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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이 차리는 시골밥상
양희은 지음 / 반찬가게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혹은 그냥 지나치던 장소이더라고 지금도 어떤 곳을 기억하는 건
거기에 있던 맛있는 음식때문인 경우가 태반이다.
태생적으로 먹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유명한 관광지의 사찰이든 풍경이든 그런 기억은
희미하게 잊혀져도 뇌리에 박혀있는 맛있는 음식때문에 이름없는 곳이라도 기억이 문득문득
나는 곳이 있다. 이처럼 맛있는 음식이 남겨놓는 잔미는 오랜 생명력을 지닌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SBS-TV 프로그램 '잘 먹고 잘 사는 법'에서 <양희은의 시골밥상>을
본 적이 있다. 담백하고 정갈한 자연식으로 한상 차려있는 음식이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었는데도 군침이 돌았다.
벌써 내 마음은 어린시절 할머니댁에 놀러갔을 때 먹었던 소소하고 수수한 밥상이 떠올랐다.
된장에 쓱쓱 비벼서 나물을 척 올려 입안 가득 넣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올리게 만든
마음도 몸도 흐뭇했던 시골 밥상이였다.
나에겐 시골밥상은 할머니의 사랑과 동격이라 그 때 먹은 음식이 남겨놓은 느낌은 참으로
따뜻하면서도 애잔하다.
전국 방방곡곡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손맛의 고수들을 만나 ‘우리의’ 요리를 만들며 ‘맛’에 대해
‘음식’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시골밥상이 책으로 나온 것은 우연히 도서관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록하는 것이 오랜 버릇이라는 양희은씨 덕택에 꼼꼼하니 알찬 책으로 나왔다.
그녀의 글씨는 그녀의 모습과 닮은 듯하다.

갓 한 밥의 뚜껑을 열였을 때 나는 구수한 향이 온통 진동을 하는 것 같다. 요즘같이 쌀쌀한
날 조개를 잔뜩 넣은 조개국에다 직접 담근 장아찌을 곁드리면 더이상 필요한 말이 있을까?
유기로 차린 밥상이 무척 정갈하다.
요리프로그램이라고 요리만 하겠는가? 넉넉하신 할머님들의 이야기와 함께 집 안 구석구석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요즘은 구경하기 힘든 메주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도
시골밥상에서만 볼 수 있는 구수함이다.

마당에 줄지어 놓여서 가을볕에 일광욕하고 있는 장독대도 빠지지 않는 우리네 시골마당이다.
일부러 조경수다 대리석이다 깔아놓은 마당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골집 마당은 그런 정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졌다. 그저 바라만 봐도 그 집의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 이 책은 요리책으로서의 기능를 다 못할지도 모른다.
레시피를 봐도 된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라
고추가루를 넣어 간해라
마늘은 할만치 넣어라
쌀뜨물을 넣고 바특하게 끓여라
계량컵,계량스푼이 없으면 요리가 안 되는 나같은 사람에겐 된장을 몇숟갈 넣으라는 건지
바특하게 끓이려면 몇분을 끓이라는 건지..괴로운 요리책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손맛으로 승부하는 어머님들의 내공을 흉내내기에도 급급하지만 오히려 그런것이
정형화된 음식이 아니라 다양한 맛의 세계로 이끌 수 있으니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먹고 보지 않아도 사진만으로도 흐뭇한 시골밥상
오늘 저녁에는 콩가루와 들깨가루로 버물린 뜨끈한 시래기국을 끓여서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