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우는 옛 문장들 - 언어의 소금, 《사기》 속에서 길어 올린 천금 같은 삶의 지혜
김영수 지음 / 생각연구소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동양 역사학의 고전이자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 격동의 중국 역사를 가로지르며 난세를

헤쳐나간 수 많은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담아 '인간학'의 교과서로도 일컬어지는 사기는

그래서 20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우리 삶에 유효하다.  

매년 추천하는 책에 빠지지 않는 걸 보더라고 사기에서 삶의 길과 지혜를 발견한 사람이

많은 까닭일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에 천착하거나 일상적인 삶을 교정하는 데

역사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는 워낙 방대하여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도 있고 '어렵다'는

선입견이 깔려있어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나만 해도 몇번의 시도끝에

작년에서야 겨우 사기를 제대로 읽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 고상성어와 명구를 인용해 사기를 깊고 정확하게 읽도록

도와주는 안내서다. 저자인 김영수는 25년간 100차례 넘게 중국을 드나들며 오로지

사마천과 사기 연구을 한 사기 전문가이다. 공부하며 틈틈이 메모해둔 사기 속 1200개

고사성어중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명문 300개를 추려낸 이 책을 펴냈다.

 

고사성어과 명구를 키워드로 생사, 관조, 활용, 언어, 사로, 유인, 승부 등 총 7장의

구성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와 배경인 된 흥미로운 이야기을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함축적이고 압축적인 언어을 풀어서 해석을 덧붙였다. 그의 해석이  세상

이치과 지혜를 얻게 해주니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책 분량이 만만치 않은 터라 (544쪽) 순서에 관계없이 마음에 드는 장을 골라서 읽다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고사성어가 있었다. 사로 장에 있던 '불비불명(不飛不鳴)'이다.

 

말 그대로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이 고사성어는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이 왕이

된 후 무려 3년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향락만 일삼자, 신하 오거가 ''3년을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가 있다면 대체 그 새는 어떤 새입니까?'라자 장왕은 ''3년을 날지 않았다면

장차 날았다 하면 하늘을 찌를 듯이 날것이고, 3년을 울지 않았다면 장차 울었다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라는 말로 필요하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물론 그 후 장왕은 초나라 국력을 하루가 다르게 강하게 하고 단숨에 정나라를

정벌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작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통령 출마선언문과 후보수락

연설에 ‘불비불명’ 고사성어를 언급했었다. 남쪽 언덕 나뭇가지에 앉아,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 새. 그러나 그 새는 한번 날면 하늘 끝까지 날고, 한번 울면 천지를 뒤흔든다며

 "더이상 남쪽 가지에 머무를 수 없었다"면서 "이제 국민과 함께 날고 크게 울겠다"고

말했던 연설문이 생각났다. 

사실 불비불명이라는 고사성어를 처음 들었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보았다. 큰일을 하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뿐만 아니라 문재인후보를 권력의지가 모자란다,

뒤늦게 정치에 입문했다는 등의 지적이 많았는데 이 고사성어로 멋지게 화답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였다.

저자인 김영수는 불비불명의 고사를 때를 기다린 장왕뿐만 아니라 그의 가능성을 믿는

신하의 기다림을 눈여겨봐야 하다고 의미를 확대한다. 그 기다림이 없었다면 장왕의

'삼년불언', '일비충천'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터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 그의 해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처럼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국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키워주며 ,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사기에 쓴 단어 하나 행간 한줄에 담긴 사마천의 고뇌와 깊이를 저자는 세상을

통찰하는 안목을 덧붙여서 더욱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지침서로 책상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고사성어를 음미하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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