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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 박웅현·최재천에서 홍정욱·차인표까지 나다운 삶을 선택한 열두 남자의 유쾌한 인생 밀담
조우석 지음 / 중앙M&B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라는 다소 불량스러운 제목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선뜩 이 책을 집어들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흔한 기획, 예전에 보았던 지식인의 서재,
과학자의 서재같은 아류같은 느낌도 들고 자신의 이미지를 잘 포장한 예상가능한
인터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롤로그에 써있는 저자의 이야기중에
'그곳에서는 누구의 아빠이자 남편이 아니며, 굳이 사회적 직함과도 상관없다. 그것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나만의 망명정부가 바로 서재이다' 라는 구절때문에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서재를 망명정부라 표현한 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서재의 의미와 비슷한
생각이였고 그 만큼 신선해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12명의 남자는 나름 자기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본업인
광고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도사로도 이름높은 박웅현, 노래되고 그림되는 다재다능한
조영남, 인쇄 수입만 10억원인. <먼나라 이웃나라>시리즈로 교양만화 시장을 연 이원복,
전방위로 통섭하는 열린 과학자이자 글빨 좋은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등
삶의 디테일을 즐기며 창조적 삶을 사는 멋진 중년 남자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얼마전에 끝난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원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터라 관심이 없었는데 나와 같은 40대 이야기라는
이야기에 한두번 보았다.
정말 짜증이났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배가 적당히 나오고 머리숱도 적당히 사라진
중년의 모습이 아니라 운동으로 다져진 멋진 몸매와 잘생긴 얼굴들의 집합소는
드라마니까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그 드라마는 신사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딱 내걸고 사회적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꽃중년 리더들이 하는 일이란 카페나 술집에 모여앉아 여자이야기나 하거나
유치한 말장난만 일삼는 것이다.
그거에 비하면 이 책에 나오는 열 두명의 남자는 정말 폼나는 신사의 품격을 지녔다.
우리 시대 중년들이 목말라하는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삶이 견고하니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뛰어들어갈 에너지와 용기가 넘친다. 40대가 되면 으례
취미와 관심이 획일적이 되어 고급 외제차, 골프, 넓은 평수의 집 등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고 싶어하는 '누구처럼' 이 아니라 '나처럼'인 삶을 산다. 이것이
진정한 신사의 품격이 아닐까?
서재를 훔쳐보는 일이라 당연히 책 이야기가 중심이다. 각각의 사람들이 꼽은
'내 인생의 책' 리스트를 다르듯이 그들 취향에 맞게 꾸며놓은 서재모습도 다 다르다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서재는 사람 냄새 가득한 공간이다.
천장 꼭대기까지 꽉 채워 효율을 중요시한 그의 서재는 '통섭원'으로 부른다.
현대판 집현전이자 사랑방을 만들겠다는 최재천 교수가 만든 ‘통섭원’은 말 그대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자유롭게 자신의 전문지식을 서로 교환하며 소통하는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부러웠던 서재는 tvN의 사령탑, 송창의 PD의 서재다.
거실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 오른쪽 벽에 책장을 길게 배치하고 다른 한쪽에는
그림을 걸어놓아 자칫 버려질 수 있는 공간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꾸민 통로형 서재가
인상적이었다.
방으로 갈때마다 책 한 권을 꺼내 철퍼덕 앉아 읽는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화려한 이미지인 스타 연예인 모습과 달리 그의 서재는 소박하다.
이미 두권의 책을 낸 늦깍이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그의 서재는 벽을 마주보고
있는 골방서재다. 책상 옆 벽면엔 신문 스크랩과 각종 문예 창작품 공모가 붙어있다.

사실 이런 인터뷰들이 전체 맥락중에서 몇가지 이야기만 부각시키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름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담담하게 자신의 부모 이혼이야기를 꺼내는 차인표나 도덕제일주의의 우리 풍토에선
비난받을 만한 이야기를 하는 조영남의 이야기가 그렇다. 바람핀 이야기를 자신의 판단
기준은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지 사회통념상 좋은 일이라도 재미가 없다면
손대지 않는다는 그의 속내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집주인과 닮은 서재라는 공간을 들여다 본 결과 그들 삶이 행복한 이유는 나 답게
사는 방법을 깨우쳤다는 거다.
"나 만의 세계를 찾는다지만, 세상의 기준이 있고, 나만의 기준이 있다. 나에게 맞춰서
사는 게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어정쩡한 것, 그것은 아니다."
라는 이화종 화백의 말이 열 두명의 창조적 삶을 사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