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마음에 쏙 든 책을 읽게 되면 꼭 하는 작업이 있다. 저자의 나이를 확인하는 일이다.

저자소개에 나와있지 않아도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씨는 1961년생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이런책의 반이라고 되는 책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역량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이로 걸고

넘어지려는 얍삽함이여!!

 

<책은 도끼다>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만큼이나 내용도 그렇다. 가만보니 책 표지도

강렬하다. 이 말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지 얼마 안 되었기에 나도 이 말을 기억한다.(다행스럽다)

그런데 난 "아! 카프카의 <변신>, 나 그 책 두번이나 읽었보았잖아."  이 말을 하기

위해 읽는 건가 보다. 저자처럼 도끼 자국이 선명하게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고

잠자고 있던 감수성도 깨우지 못했으니.

작년부터 시작한 1년에 100권 읽기 목표가 갑자기 초라해 보인다. 다독 컴플렉스에

빠져서 자랑하는 책읽기,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읽었나 보다.

그런 독서는 의미없다는 말 가슴에 콕 박혀 아프다.

 

자신에게 선명한 도끼 자국을 남긴 책들이 주는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는 저자는

아무도 이길수 없는 '시간'이라는 시련을 견뎌낸 고전들의 훌륭함을 이야기한다.

그런 책들을 읽고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 '보는 눈'을 가지게 되고 삶이 풍요로워

진다고...신록에 몸을 떨고 빗방울의 연주에 흥이 났으며 남들 행동에 좀 더

관대해졌고, 늘어나는 주름살이 편안해졌다는 ...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황홀하게 생각하고 전율했던 작가들에 똑같이 빠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막히게 청각을 시각화해내는 표현들, 세심한 시선들이 느껴지는 판화가 이철수의

다른 시선이 경이롭고 , 매 문장 빛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는 들여다보기

선수인 김훈의 글에 감동받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가 되고 마는 ,말이 돋아나는

고은의 시에 흠뻑 마음을 적시게 된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철수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 김훈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보기는 하되 보지 못하고, 듣기는 하되 듣지 못한다는 말. 깊이 보고 듣지 못하는

내 모습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 읽을 수록 또 다른 보석을 찾아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할텐데....일단 저자가 소개해 준 책들을 중심으로 울림이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해본다. 

책꽂이에 꽂힌채 몇년째 방치된 김훈의 <자전거 여행>. 기다려라~

 

또 하나 힘들때는 진통제를 가지고 다니듯 음악을 가지고 다닌다는 그가 추천한

음악 ,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뭐 이런 남자가 있냐? 책이면 책 음악이면 음악 내 마음에 쏙 든다.

유튜브에서 찾아낸 이 노래를 하루종일 들었다.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가 나왔던 영화와 그 속에 나왔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초원의 빛> 시 만큼이나 음악으로 만나는 초원의 빛도 멋지다.

 

세상이 너무 빨리 움직여                    Life is been moving oh so fast 
사는 속도를 좀 늦춰야 할 것 같아         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

우리 머리를 잔디 위에 쉬게 하면서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을래?  and listen to it grow

 

모처럼 봄날씨같은 오늘

아파트를 나서 문득 바라본 나무를 보니 산수유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노랑'하고 중얼거려진다. 아마도 그가 소개한 릴케 때문인

모양이다.

 

화단에서는 군데군데 꽃이 눈을 떠, 깜짝 놀란 소리로 “빨강!”하고 외쳤다.

- 릴케, 말테의 수기

 

이 책으로 인해 무뎌져 잡히지도 않았던 안테나가 비로소 하나가 세워진 것일까?

더 많은 안테나의 주파수를 잡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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