 좋은 책이다. 남들 다 한다는 ETF, 나도 이제 좀 제대로 알게 됐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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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금 이야기
레베카 조라크.마이클 W. 필립스 주니어 지음, 서소울(정세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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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금 이야기 : 반짝이는 모든 게 금은 아니지만, 금은 반짝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금은 실제로 반짝이기 때문에 인간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바로 그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인 사실에서 출발한다. 금은 다른 광물처럼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는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 인간이 가치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집착하고, 때로는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욕망을 대변하는 허상이자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우리가 알던 상식과 동떨어진 지식을 얻기 시작한다. 바로 금이 지구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금은 별의 죽음, 정확히는 중성자별의 충돌이라는 우주적 사건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 일부가 운석을 통해 지구에 도달했다. 즉, 금은 처음부터 지구의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금이라는 물질은 이미 SF적이며 신화적이다. 

인간이 그토록 집착해온 대상이 사실은 우주에서 발생한 재난의 산물이라는 점은, 우리가 가치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우연적이며 외부적인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또한 그만큼 다시 생성되기 어려운 물질이기 때문에 유한한 물량만 지구에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주 외부에 또다른 금맥이 있어 우주 서부개척사가 수백년 후에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금의 물리적 특성 또한 흥미롭다. 

변색되지 않고, 잘 늘어나며, 얇게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은 금을 장식과 저장의 매개로 만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너무 무른 성질은 도구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이 모순이야말로 금의 본질이다. 실용성보다는 상징성, 기능보다는 의미. 그래서 금은 언제나 쓸모가 아니라 가치를 담는 광물로 인간에게 사용되어 왔다.

특히 금이 노란색을 띠는 이유가 상대성이론과 연결된다는 설명은 인상적이다. 전자들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며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한다는 이 설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황금빛이 사실은 물리학의 극단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의외의 사실을 전달한다. 인간의 감각과 우주의 법칙이 머무는 특정 시점의 결과물이다.


저자는금의 아름다움만 찬영하고 있지는 않는다. 금이 만들어낸 어두운 역사에 더 깊이 관심을 쓰고 독자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 

대서양 노예무역에서 금은 인간을 검은 금으로 전락시켰고,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는 원주민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금을 향한 욕망은 단순한 탐욕을 넘어, 인간 자체를 상품으로 만드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금은 더 이상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반짝이는 광물이 아니라, 인간 욕망을 검은 기운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증폭 장치인 셈이다.



도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금은 얇게 펼쳐 다른 물체를 덮을 수 있다. 여러가지 분야에서 활용되는 일반적인 기술이지만 문학적 또는 문화적으로 은유로 자주 쓰인다. 겉을 번쩍이게 만들어 본질을 가리는 행위. “백합에 금을 입히다”라는 표현이나 ‘도금 시대’라는 개념은 모두 이 이중성을 드러낸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부패한 사회. 금은 그 자체로도 가치이지만, 동시에 가짜 가치로 진실을 속이는 도구로도 쓰인다.

이 부분에서 둥장하는 영화 속 금으로 만든 의상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흑백 영화 시절에는 금의 진짜 색을 볼 수 없었지만, 컬러 영화가 등장하면서 금은 오히려 더 노골적인 사치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의 과도한 금 장식이 오히려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기술의 발전이 반드시 미적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SF 영화에서 금은 전혀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인간과는 다른 존재, 미래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색으로 사용된다. 스타워즈의 작은 히어로 C-3PO를 떠올려보면, 그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닮았지만 다른 존재라는 그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만약 그가 단순한 금속 색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금은 여기서 가치의 상징을 넘어, 존재에 차이를 부여하는 시각적 언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도 금은 권력과 신성, 그리고 불멸과 연결되어 왔다. 중세 필사본에서 금은 신의 언어를 장식하는 재료였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자를 불멸로 만드는 도구였다. 심지어 연금술에서는 금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 했다. 이처럼 금은 언제나 인간이 도달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이상향인 영원성, 완전성, 초월성을 상징해왔다.

그래서 다들 반짝이는 광물에 집착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갈구한다. 

그러나 그 끝은 언제나 허무하다. 

크로이소스의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역사상 가장 부유한 왕 중 하나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는다. 죽기 전까지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은 금이 결코 인간의 삶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금으로 만든 예술품조차 언제든 녹여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금은 형태보다 물질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수많은 걸작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이것은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금이라는 재료 앞에서는 언제든 현금화 대상일 뿐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런 예술의 본질을 녹여내는 건 세상에 금 밖에 없다. 



왜 우리는 금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가? 

그리고 그 집착은 과연 올바른가?

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금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 정세가 불안할수록 금값이 상승하는 현상은, 금이 여전히 최후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러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 인간은 다시 물질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금이 있다. 최근 전쟁이 일어나자 금값은 폭등했다. 미국의 패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견들도 존재한다. 금이 미국의 어려움을 대변한다. 

금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상징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금화를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금을 신뢰한다. 그것은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집단적 믿음에 가깝다.


금은 스스로 빛나지만, 그 빛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언제나 양면적이다. 찬란함과 잔혹함, 아름다움과 파괴, 영원성과 허무. 금은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근속 기념상을 금으로 주다가 상품권으로 바꾼 회사가 불만이다. 금의 가치가 상품권 보다 더블이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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