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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ㅣ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기억력이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데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에선
분명했다.
밑줄 긋고 싶지만 전체 페이지를 닳게 할까 선뜻하지 못하겠는 마음. 귀한 음식을 꼭꼭 씹어
천천히 음미하듯 문장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사실 키키 키린의 방송, 광고 등의 출연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관심 있는 몇몇 일본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인 배우였고, 눈동자에서 보인
알 수 없는 어떤 분위기에 반한 배우 정도랄까? 그래서 처음에 이 분의 책이 나온다고 했을 땐 유명한
배우여서 책도 쓰시는구나 싶어 별 관심이 없다가 포털 사이트에서 소개된 몇 문장에 반해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을 다 들어 보고 싶었다.
로큰롤에 심취한 남편과 45년 결혼 생활 중 43년을
별거하면서 깨달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 인생과 행복에 대한 솔직한 감정, 일과 책임에 대한 소신, 암 투병 시 깨달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까지, 길지 않은 짧은 물음과 대답 속에 그녀의 생활 철학이 드러난다.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은 문맥 속에서 잘근잘근 본인이 직접 머리와 몸으로 깨우친 담담한 이야기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다.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이라고 하면
얼마나 말이 많을까 싶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에서 남긴 짧은 메모 형식의 말을 엄선한 것이기 때문에 알맹이 중의 알맹이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루에 다 읽기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여서 괜찮다면 하루에 몇 가지의 문장을 읽고 나머지는 본인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내 생각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그게 '의존증'이라는 겁니다. 스스로
생각하세요" (책 구절 中)
제일 좋은 건 매일의 뽑기 운세처럼 지치고 힘든 하루를 지켜줄 든든한 문장을 뽑는 것처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이다. 마치 포춘 쿠키의 말처럼 어떤 말이든 내 상황에 적절히 녹아들지도 모른다.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에서 키키 키린은 굉장히 불안하고 자유분방한 젊은 시절을 보낸 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차분하고 담담한 태도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막연하게 올곧기만
한 도덕 선생님 같은 그저 그런 말이 아니라 놀 것 다 놀아 보고 실컷 방황하면서 깨우친 사람의 알찬 말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 깊게 들리는 이유다.
[에세이]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의 말 中
- 사람이 뭔가를 품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그것보다 더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어요.
- 실패하면, 실패한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지금도 봐요. 여기 옷이 해졌잖아요. 그럼 헤진 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 딱히 대단한 아이디어도 아니에요. 내가 가진 걸로 어떻게든 해나가는
거죠.
- 가능한 한 나를 일상적인 상황에 두려고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고, 당연히 생활 감각도 잘 모르게 됩니다.
- 인생이 모두 필연이듯 내 암도 분명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성숙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늙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려고 해요. 자식, 손자들한테도 해요.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됩니다. 또 사람을 귀히 여기게 되죠.
정말 이것 외에도 좋은 문장이 너무 많지만 다 옮겨 적을 수 없고, 또 종이 위 글자를 조용히
읽으며 느끼는 바가 더 크기 때문에 다들 직접 읽어 보시라 필사를 멈춘다.
한때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혼란된 자아를 주체하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영혼이 복잡한 남편을 만나 그 사람을 무게 추처럼 여기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를 잘 중심 잡으며 살았다는 키키 키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왕이면 삶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했던 그녀의 노력과 태도가 확연히 보이는 대목이다.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성숙해가며
마지막을 향해 걸어갔던 그녀의 발걸음이 당당한 이유도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했던 의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