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책자의 인문학 -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문갑식 지음, 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산책자의 인문학
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읽는 내내 대학 교양 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지겨웠단 얘기는 아니고 ^^
그만큼 지식과 흥미를 모두 이끈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소감이다.
산책자의 인문학 작가는 여행을 떠나기 전 버릇이 여행하는 곳과 관련된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배경지식과 흥미점이 있으면 여행하는 내내 훨씬 넓고 깊은 공감과 영감이 곁에 있다고.
다른 곳도 아니고 유럽이라면 고개가 단연 끄덕일만하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이 책에는 다양한 예술가의 몰랐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동안 처음 들었던 화가나 작품들도 있어서 더욱 재밌게 읽혔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놔두고 보티첼리와 메디치가의 인연을 다룬 서사도 퍽 흥미롭고, 의의로 한 여자와 정신적 사랑을 교감했던 빈의 카사노바 클림트의 과거도 매력적이다.
역사 배경이 톡톡히 조미료 역할을 하니 사실과 판타지가 더해진 느낌이지만 어느 이야기가 그렇듯 이런 요소가 없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익힐 수 없을 것이므로 이 책 한 권이면 르네상스 예술가 입문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읽는 내내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는 걸 보면서 인간의 삶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p27
보티첼리가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 처리에 있다. 그는 춤 동작이나 물결치듯 흔들리는 옷감에서 나타나는 우아한 곡선을 매우 사랑했다. 그것은 마치 생동하는 우리 삶의 은유와 같았기 때문이다.
-p28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보티첼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몸에 밴 세련된 매너, 학문적 깊이에 바탕을 둔 조리 있는 말투가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리고 보티첼리는 그러한 시대정신에 깊게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내가 그동안 관심 없었던 예술가의 이야기에 흠뻑 빠질 정도면 고흐, 생텍쥐페리, 랭보, 카사노바의 이야기는 읽으나 마나 매우 흥미롭겠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건 유럽 도시마다 그들의 서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골목과 골목 사이, 숨겨진 동네,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마저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 그 자체인 동시에 너무나 사랑해서 작품에 남길 수밖에 없었던 곳들.
다시 한번 유럽 엘 갈 수 있을까 아쉬울 정도로 만약 다음에 정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생각했다. 산책하는 길처럼 나도 어슬렁 걸어 다니면서 모든 순간의 공기를 흠뻑 마시고 오고 싶다.
- p89
아를에 머물던 시기, 고흐는 예술가로서는 꽃을 피우지만 동시에 정신병도 얻게 된다. (중략)
바로 프랑스의 태양빛이다. 너무나도 매섭고 찬란한 그 빛이, 남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의 모든 세포를 일깨웠고, 결국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든 게 아닐까.
페스트 열병으로 유럽 인구의 1/4이 죽고 그러한 환경에서 삶의 태도가 바뀔 찰나 종교의 타락과 개혁이 일어나며 르네상스 시대는 차차 불꽃을 피우게 된다. 신에 대한 믿음이 꺼지며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펼쳐지는 시대. 예술가가 보는 사람 그 자체의 열망과 모순을 그들의 그림, 시, 글,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오늘날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훌륭한 생각거리가 되어 준다.
- p 145
시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이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을! 그는 자기 영혼을 찾아야 하며, 그 영혼을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시험하고 음미하면서 그 영혼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르튀르 랭보, 견자의 편지
동성과의 떠들썩한 스캔들로 화려한 연애와 이별을 감당했지만 모든 감각을 시로 남긴 랭보. 어떻게 보면 클래식한 먼 옛날의 일이라고 넘길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닿는 걸 보니 분명 예술은 예술인 것 같다.
아는 게 힘이다. 그리고 알면 알수록 다양한 것에 더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산책자의 인문학은 유럽 여행을 앞두거나 유럽을 갈 수 없어 머릿속에서라도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아주 훌륭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p296
보티첼리와 단테의 피렌체, 클림트의 빈, 랭보의 샤를빌 메지에르, 고흐의 생 레미 드 프로방스 등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을 마주한 뒤에야, 예술이 삶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삶은 곧 예술이다. 그걸 발견해 낼 수 있는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뿐.
산책자의 인문학은 우리에게 안목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역사 배경과 어우러진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든 다시 책을 펼쳐 들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다음 여행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에도 르네상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15인의 예술가에게 배우는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