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에 꽃이 핀 것을 보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고 쓸 것인지 '꽃은 피었다'라고 할지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말이고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그것을 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라

고민끝에 선택한 첫 문장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였다.

 

조사 하나만 고쳤을 뿐인데도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긴 문장이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다 떠나 페허가 된 섬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슬픔을 강조하는 온갖 부사와 형용사를 현란하게 쓴것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 깊은 슬픔을 전해준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나 명료한 문장을 쓰는게 이렇듯 어렵다. 글쓰기의 달인인 김훈도

글쓰기의 고충을 토로하는데 나같은 일반인이라 말해 무엇하랴. 쓸 말이 머릿속에는

잔뜩 있어도 막상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를 고심해

몇 번이나 고쳐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책>은 글쓰기에 자신이 없고,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고,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책이다. 저자인

명로진씨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수강생들이 쓴 글을 보며 아쉬웠던 부분들을

정리해서 만든 책이라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다.

 

행갈이와 들여쓰기같은 초보적인 글쓰기요령부터 시작해서 베껴쓰기로 연습하기,

불필요한 접속부사 빼기, 줄 바꾸기, 조사 활용법, 멋부리지 않는 글쓰기, 고치고 다듬는

법에 이르기까지 간단하고 적용하기 쉬운 글쓰기 방법을 3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챕터가 끝날때마다 심산, 도종환, 장영희, 박범신, 신영복 등 유명작가의 작품 한 소절씩

베껴쓰기 교본으로 실어 놓았는데 하루에 한 캡터씩 쓰면 부담도 없을 것 같아 한장씩

실천해 보고 있다.

 

그저 눈으로 읽기만 했을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노트에 베껴쓰기하면서 작가의

언어를 한 문장  한 문장 입안으로도 따라해보니 느낌이 달랐다. 작가가  이 글을 쓰면서

느꼈던 감정의 요동들이 소용돌이치며 다가오면서 마법처럼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문이

열려는듯했다.

안도현씨 말대로 "시집이라는 알 속에 갇혀 있던 시가 날개를 달고 내 가슴 한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베껴쓰기 외에도 '쉽게 쓰라'는 챕터도 무척 유용하고 재미있었다. 글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읽기에 쉬운 글을 쓰는 것이 생각외로 정말 어렵다. 저자가 어려운

문장을 어떻게 쉬운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문을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호구지책을 강구하기가 힘들었다 -> 먹고살기 힘들었다.

타자적 욕망의 내면화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 남을 위해 살지 말자.

 

타자적 욕망의 내면화라는 말을 몇 차례 접할때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렵게 쓰는 거지

하며 생각해 왔는데 한마디로 일갈하는 저자의 재치에 맞장구치며 읽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미덕은 이해하기 쉽다는 거다. 게다가 문장을 길게 쓰지 말고 잘라

써라 라는 저자의 글쓰기 방법으로 말하면, 상투적이지만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거다.

유머가 있고 정보를 주고 반전이 있으며 감동을 주는, 좋은 글의 조건에 다 부합하는

책이다.

한 장 한 장 읽는데 다 이해가 가고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라  ‘글’이란

걸 쓰려는 분이라면 한번 쯤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읽다보면 왠지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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