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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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숨막히는 지도 위의 전쟁과 역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 책은 공간이라는 렌즈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본다.

우리 머리 속에서 받아들이던 교과서 역사 이야기는 시간이라는 축과 인물 또는 사건으로 점철되어 공간이라는 3차원 현실 세계의 구성은 머리가 비상한 덕후 기질 다분한 일부에게만 허용되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도를 펼쳐놓고 사건들을 배치하는 출판물들을 자주 만나게 되어 예전의 갑갑함을 다소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유튜브를 통한 실감나는 동영상 컨텐츠도 이런 흐름에 역동성을 부여하여 좀 더 역사 현장과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가 포함된 한중일 3개국을 지리적인 상황을, 특히 전쟁이라는 테마를 통해 들여다보는 작업은 흥미는 배가시키며 과거의 역동성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공부가 된다.


임진왜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리적 환경변화나 전쟁, 그리고 정권과 서양과의 갈등과 문물의 수입 등 다각도로 조망한 책의 이야기들은 일부는 새롭지만 대부분은 한번 쯤은 들어본 내용들이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시각으로 조망하다보니 이전에 알고 있던 지식으로는 몰랐던 측면을 깨닫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첫 번째 관심을 끈 대상은 은(銀)이다.

16세기 에스파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퍼 올린 은이 태평양을 건너 동아시아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흐름이 명나라 중심의 '천하'라는 세상의 지정학적 질서를 뒤흔든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슬며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는가? 단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복 야욕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던 정답과는 다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본다. 일본은 당시 세계 굴지의 은 생산국이었다. 에스파냐 상인들이 동아시아로 교역로를 뻗으면서 일본은 명나라가 지배하던 영역의 외부에서 갑자기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경제력은 곧 군사력이다. 

100년 넘게 내전으로 단련된 수십만의 정예 지상군, 그리고 전쟁 외에는 딱히 해소할 수 없는 다이묘들의 넘치는 에너지. 여기에 명나라가 자유로운 무역을 허용하지 않으며 쌓이게 된 불만까지. 임진왜란은 그 모든 압력이 한반도라는 통로로 터져 나온 사건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임진왜란은 어느 한 인물의 광기가 아니라 16세기 세계 은 유통망이 동아시아에 불러온 연쇄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연쇄 속에서 한반도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다쳤다. 지리적 위치는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조건이 가혹한 대가로 돌아온다.


이어서 터진 병자호란이 역사교육에서 임진왜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다루어지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국난을 극복한 이야기지만, 병자호란은 말 그대로 굴욕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먹먹한 분위기가 화면을 지배하던 영화 “남한산성”의 우울함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조가 청태종 앞에 이마를 아홉 번 조아리던 그 장면은 역사 교과서에서 숨기고 싶은 오욕의 현장이자 압도적 굴복의 공간이 아니던가.

병자호란의 배경에도 지리적 이유가 제시된다. 청나라가 명나라와 장기전을 벌이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처가 필요해졌고, 그 조건에 맞는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다. 조선은 군사적으로도 나름의 대비를 했다. 산악 지형을 활용한 방어라던가, 조총 부대를  운용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가 너무 컸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이괄의 난이 연달아 터지며 국력이 소모되었고, 거기에 소빙기라는 기후변화까지 겹쳤다. 평안도 방어선이 뚫리고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장기전을 버틸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장소였다. 그렇게 개전 두 달 만에 항복은 이루어졌다.

'소중화 사상'을 다룬 부분은 그나마 조선이 건진 작은 희망이었을까? 병자호란의 굴욕을 겪은 조선 지식인들이 진짜 중화 문명은 앞으로 우리가 계승한다는 인식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한 자기 위안이나 사대주의로 치부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그 소중화 의식이 조선 학자들의 시선을 중국 대신 한반도 그 자체로 돌리게 했고, 실학과 진경산수화, 한반도 중심의 지리학,역사학 연구로 이어지는 자주적 문화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굴욕이 자존심으로, 자존심이 학문으로, 학문이 나중에 어딘가에서 터지는 역설. 하지만 소중화라는 단어 자체에는 중국을 향한 애정조차 굴욕적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책 중간쯤에서 대기근으로 죽어간 조선인의 숫자가 나온다. 그 수치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연달아 할퀴고 간 자리에, 소빙기가 겹쳤다. 전쟁이 끝나면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밭을 일 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밭에 비가 오지 않거나 서리가 일찍 내리면 답이 없다. 무기에 죽은 것이 아니라 밥이 없어 죽은 사람들. 역사책은 대개 전투 장면을 묘사하지만, 진짜 전란의 끝은 그런 참혹한 모습이었고, 우리의 조상이었다는 울컥함이 목구멍에 몰려든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중 관심을 끈 부분은 난학 이야기다. 

에도막부는 겉으로는 쇄국을 유지했지만, 규슈 나가사키 앞바다의 인공섬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허락했다. 선교는 안 된다, 다른 유럽 세력은 들어올 수 없다, 대신 네덜란드만 이 작은 인공섬에서 거래하라. 

지금으로서는 엄청난 특혜라고 생각하지만 당시로서는 그 좁은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통로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데지마를 통해 네덜란드어 서적이 들어왔고, 일본 학자들이 그 언어를 배웠다. 해부학, 의학, 수학, 천문학, 군사학. 에도 곳곳에 난학을 가르치는 학숙이 세워졌다. 막부의 통제 안에서, 그러면서도 조금씩 바깥 세계의 지식을 흡수했다. 그렇게 쌓인 지적 기반이 나중에 페리 함대가 들이닥쳤을 때 메이지유신으로 폭발했다. 서구 문물의 우수성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용과 변환이 빠를 수 있었다. 메이지유신이 어쨌든 한중일 3나라의 근현대사의 방향을 크게 바꾸었기에 난학의 수용은 우리에게는 뼈아픈 시샘일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이 서구 문물을 몰랐던 건 아니다. 북학파 실학자들이 청나라를 통해 서양 과학기술을 수용하려 했고, 정약용이 설계한 수원 화성에는 거중기 같은 서양식 기계 기술이 녹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체제 혁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가장 위대한 조선의 개혁 군주라던 정조조차 목표는 어디까지나 조선 체제 유지와 왕권 강화일 뿐이다. 서양 기술은 도구였을 뿐, 세계관이 바뀌지는 않았다.


책의 후반부는 좀 더 무거운 전쟁의 참혹함, 그리고 일제의 악랄함이 책 곳곳에 표현된다. 특히 중일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고통은 무거워진다.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촉발된 중일전쟁은 흔히  어떤 군인이 실종되었다는 거짓 보고로 시작된 우발적 사건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순수한 우연이었을까?


일본 군부는 이미 만주를 손에 넣은 뒤였다. 중국 본토로의 팽창은 그 다음 수순이었다. 군부의 발언권은 무한대에 가깝게 커져 있었다. 도조 히데키는 중일전쟁 개전을 주도했고 얼마 후 총리가 되어 태평양전쟁까지 주도한다. 고노에 후미마로는 다당제 의회를 해산하고 일당독재 국가로의 변모를 이끌었다. 그 흐름 속에서 루거우차오 사건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치밀하게 중국 본토를 손아귀에 넣으려던 군부의 의도가 거기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중일전쟁 초기 일본군의 연승이 가져온 충격도 인상 깊다. 우한이 함락되자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과 민족 지도자들 사이에서 친일로 변절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이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패자로 자리를 굳히자, 식민지 독립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퍼졌다. 그 패배의식이 변절의 토양이 되었다. 나쁜 사람들이 변절한 게 아니라, 나쁜 지정학적 상황이 나쁜 선택을 양산했다는 이야기다. 절망 속에서 변절하는 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100%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들에게는 이미 지옥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변절자들을 이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 이들의 강인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현재로 이어진다. 독도, 센카쿠열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동북공정. 냉전이 끝나고 세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까워지는 듯 보이던 1990년대 이후, 억눌려 있던 역사 갈등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중국의 고구려를 둘러싼 동북공정, 그리고 EEZ 경계선을 둘러싼 영토 분쟁.

지리적 인접성은 교류와 갈등을 동시에 만들어 낸다. 한중일은 한자라는 문화적 공유 기반을 가지고 있고,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지식인들이 가졌던 새로운 자각, 일본이 맛본 자신감, 이것이 세 나라의 권력 균형에 커다란 균열을 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한반도가 가장 크게 떠안았다.

지금도 그 구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1강을 꿈꾸는 중국과, 대륙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포기하지 않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협력을 다짐하는 정상 회담 사진이 찍히고, 그 뒤에서는 EEZ 경계선을 놓고 조용히 신경전이 벌어진다. 미래에도 세 나라는 이 불안한 줄다리기를 계속할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반복되어 왔다.

한일 해저 터널이나 대륙 철도 연결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다.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일본 열도를 잇는 물류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교량 국가라는 지위는 예나 지금이나 축복과 위험을 동시에 안겨준다.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가 '명나라와 일본을 잇는 교량'이라는 지리적 이유로 전쟁터가 되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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