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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ㅣ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
김경집 외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평점 :
독특한 제목이다. 거북이가 왜 달리기 경주를 했지? 곰곰히 생각해봐도 그럴듯한
이유가 생각이 안 난다. 그저 꾸준히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교훈만 생각난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나 다 아는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통해서 뭍에 사는 토끼가 물에
사는 거북이와 벌인 그 경주가 공정한 것이였는지, 토끼가 잠든 실수를 놓치지 않고
이긴 거북이의 행동이 정의로운 것인지 묻는다.
이처럼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윤리,과학,역사,동서양철학,예술, 문학 등 인문학의
세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8명의 인문학저자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했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는 그 첫번째 장으로 " 왜 우리는 윤리적으로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딱딱한 주제를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통해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것들에 대한 의문이 생기도록 청소년들에게 직접 질문을
한다. 예전에 마이클 샌델교수가 하버드대생들에게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를 하는 것처럼 질문을 통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우리에게 꾸준히 노력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훈훈한 교훈을 던져주었던 토끼와
거북이 경주는 우리도 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거북이의 입장과 시선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북이가 패배할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여긴
부당하고 야비한 경주였던 것이다.
또한 거북이도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서 정당하지 않은 승리를 이루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나의 행복을 실현한 비겁한 행동인 것이다.
이처럼 정의란 그 과정과 절차가 정당한지, 누군가의 고통이나 불행을 통해 내가
행복을 얻고 있는 건 아닌지,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 강자의 힘이나 권위에 타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똑바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처럼 정의를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게 정리한 설명은 드물지 싶다. 정의는 거창한
선언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것,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마 이 강연을 들은 학생들은 정의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소녀시대 윤아는 왜 예쁠까?"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으로 '진화 심리학'라는
생소한 과학을 소개하는 강연도 흥미로웠다.
진화적인 사고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우리 마음이 그렇게 설계되었는가"
하고 묻는 것인데 그것은 과거 우리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왜 우리는 윤아와 같이 생긴 사람들을 예쁘다고 여기는가?" 는 윤아처럼 생긴
사람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이런 사람들을 선호했던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윤아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윤아의 얼굴에 어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윤아가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사실 나는 창조설보다는 다윈의 진화설을 믿기 때문에 동물들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되어 왔다는 걸 당연시 여겨왔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결론은 무척 놀라웠다.
인간의 마음이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그저 수백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조상들이 계속 부딪혔던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생물학적 기관이 인간의 마음이라니!
그밖에도 "문학소녀 or 문학청년에서 벗어나라" 강연도 문학적 글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같다. 특히 공으로 직접 다른 공을 맞추면 안되고, 벽을 먼저 맞춘
다음 공을 맞춰야 점수로 인정된다는 당구의 스리쿠션에 빗대 문학적 글쓰기는
똑바로 갈 수 있는데도 다른 데를 거쳐서 돌아가는 거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였다.
흔히 청소년 시기를 푸른 시절, 좋은 시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이 그런가?
이제는 청소년들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자신이 없다. 시험과 학업에 시달려 꿈이
사라진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할까 라는 인문학적 질문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책이 있기에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정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케케묵은 것 같은 철학자들의 가르침도 들어보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아이들이 가졌으면 한다.
내일은 학교가는 아이가방에 살짝 이 책을 넣어줄까 한다. 이 한권으로 최소의
비용을 들여서 삶의 여유를 즐길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