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함성호 지음 / 보랏빛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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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함성호는 시인, 건축가, 건축평론가라는 공식 직함말고도 미술비평, 만화비평,

영화비평, 전시 및 공연기획자에다가 아예 세상에 없는 직업, '오지래퍼(Ozirapper)'까지

만들었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다 들쑤시고 다닌다고 해서 생각해내고 버젓이 명함에

새긴 직업이다.

 

바빌론 신화, 인도 민담, 인도 영화 , 티베트 불교 경전등 이 책을 읽다보면 여기저기

들쑤시며 박식함을 드러내는 오지래퍼라는 별명이 저자에게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글 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가득한 카툰과 함께 담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건축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하물며 대학졸업후에는 대선후보 운동원까지 했던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는 이율배반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제목의 부제로 달려있는 '삶의 최소주의'를 보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건축가에 걸맞게 어떤 집을 원하는지 물었을때 가족들이 각자 쓸 수 있는 방 하나씩이면

족하다는 처음 생각이 시간이 점점 흐를 수록 원하는 내용이 불어나 '있으면 좋은 것들'

때문에 이리저리 치이고 밟혀서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마는 현실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없어서가 아니라 남아서 문제인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아서

서로 나누는 세상이 아니라 남는 사람은 남는 대로 버리기 바쁘고, 없는 사람은 없어서

문제인 세상이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조선시대때 사대부들이 집을 지을 때 세 칸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삼칸지제라는 덕목을 끄집어 낸다.

옛 사람들은 이 세칸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생활을 줄여나갔다고 한다. 책을 펴면 다

덮이는 작은 책상 하나, 구석에 놓을 수 있는 책꽂이, 책꽂이에도 책을 너무 많이 꽂는

것을 꺼렸다.

이런 삼칸제지 덕목을 곧이곧대로 우리가 실천하기는 힘들기만 그럴수록 삼칸지제가

함의하고 있는 삶의 최소주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한다.

 

글도 글이지만 카툰들이 인상적이다. 위트가 있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고 때로는

철학적인 느낌이 나기도 하는 그의 카툰은 글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친몸을 이끌고 우리가 만든 것에 스스로 모독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지하철에 혼자 서 있는 모습으로 그린 그림은 눈길을 사로잡았다. 긴 골격으로 작은

충격에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현대인 모습을 조각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각상 <워킹맨>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언젠가 아무도 없는 지하철 칸에 들어섰을때  파란색 천으로 씌워진

의자가 마치 긴 관과 같아서 거기에 누우면 그대로 지옥의 어느 불길로

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느낌이 전해진다.

 

에세이의 매력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과 자세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경쾌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남아서 문제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보인다.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얼굴을 어떻게 좀 더 따뜻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옛 사람들이 공부하다 지키면 이런저런 잡서로 심신을 위로했던 것처럼 이 카툰

에세이가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희망이 절실히 전해지는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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