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푹푹 찌는 더위가 찾아왔다. 더위를 식히는데는 머리를 차갑게 식어버리게 하는

서늘한 미스터리 소설이 최고다. 그것도 '제노사이드'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야마다 후타로상을 받은 다카노 가즈아키 작품이라면 금상첨화다.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책 한 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슈헤이'는 고급맨션을

사고 사랑하는 아내 '가나미'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나간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아내의 임신소식에 자신들의 경제 상태를 저울질해보던 슈헤이는 아내에게 중절 수술을

제안한다. 수입이 불안정한데다 새 집을 사는 데 돈을 쏟아부어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빠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힘으로 쌓아 올린 맨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미루자는 남편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채 가나미는 중절 수술을 받기로 약속한다.

 

그 후부터 부부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남편은 모습도 없이 누군지 모르는

여자가 초인종을 누르며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목소리를 듣게 되고 아내는 본 적 있는

임신부가 계속 자기 뒤를 쫒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술을 받는 날 가나미는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며 기절하는 바람에 수술은 다음으로

미뤄지고 다른 여성이 몸에 들어와 있는 빙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는 가나미가 해리성 빙의 장애라 여기고 치료를 시작하지만

가나미 빙의 증세는 날로 심해지기만 한다.

왜 가나미가 빙의 증세를 보이는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은 녹록하지 않다. 

인물들의 속내가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드러나면서 점점 이야기는 복잡하게

꼬여가고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이번 작품에서 다카노 가즈아키는 쉽게 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잘못 접근하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중절 수술을 과감히 작품의 소재로 선택했다.

그동안도 <13계단>에선 사형제도의 모순과 <제노사이드>에선 대량학살이라는

사회적인 정면으로 다룬만큼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야 했던 태아들의 문제를

빙의 라는 미스터리 이야기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1년에 150만 명의 여성이 임신을 하고 그중 34만명이

중절 수술을 받는 다고 한다. 임신부 네다섯 명 중에 한 명 꼴로 중절수술을 선택한

다는 거다. 배 속의 아기를 인간으로 인정한다면 일본이들의 사망 원인 1위는 암이

아니라 인공 임신 중절이 되는 셈이다.

더구나 주인이 내버려 안락사를 당하는 개와 고양이 수가 약 30만 마리였는데

처분되는 개나 고양이보다 중절당하는 태아수가 더 많은 것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신작으로 나왔지만 이미 2003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책이므로 10년 전 통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충격적이다.

 

가나마의 상태가 단순히 정신질환인지 사령에 의한 빙의인지는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초자연적 현상사이의 오랜 진실게임이에 대한 해답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작가는 가나미의 상태가 빙의인지 아닌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고 결국, 중요한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명치 끝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먹먹해졌다. 중절수술에 대한

생각과 아기을 지키기 위한 모성의 위대함 등등이 얽히면서 지금껏 가졌던  내 생각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세상 빛을 보지 못한 태아와 원치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아기 중 어떤 것이 더 불행한 것인지에 대한 복잡다단한 생각의

단편들이 뇌리를 계속 스쳤기 때문이다.

 

인공 중절 수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는간에 경박한 가벼움이

얼마나 많은 불행을 안겨줄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만으로도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봐햐 할 정도의 재미도 보장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