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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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인문학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읽는 내내 대학 교양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지겨웠단 얘기는 아니고 ^^

그만큼 지식과 흥미를 모두 이끈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소감이다.


산책자의 인문학 작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 버릇이 여행하는 곳과 관련된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지식과 흥미점이 있으면 여행하는 내내 훨씬 넓고 깊은 공감과 영감이 곁에 있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이라면 고개가 단연 끄덕일만하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이 책에는 다양한 예술가의 몰랐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동안 처음 들었던 화가나 작품들도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혔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놔두고 보티첼리와 메디치가의 인연을 다룬 서사도 퍽 흥미롭고, 의의로 한 여자와 정신적 사랑을 교감했던 빈의 카사노바 클림트의 과거도 매력적이다.


역사 배경이 톡톡히 조미료 역할을 하니 사실과 판타지가 더해진 느낌이지만 어느 이야기가 그렇듯 이런 요소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익힐 수 없을 것이므로 이 책 한 권이면 르네상스 예술가 입문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읽는 내내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걸 보면서 인간의 삶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p27

보티첼리가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 처리에 있다. 그는 춤 동작이나 물결치듯 흔들리는 옷감에서 나타나는 우아한 곡선을 매우 사랑했다. 그것은 마치 생동하는 우리 삶의 은유와 같았기 때문이다.


-p28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보티첼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몸에 밴 세련된 매너, 학문적 깊이에 바탕을 둔 조리 있는 말투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그러한 시대정신에 깊게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내가 그동안 관심 없었던 예술가의 이야기에 흠뻑 빠질 정도면 고흐, 생텍쥐페리, 랭보, 카사노바의 이야기는 읽으나 마나 매우 흥미롭겠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유럽 도시마다 그들의 서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골목과 골목 사이, 숨겨진 동네,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마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그 자체인 동시에 너무나 사랑해서 작품에 남길 수밖에 없었던 곳들.


다시 한번 유럽 엘 갈 수 있을까 아쉬울 정도로 만약 다음에 정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생각했다. 산책하는 길처럼 나도 어슬렁 걸어 다니면서 모든 순간의 공기를 흠뻑 마시고 오고 싶다.


- p89

아를에 머물던 시기, 고흐는 예술가로서는 꽃을 피우지만 동시에 정신병도 얻게 된다. (중략)

바로 프랑스의 태양빛이다. 너무나도 매섭고 찬란한 그 빛이, 남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의 모든 세포를 일깨웠고, 결국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든 게 아닐까.


페스트 열병으로 유럽 인구의 1/4이 죽고 그러한 환경에서 삶의 태도가 바뀔 찰나 종교의 타락과 개혁이 일어나며 르네상스 시대는 차차 불꽃을 피우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이 꺼지며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펼쳐지는 시대. 예술가가 보는 사람 그 자체의 열망과 모순을 그들의 그림, 시, 글,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오늘날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훌륭한 생각거리가 되어 준다. 


- p 145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을! 그는 자기 영혼을 찾아야 하며, 그 영혼을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시험하고 음미하면서 그 영혼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르튀르 랭보, 견자의 편지


동성과의 떠들썩한 스캔들로 화려한 연애와 이별을 감당했지만 모든 감각을 시로 남긴 랭보. 어떻게 보면 클래식한 먼 옛날의 일이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닿는 걸 보니 분명 예술은 예술인 것 같다.


아는 게 힘이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다양한 것에 더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산책자의 인문학은 유럽 여행을 앞두거나 유럽을 갈 수 없어 머릿속에서라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p296

보티첼리와 단테의 피렌체, 클림트의 빈, 랭보의 샤를빌 메지에르,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등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마주한 뒤에야, 예술이 삶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삶은 곧 예술이다. 그걸 발견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뿐.

산책자의 인문학은 우리에게 안목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역사 배경과 어우러진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든 다시 책을 펼쳐 들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다음 여행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에도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15인의 예술가에게 배우는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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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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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기억력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데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에선 분명했다.

밑줄 긋고 싶지만 전체 페이지를 닳게 할까 선뜻하지 못하겠는 마음. 귀한 음식을 꼭꼭 씹어 천천히 음미하듯 문장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사실 키키 키린의 방송, 광고 등의 출연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관심 있는 몇몇 일본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인 배우였고, 눈동자에서 보인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에 반한 배우 정도랄까? 그래서 처음에 이 분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땐 유명한 배우여서 책도 쓰시는구나 싶어 별 관심이 없다가 포털 사이트에서 소개된 몇 문장에 반해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을 다 들어 보고 싶었다.

로큰롤에 심취한 남편과 45년 결혼 생활 중 43년을 별거하면서 깨달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 인생과 행복에 대한 솔직한 감정, 일과 책임에 대한 소신, 암 투병 시 깨달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까지, 길지 않은 짧은 물음과 대답 속에 그녀의 생활 철학이 드러난다.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은 문맥 속에서 잘근잘근 본인이 직접 머리와 몸으로 깨우친 담담한 이야기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이라고 하면 얼마나 말이 많을까 싶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에서 남긴 짧은 메모 형식의 말을 엄선한 것이기 때문에 알맹이 중의 알맹이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에 다 읽기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여서 괜찮다면 하루에 몇 가지의 문장을 읽고 나머지는 본인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그게 '의존증'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하세요" (책 구절 中)

제일 좋은 건 매일의 뽑기 운세처럼 지치고 힘든 하루를 지켜줄 든든한 문장을 뽑는 것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이다. 마치 포춘 쿠키의 말처럼 어떤 말이든 내 상황에 적절히 녹아들지도 모른다.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에서 키키 키린은 굉장히 불안하고 자유분방한 젊은 시절을 보낸 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막연하게 올곧기만 한 도덕 선생님 같은 그저 그런 말이 아니라 놀 것 다 놀아 보고 실컷 방황하면서 깨우친 사람의 알찬 말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 깊게 들리는 이유다.

[에세이]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 中

- 사람이 뭔가를 품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그것보다 더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어요.

- 실패하면, 실패한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지금도 봐요. 여기 옷이 해졌잖아요. 그럼 헤진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 딱히 대단한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가진 걸로 어떻게든 해나가는 거죠.

- 가능한 한 나를 일상적인 상황에 두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고, 당연히 생활 감각도 잘 모르게 됩니다.

- 인생이 모두 필연이듯 내 암도 분명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늙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해요. 자식, 손자들한테도 해요.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됩니다. 또 사람을 귀히 여기게 되죠.

정말 이것 외에도 좋은 문장이 너무 많지만 다 옮겨 적을 수 없고, 또 종이 위 글자를 조용히 읽으며 느끼는 바가 더 크기 때문에 다들 직접 읽어 보시라 필사를 멈춘다.

한때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혼란된 자아를 주체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영혼이 복잡한 남편을 만나 그 사람을 무게 추처럼 여기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잘 중심 잡으며 살았다는 키키 키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왕이면 삶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그녀의 노력과 태도가 확연히 보이는 대목이다.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성숙해가며 마지막을 향해 걸어갔던 그녀의 발걸음이 당당한 이유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했던 의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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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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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 듦의 심리학. 이런 책 종류는 서점에 가면 참 많다.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어떤 분위기에 무슨 내용이 있을지 짐작되지만 그래도 끌리는 이유는 내가 서른 중반인 때문일까. 언제부터인지 나이를 잘 먹고 싶단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곱고 차분하게 늙고 싶은데 그럴려면 경제적 기반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주위에 마음 터 놓을 친구도 있어야 할 것 같고, 건강도 잘 관리해서 내 고관절로 이곳저곳 돌아 다니고 싶다. 일단 건강하게 나이를 먹으려면 신체 관리도 중요하지만 마음, 내가 늙어감을 인정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나이 듦의 심리학에서는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가야마 리카가 환자들을 치료한 사례를 적으면서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목차를 보면 그 주제가 꽤나 다양한데 신선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성희롱에 정년은 없다] [혼자서 살아간다] [부모 돌보는데에 너무 몰두하지 마라] 가 내가 곱씹으며 좀 더 집중하게 된 이야기다. 나 또한 중년의 성을 간과했다. 아줌마라서  멋진 연하남이 슬쩍 어깨동무를 해도 좋아한다? 아줌마한테 해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왜 화를 내?

 

은근히 이런 풍토가 깔려 있는 제3의 성이라고 불리는 아줌마. 중년 여성. 정말로 중년의 성은 희롱으로부터 아무렇지 않을까?나부터 반성을 해야 할 것 같다. 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유로우면서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기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중년도 당당히 소리쳐야 한다. "내 몸을 건들지 마시오!"

 

비혼인 작가는 아이 없는 삶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 간섭을 꽤나 받아 왔다. 무려 40대까지도 충분히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 50대가 되서야 비로소 그 질문에 자유로워졌고 스스로 조급했던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와 일본은 정서가 비슷해 아이에 대한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결혼은 했냐, 아이는 없냐, 왜 안 낳냐, 그래도 하나는 있어야지, 아직 늦지 않았다....

 

사회 문제로도 대두되는 임신과 출산은 그래도 엄연히 사적 영역이다. 부부가 함께 결정할 일이지 사회에서, 주변에서 들들 볶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만 되면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100쌍의 부부가 모두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님이 사실이다. 작가는 이 점을 꽤 진지하게 다루지만 역시 시간이 해결임을 말한다.

 

주위에서 물어 보면 아주 타당하게 맞받아 치고 싶지만 그럴수록 옆 사람은 더 측은하게 바라볼뿐. 인생은 흑백으로 나뉘는게 아니라서 아이 있는 삶도 나름 행복하고 없는 삶도 충분하다. 그러니 비혼으로 늙어 간다면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는게 제일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요양원을 알아 본다든가, 지역 사회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등 우리가 50~60대가 되면 예전과 다른 미혼/비혼 공동체가 분명히 만들어질 것이니 적절하게 활용하면 된다. 또한 나의 장례식이나 무덤은 어떻게 할 것인지 처리해 놓는다면 더욱 좋겠지.

 

100세 시대가 어색하지 않을만큼 70세 자식이 구순의 노인을 수발하는 일이 흔하다.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더뎌지기 때문인데 이때 거리 두기가 실로 중요하다고 전한다. 일단 내가 건강하고 마음이 편해야 부모님을 잘 간병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특히 치매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면 정신적 부담을 해소할 무언가가 더 필요함을 인지한다. 

 

너무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말고 시스템,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고 본인이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에 죄책감을 갖지 말자. 어느 부모님이든 자신 때문에 자식이 힘든건 원치 않으실테니까.

 

실로 현실적인 책이었다. 실제 사례 상담이 내 고민과 다를 바가 없기도 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도 완벽하기 보단 인간적이어서 좋았다. 작가는 56세가 되고 나서 마음뿐 아니라 몸도 고칠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해 종합진료과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데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냈더니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설렘과 기쁨이 있다고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노년으로 가는 기차 속도도 똑같을거다. 유한한 시간을 직면하고 내게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내다 보면 그 안의 희노애락을 모두 사랑할 수 있겠지. 마음이 점점 더 너그러워지고 여유있는 중년과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나이 듦의 심리학 밑줄 친 문장-

 

· 정년 후에 어떤 일이 생기든 와르르 무너지지 않도록 '나는 나'라며 본인 스스로를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희롱에 정년은 없다.

 

· 막연히 상상했던 내 인생과 너무 달라서 가끔 이렇게 살아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고 이렇게 50대가 되는 건가 싶어서 초조해졌다. 그런데 쉰 살이 된 순간,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마음이 가뿐해졌다. 지금의 이 상쾌한 느낌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 나이가 들어도 지금같은 호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무 외롭지 않은 곳에 살면서 아주 가끔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그저 그게 원하는 전부다.

 

·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신의 몸 상태에 연연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 어떻게든 본인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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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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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사실 제목만 봐서는 진부하고 따분한 엄마와 딸 이야기가 아닐지 싶었다.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어떤 계기로 서로를 알아가는 뭐 그런 이야기쯤?

제목이 이 책의 진가를 너무 쉽게 평가할 것 같아 속상한 소설은 오랜만이다. 그만큼 웃기고 재밌고, 또 슬쩍 감동도 있다.

 

현재 만 열다섯 살 소녀가 이 책의 작가인데 천재 소설가라는 수식이 붙는 이 소녀의 책은 읽는 내내 '정말 학생이 쓴 거라고?' 의심을 들게 한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책의) 화자 딸 다나카 하나미는 남편, 가족, 친인척 하나 없이 막노동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엄마 다나카 마치코와 둘이 산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난'이다. 삶을 힘들고 어둡게 만드는 가난. 하지만 이 모녀가 이 가난을 대하는 방식은 굉장히 색다르다.

반값 세일에서 얻은 과일을 행복하게 챙겨 먹고, 비싼 놀이동산에 가고 싶은 하나미는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판기 아래 동전을 줍는다. 대단한 식성을 지녀 밥이면 모든 것이 오케이인 엄마. 그런 엄마를 대하는 딸은 가감 없이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엄마를 사랑한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좋다. 가난을 핑계로 미안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둘. 없으면 없는 대로, 어쩌다 행운이 생기면 그것대로 행복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참 행복했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대체로 유머러스하다. 몇 년 만에 책 읽으면서 실소를 터트렸는지.. 과연 학생다운 솔직함이 내숭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같다.

아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궁금해하는 딸. 그런 딸에게 옆집 아저씨의 옛날 사진을 갖다 주며 아빠라고 말하는 엄마. (금방 들통난다)

어린 여자아이가 수영을 하면 위험하단 말에 남자 수영복을 입혀 놀게 하는 엄마. (특이해..)

가끔이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듯 보여도 갑자기 유식한 문장을 말하는 엄마.

예전 꿈이 닷짱이었다고 말하는 말하는 엄마 (닷짱: 절에서 잡일을 하며 그 몫으로 절에서 머무르는 사람으로 성묘에 바치는 모든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꿈이었다는..)

툭툭 튀어나오는 엄마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장은 어이가 없다가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생각하게 한다. 꼭 꿈이 거창해야 할 이유는 없고, 진실을 밝혀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마치코는 공사 현장에서 여자로서는 혼자 일하는데, 정직한 노동으로 밥 벌어먹고사는 고단함이 언뜻 느껴지기도 하지만 유쾌한 생각과 단단한 태도로 딸과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다. 바로 이 책이 힘을 내는 지점이다. 현실이 단순하면 행복은 멀지 않다는 것.

딸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엄마의 여러 면모는 잘 들여다볼수록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어떤 남자와 사랑을 해서 자식을 낳고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이름을 지어주며 현재를 즐겁고 충실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곧음이 느껴진다.

아래 밑줄 그은 문장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이다.

오랜만에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묵직한 이야기를 만났다. 환상과 기대, 드라마 따위 반전 결말은 없지만 왠지 우리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의 묵직한 이야기로 힘을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중에서

-

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그래도 같이 살다 보니 소소한 부분에서 언뜻 보이는 것이 있다. 우선 먹을 것에 한해서는 먹보나 식탐 수준을 넘어 이상할 정도로 집착이 강하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먹는 게 곧 사는 것이라고 절절하게 느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 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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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최혜진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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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방과 달라서 내 손길과 발길이 수없이 닿아야 하고, 눈길이 가야 해요. 그런 시간 끝에 집과 나 사이에 어떤 길이 생겨서 '내 집'이라는 감각이 생기는 거죠... 저는 집안일이라는 반복적 행위가 삶의 비트를 이룬다고 믿어요. 내 삶에 음악성을 부여하는 근간인거죠. 지겨울 때도 있죠. 하지만 손끝으로 느끼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생의 감각은 살림으로부터 와요.
 
거대한 대의와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인 세계의 집, 밥, 일상을 몸으로 그려낸 그들의 작품이 좋으면서, 동시에 이런 일상성에 대한 찬양이 또 다른 억압의 빌미가 될까 두렵기도 하다. 일상 속 작은 행복에 기뻐하는 자세에 열광하면서, 그 작은 행복을 가꾸는 손이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건 온당치 않다.

(책 속 밑줄 그은 문장들)


작가님의 북콘서트도 다녀오고 이런저런 다른 리뷰들도 많이 찾아 보았지만 역시 타인과 내가 밑줄 그은 문장들은 다르다. 주부의 속성을 떼어 놓고 책을 볼 수 없는지라 위의 문장에 눈길이 특히 머문다. 가사 노동의 희미함을 그림과 문장으로 뚜렷하게 내어 놓은 것. 혼자 살림을 도맡아 하노라면 외롭고 불안한 마음도 든다. 그럴 땐 타인의 살림살이를 바라보는게 위안이 될때가 있는데 북유럽 그림에서 진정성이 느껴질줄은 몰랐다. 어딘가 안갯속을 헤매는 듯한 터치감에서 보이는 그들의 덤덤하고 담담한 일상.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그림의 분위기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잘 아문듯 하다. 너무 화려하지도, 또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소박한 표정과 몸짓. 그들에게서 팍팍한 가사 노동을 위로 받았음은 물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일지 방향도 얻은 것 같다. 
책을 읽고 꿈이 생겼다면 나도 직접 북유럽 미술관에 가서 그림이 주는 기운을 몸으로 직접 받고 싶달까. 
일상과 가깝게 연결된 북유럽에 대한 책, 반가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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