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사실 제목만 봐서는 진부하고 따분한 엄마와 딸 이야기가 아닐지 싶었다.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어떤 계기로 서로를 알아가는 뭐 그런 이야기쯤?

제목이 이 책의 진가를 너무 쉽게 평가할 것 같아 속상한 소설은 오랜만이다. 그만큼 웃기고 재밌고, 또 슬쩍 감동도 있다.

 

현재 만 열다섯 살 소녀가 이 책의 작가인데 천재 소설가라는 수식이 붙는 이 소녀의 책은 읽는 내내 '정말 학생이 쓴 거라고?' 의심을 들게 한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책의) 화자 딸 다나카 하나미는 남편, 가족, 친인척 하나 없이 막노동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엄마 다나카 마치코와 둘이 산다. 여기서 포인트는 '가난'이다. 삶을 힘들고 어둡게 만드는 가난. 하지만 이 모녀가 이 가난을 대하는 방식은 굉장히 색다르다.

반값 세일에서 얻은 과일을 행복하게 챙겨 먹고, 비싼 놀이동산에 가고 싶은 하나미는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판기 아래 동전을 줍는다. 대단한 식성을 지녀 밥이면 모든 것이 오케이인 엄마. 그런 엄마를 대하는 딸은 가감 없이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엄마를 사랑한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좋다. 가난을 핑계로 미안해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둘. 없으면 없는 대로, 어쩌다 행운이 생기면 그것대로 행복하게 여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참 행복했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대체로 유머러스하다. 몇 년 만에 책 읽으면서 실소를 터트렸는지.. 과연 학생다운 솔직함이 내숭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 같다.

아빠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궁금해하는 딸. 그런 딸에게 옆집 아저씨의 옛날 사진을 갖다 주며 아빠라고 말하는 엄마. (금방 들통난다)

어린 여자아이가 수영을 하면 위험하단 말에 남자 수영복을 입혀 놀게 하는 엄마. (특이해..)

가끔이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듯 보여도 갑자기 유식한 문장을 말하는 엄마.

예전 꿈이 닷짱이었다고 말하는 말하는 엄마 (닷짱: 절에서 잡일을 하며 그 몫으로 절에서 머무르는 사람으로 성묘에 바치는 모든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어서 꿈이었다는..)

툭툭 튀어나오는 엄마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장은 어이가 없다가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생각하게 한다. 꼭 꿈이 거창해야 할 이유는 없고, 진실을 밝혀야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마치코는 공사 현장에서 여자로서는 혼자 일하는데, 정직한 노동으로 밥 벌어먹고사는 고단함이 언뜻 느껴지기도 하지만 유쾌한 생각과 단단한 태도로 딸과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다. 바로 이 책이 힘을 내는 지점이다. 현실이 단순하면 행복은 멀지 않다는 것.

딸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엄마의 여러 면모는 잘 들여다볼수록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어떤 남자와 사랑을 해서 자식을 낳고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이름을 지어주며 현재를 즐겁고 충실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곧음이 느껴진다.

아래 밑줄 그은 문장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이다.

오랜만에 에세이가 아닌 소설로 묵직한 이야기를 만났다. 환상과 기대, 드라마 따위 반전 결말은 없지만 왠지 우리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의 묵직한 이야기로 힘을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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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그래도 같이 살다 보니 소소한 부분에서 언뜻 보이는 것이 있다. 우선 먹을 것에 한해서는 먹보나 식탐 수준을 넘어 이상할 정도로 집착이 강하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먹는 게 곧 사는 것이라고 절절하게 느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 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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