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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달중이를 만나다 ㅣ 탐 철학 소설 2
김은미.김영우 지음 / 탐 / 2013년 4월
평점 :
청소년을 위한 쉬운 철학책을 찾기 힘들다. 워낙 철학책들은 긴 호흡의 문장들과
깊이 있는 개념들이 나오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퇴계, 달중이를 만나다> 는 철학책임에도 별 무게를 느끼지 못하고 책이
주는 흡입력에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난해한 퇴계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여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수 많은 단체에서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이 칭송받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을 테지만 아마도 판타지 추리소설이라는 구성도
한 몫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와 현대라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추리요소를 가미한
탄탄한 구성이 청소년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달중이는 공등학교 생활을 설계하라는
아버지의 권유와 안동 권씨이니 안동에 가 봐야 한다는 엄마의 제안으로 혼자서
안동으로 여행을 간다.
병산서원을 구경하던 중 500년 전 조선시대로 가게 된다. 장소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계신 도산서당. 그곳에서 마당쇠를 하며 퇴계 선생의 교육과 철학에 대한 가르침을
듣게 된다. 다시 현대로 돌아온 달중이는 예전과는 달리 퇴계 사상과 철학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도덕교과서에서만 보던 퇴계 이황의 모습과 사상을 현실감있게 다시 살려낸다.
꼬장꼬장한 유학자라고만 알고 있던 퇴계 어른이 건강을 돌보기 위하여 심신을
관리하는 건강지침서인 활인심방(活人心方)을 실천하는 체육 선생님에, 스스로 위장병을
치료하는 약을 지어 아들에게 보내주는 한의사에, 도산서당 설계을 한 건축사로,
당시로써는 최첨단 학문인 천문학을 다루었던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적 인물이었다는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퇴계 사상중에 주일무적(主一無適)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다.
“경은 한마디로 주일무적(主一無適)이다.”
“주일무적이요? 그거는 또 뭐예요”
“주일무적이라는 거는 한마디로 마음이 한결같아서 다른 데로 달아남이 없다는 뜻이라.
내가 지금은 여기 와서 이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원래 내는 대장장이나 한가지다. 대장장이
알제? 그래, 내는 대장장이아이가? 대장장이한테는 풀무 불에 달군 쇠를 망치로 꽝꽝 쳐서
그걸로 쇠스랑을 만들고 호미를 만들 때는 다른 생각 없이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하는 거,
그기 경이라.”
“다른 생각 없이 그 일에만 전념하는 거요”
“어제 니는 마당을 쓸었제? 마당을 쓸 때는 오직 마당 쓰는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거, 그기
주일무적이라. 공부할 때는 오직 공부에만 마음을 둘 뿐이고, 밥 묵을 때는 오직 밥 묵는
일에만 마음을 두는 거. 그기 주일무적이라.”
퇴계 사상을 모두 알게 하겠다는 무리한 욕심이 아니라 이렇듯 한가지 만이라도
제대로 아이들 머릿속에 심어주겠다는 생각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게다가 이 책은 단순히 퇴계 사상을 알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삶과 사상을 통해
퇴계가 살았던 조선이라는 사회의 모습까지 알수 있게 한다.
아직 고추가 들어오기 전이라 김치처럼 매운 음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참기름 냄새가
향극한 나물반찬이 아니라 채소에 소금간만 겨우 한 밥상차림이나 신분사회라 천민은
글공부를 할 수 없다는 거, 사극에서 흔히 보는 화려한 복식이 아니라 디자인도 천도
초라한 옷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이 책이 좋은 책으로 선정된 이유는 생각할 꺼리를 아이들 머릿속에 던져준다는
거다. 달중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자신만의 대답을 고민하다 보면 보다 폭넗은
사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용 철학책의 입문서로써 오랜 세월을 견딘 고전들도 좋지만 이렇게 무겁지 않게
철학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책들이 오히려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더욱
유익한 것 같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4년이니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건만 다시 개정판이 나온걸 보면
좋은 책은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