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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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김려령 작가님의 이름은 생소해도 <완득이>라고 하면 다 아는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신간 소설 「기술자들」이 나왔다.

처음에는 장편소설인줄 알았지만 7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었고,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한 문장씩 공을 들여가며 읽는 맛이 있다면, 단편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내가 원할 때 어떤 이야기든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맛이 있는건데 그리 어렵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 풍경의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나의 최애 단편 소설은 「기술자들」 속의 《기술자들》 소설이었다.

제목 그대로 종합설비 기술로 한평생 살아온 최가 가게를 정리하면서 구인용 승합차 한대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날의 노동비로 삶을 재정비하려는 이야기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욕실 누수 문의가 들어와 빌라로 가던 때 조가 다가와 최의 보조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기술자들》 소설은 다른 전체 이야기 중에서 더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도 했고, 내가 늘 부러워하는, 자신만의 능력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노력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감에 있어 맞닥뜨리는 일의 부침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09 공사는 최가 도맡았다. 아직 조의 실력을 몰랐다. 그러나 조가 화장실 입구에 방진용 비닐 막을 칠 때부터 그가 괜히 덤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엇다. 자고로 기초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이 나머지 일도 잘했다. 대형 비닐을 각 잡고 펼쳐 말끔하게 설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조는 혼자서도 잘했다. 장비를 준비하거나 거드는 일도 매끈하게 소화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신속한 보조였다.


전문가가 느끼는 전문가의 '각'
어떤 대화없이 일과 일로 주고 받는 현장에서 대충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본인과 상대 모두 기술자여야만 알 수 있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런 면을 이 책에서는 중심 인물로 중년의 기술자들을 정했고 마치 로드무비를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독특함을 자아낸다.

우연히 합류한 조는 의외로 최에게 큰 도움이 되는데 그동안 어떤 일을 했냐는 질문에 조는 두루뭉실하게 대답했지만 서로의 역량을 확인한 뒤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길거리 생활을 잘해나간다.


18 조는 최가 세면대를 교체하면서 테두리에 두른 실리콘을 유심히 봤었다. 좋은 솜씨였다. 단시 설치·수리가 주였던 최가 실리콘 작업은 부차적인 일로여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맨손의 노상 기술자에게 부차적인 일이란 없었다. 당장의 일이 곧 본업이었다.


조가 만든 조잡한 전단으로 일이 들어오는 걸 보며 최는 처음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 희망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동네에 하나씩 있던 가게에 누구나 드나들며 자신의 집 문제를 상의하러 오는 세상은 저물고 이제는 모든 것이 검색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빚만 빚대로 늘어가는 최의 가게는 몰락이 예상되었을 것이다. 최는 처음 가게를 인수받을 때만 해도 동네에 정 붙이고 살면서 연장 든 할아버지로 늙고 싶은 소망(14)을 꿈꿨지만 변하는 시대를 붙잡는 건 그 어느 기술이 있었더라도 어려웠을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일이 자리를 잡고, 집은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몸이 누울 수 있는 허름한 여관도 달방으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오늘만 같기를 바라는 최의 작고 소박한 행복이 더 진실되게 와닿았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재주로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고 나조차도 늘 원하고 원하는 바다. 거기에 믿고 일할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면 현장에서 발휘하는 일의 능력은 더욱 높은 단계를 쌓을 것이다.

김려령 작가님이 보여준 기술자들의 세계는 처음에는 어둡고 외로웠지만 점점 환해지며 삶의 희망이 든든해진다. 한 사람을 만나고(조),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어(황) 불안한 하루만 예측하던 삶이 좀 더 안정적인 삶으로 확장되는 모습에서 우리는 결국 희망을 보니까.


(출판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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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 시간에 집에 있다. 오후 4시. 늦은 오후.
그러나 활기찬 여름의 속성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시간.
이럴 땐 에세이보다 소설.
그렇게 유명하다고. 어떤 누구는 자기 인생의 최애 작가로 꼽히는 최진영 작가의 책을 이제서야 읽어 본다.
<쓰게 될 것> 최진영 단편소설집이다. 어떤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고, 어떤 이야기는 과몰입하다가, 어떤 이야기에서는 밑줄을 계속 그을 수밖에 없었다. 왜 당신들의 최애작가인지 알게 된 단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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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브라이언 키팅 지음, 마크 에드워즈 그림, 이한음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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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았던 이 책은 논리와 이성으로 똘똘 뭉친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연구를 완성시키고 또 실패하는가에 이야기한다.
사실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무수히 많은 실패는 그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ing 일뿐이다.

부제인 <운, 재능, 그리고 한 가지 더 필요한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답게 우리는 노벨과학상을 탄 이후의 물리학자들의 삶을 통해 이들이 끊임없이 창조하는 연구에 대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의 태도의 에센셜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조언이 될 것이다.

우주론자 브라이언 키팅은 노벨상을 탈 뻔한 과학자다. 여러 책을 집필했으며 이번 「과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는 노벨상을 탄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그 유명한 상을 수상하고도 어떤 마음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또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실함과 꾸준함을 밝혔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라고 하면 엄청 똑똑해서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여 어렵게 생각하지만 이번 책에서 읽은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쩌면 직장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 기획서를 잘 써야 하고, 동료와 협력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매일 마주하면서 인류에 도움 되는 작은 단서를 가지고 다시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반복적인 삶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삶에서 과학자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특히 그중에서도 재미, 자신들의 흥미를 돋울 연구를 계속한다는 점에서 그 지속성이 있다.

의외로 이 책은 굉장히 딱딱한 듯 보여도 속은 말랑말랑한 에세이에 속한다. 나는 가끔 보기에 부드럽고 인상이 좋은 사람에게 듣는 말보다, 보기에 엄청 냉정하고 세게 생겼는데 그 사람이 하는 하는 말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곤 하는데 아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에게 받은 위로가 더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절대 이성과 논리로 점철된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수치와 데이터를 가지고 그들만의 운과 노력에 대해 어떤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듯 보인다.

처음부터 정답을 향해 걸어가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미로 속을 헤매다 끝끝내 결승점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지성은 돌파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성장한다. 언뜻 볼 때 결과가 비슷해 보인다고 해도 어떻게 배웠느냐에 따라 성장의 정도는 다르다. 막막함을 견디며 버거운 과제에 몰입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 끝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면 치를 수 없는 값도 아니다. 스트레칭할 때 닿기 힘든 곳까지 몸을 뻗는 순간 근육이 자란다고 한다. 지적 근육 또한 새롭고 낯설고 조금 불편한 시도를 통해 자란다.(129)”의 저자의 말처럼 모든 이에게 번뜩이는 영감과 창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묻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다시 또 하고 또 좌절하고 또다시 해보면서 포기하려는 마음의 근육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 길고 길게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말을 그동안 수도 없이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마음에 남지 않았던 건 너무 뻔하디 뻔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자들이 겪고 있는 인내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상을 수상하고 거만의 세상에 남지 않고 다시 겸손한 자세로 작은 연구실에서 그들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그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단 위로가 된다.

이 책의 큰 흐름은 계속하는 거다. 남들이 인정한 노벨상을 본인과 팀의 헌신으로 받았다더라도 결코 그것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고 그들의 호기심 여정에서 만난 잠깐의 행운일 뿐. 결국 그들은 계속 일을 한다.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관통한 말은 ‘계속해 볼 것’이었다. 실수를 하든 실패를 하든 혹, 성공을 하든. 그 자리에서 좌절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계속 뭔가를 하는 일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안락한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것이 오롯이 나 혼자 해낸 듯 능력을 믿고 까불기 마련이고 크게 실패했다면 세상 모든 저주를 스스로에게 내리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 단 한 가지, 그저 계속하는 것이다. 기왕이면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상처받지 말고 계속해 볼 수밖에 없는 증거를 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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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
수아지크 미슐로 지음, 이현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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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크림색의 책표지와 그 속에 그려진 창문 하나.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은 과연 나인가, 무엇인가.

이제 명상은 꽤 비즈니스적인 말과 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정도로 많은 현대인들은 ‘명상’이란 단어에 기대 지금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도달하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눈 감고 ‘명상 시작~!’하면 온갖 잡념의 끄트머리까지 보게 된다. 이번 을유문화사의 바라본 후에 다스리는 마음은 좀 신기한 명상록이랄까?

이 책의 목적은 단 하나다.

수도자들은 순례길 위에서 시를 읊었고 은자들은 즉흥적으로 노래를 지어 부르거나 그림이나 서예에 몰두하면서 명상을 했다. 명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물질과 비물질 사이 빈 곳에 위치하는 내면의 운동이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개 장치가 필요한 법이다. 예술 작품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책에서 발췌>


그래서 우리가 이번 책을 통해 담아갈 것은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매개장치로서 예술을 바라보고 작가가 안내하는 명상의 길로 차분히 들어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한 번만 읽고 딱 끝내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페이지를 곱씹으면서 읽기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그림 한번, 글 한번.

두번째는 그림만 집중적으로 한번 더 보고, 마지막으로 글을 다시 꼭꼭 씹어 읽는다면 예술 작품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명상의 길로 이끄는지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작품이 내 마음에 와닿진 않았지만 꽤 많은 페이지에 인덱스를 붙이고 귀퉁이를 접은 걸 보면 그동안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꼈던 명상의 본질을 눈으로 확인하며 더욱 쉽게 다가간 것 같다.

작가가 안내하는 예술 작품은 독자들이 그동안 갖고 있던 명상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매개체가 된다. 처음에는 과연 이 그림 혹은 작품에서 우리가 뭘 알 수 있을까 싶은데 옆에 글이 나란히 놓이면 우리는 머릿 속이 아닌 눈으로 직관하며 저절로 명상의 초입에 다다른다. 특히 나처럼 눈만 감으면 수많은 생각의 꼬리들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하나에 한 글, 한 작품에 하나의 명상록을 간직하는 것이 더없이 단순한 수행의 길이 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기대하는 명상의 역할을 뒤로하고 진정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해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의 그림을 빌려왔다. 늙고 추레한 노인이 표정에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직관적으로 보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피할 수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 명상이란 점을 일깨운다.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기 마음을 통제하고 세상의 불안을 이기는 방법으로 명상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가만히 바라보며 인지하는 것부터 우리는 명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

결국 명상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시작하는 일이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에 살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 그런 의미로 화가가 그린 정물화에서 모든 사물은 거기에 그대로 존재하는 그것이며, 그것이 전부이고 모두다. 오직 그것. 작가는 “정물화가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다. 빈약하고 체념 어린 만족감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평범하게 방치하지 않는 만족감.”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히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술관에서 그냥 지나치던 그림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물의 각도를 틀어 명상의 길로 잇는 디테일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 그 계기가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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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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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종류의 눈물이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나는 내 눈물의 방향을 정할 수 없어 가끔은 화가 났고 대개는 고독했다.



가끔 책의 얼굴과 제목이 심각하게 잘 들어맞을 때, 나는 작가도 아니고 편집자도 아니면서 희열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책이 무수한 고민과 여러 타진 끝에 나온 결과물인건 당연하겠만 그 중에서 독자에게 첫인상을 남길 표지와 제목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방황하는 소설은 처음 물성으로 손에 잡힌 걸 보자마자 딱 알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있겠구나. 물론 작가진을 보더라도 그 믿음은 타당한 근거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밝고 난해한 이야기보단 우울하고 난해한 이야기에 몰입이 훨씬 잘 된다.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우울한 감정을 글로 읽었을 때 우리는 희열을 느끼고 더 깊은 감정의 땅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 미디어 창비에서 나온 방황하는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추천되는 소설이다.


총 7명의 작가의 글로 엮었다. 모두 다 아는 작가도 있고 나만 모르는 작가도 있고 우리 모두 몰랐던 작가도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작가의 타이틀보다 그들이 내놓은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견디고 있는 세계는 때론 낯설고 그 지점에서 만나는 여러 갈래의 방향은 방황하는 자들의 것이 된다.


요즘애들(박상영)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며 읽었던 챕터다. 단어도 그 핫하다는 '요즘애들'

이제 나는 조직에서 저런 요즘애들을 단속하는 자리에 있고 나이 또한 예전애들에 속하지만 나도 한 때는 누군가의 '요즘애들'로 불리면서 사회 초년생을 거쳤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 내용에 크게 몰입했던 것 같다.


남준은 뉴스 앵커가 된 신입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히 예전 첫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은채'를 만났다. 스물 여섯 살에 잡지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남준은 은채와 함께 드립커피를 내리고 고목나무에 물을 주는 업무를 하며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문제는 사수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알 수 없는 태도로 남준과 은채의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고 결국 그 상황을 버티지 못한 남준은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황은채와 나는 인턴 시절 팔십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매일 아홉시 반부터 이르면 저녁 여덟 시, 늦으면 열한 시까지 일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무조건 밤을 새워 마감을 했다. 점심과 저녁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아 식비나 출퇴근 교통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괜챃았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더 나은 삶이 펼쳐지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방황하는 소설-요즘애들(박상영)



"사수 배서정의 디렉션은 일관성이 없었다. 어떤 날은 인터넷 게시판에나 적합할 만큼 신조어를 많이 쓰는 발랄한 무드를 요구하는가 하면, 가벼운 톤으로 기사를 써 가면 문장에 중량감이 떨어지고 수식이 지나치게 많다고 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매거진C의 성격과 잘 맞지 않는다며 다시 써 오라고 지시했다. 아무리 과월호를 뒤져보고 선배들이 쓴 기사를 외우듯 읽어봐도 매거진 c다운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방황하는 소설-요즘애들(박상영)



우리는 모든 처음의 시기에 필연적으로 방황을 한다.

첫직장, 첫부모, 첫키스(..는 아닌가???)

여하튼 특히 학생의 신분을 떼고 처음 돈을 받는 프로의 세계, 사회생활로 들어오면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했든, 돈을 봤든, 되는대로 들어왔든간에 방황은 디폴트 값이다.

"지금 이 일이 나랑 맞나?" "이렇게 하는건가?"


업무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돌발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조직 언어를 처음 배우면서 부딪치고 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인데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빛나고 반갑다. 그런 의미에서 남준과 은채의 시간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낮게 떠 있는 별같은 이야기였다.



월계동 옥주(김은희)

이 소설은 내가 아는 동네, 월계동이 나와서 관심이 일었고 옥주의 방황에 눈길이 갔다. '방황'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다른 말을 찾아본다면 '관계'가 떠오를 정도로 우리가 그토록 많은 낮과 밤에 방황하는 이유는 관계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옥주'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들과 흩어지고 연인과도 헤어진뒤 중국 유학을 떠났다. 낯선 곳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탄탄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고 우연히 만난 중국인 '예후이'와 친구가 되고 또다른 친구들과 옥주가 예후이에게 중국어 과외를 받게 되면서 함께 어울리게 된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에 예후이의 고향집에 다같이 여행가게 되었는데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옥주는 지켜보고 그들과의 관계 또한 무너지게 되면서 다시 한번 실망하지만 그 시간은 옥주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 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읽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방황하는 소설-월계동 옥주(김금희)




예전에 누군가 '방황하는 청춘'은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옛날의 일일뿐, 흔들리는 청춘은 더 단단해지지 못하고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형상이 되어버린 꼴이다. 누구는 나약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구는 사회가 이렇게 만들어놨다고 하지만 정작 흔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방황'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자주 맞춘다.


깨진 유리파편처럼 이리저리 튀어오르는 감정 속에 방황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결코 나쁘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각자의 세계에서 힘껏 고독하다 보면 방황과 상실에서 차오르는 알 수 없는 종류의 희망을 마주할 수 있다.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껴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방황하는 소설-파종(최은영)



새해에 방황하는 소설을 읽어서 더 좋았다.

모든 사람이 희망에 대고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시간이 있다면 반대로 모든 희망을 놓고 세계 밖으로 숨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 안으로 파고들며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삶을 시간을 걷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황하는 소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각자의 슬픔을 이 책과 함께 나눠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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