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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하노이
김남일 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것...
20세기가 남긴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자 미국이 최초로 패배한 베트남전쟁,
달달하면서도 쌉싸름한 베트남 커피와 담백한 쌀국수,
우리나라로 시집오는 나이 어린 베트남신부
이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이 책 첫 머리에 바오 닌(Bao Ninh)이라는 낯선 베트남작가의 등장에 당혹감을
느꼈다.
도시를 대표하는 작가들, 이를테면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프라하의 카프카,
이스탄불의 오르한 파묵처럼 하노이는 바오닌의 하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전쟁의 슬픔'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발표했다. 전선과
밀림을 누비며 누구보다 하노이에 대해서 잘 아는 병사가 된 주인공 끼엔이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텔링 하노이'는 이처럼 바오 닌을 시작으로 우리가 전혀 모르고 있던 여러 다른
하노이들을 만나보며 관광지가 아닌 아픔과 상처가 담긴 하노이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섣부른 개념으로 하노이를 재단하려는 시도대신 하노비 도시자체가
말하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하고, 그 이야기가 설상 매끄럽지 않고 굴곡이 있고
주름이 잡혀있어도 그런 역사를 듣지 않고서 하노이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낯설은 베트남 건국신화와 꼬 로아 성의 전설과 목 잘린 공주 미 쩌우의
사랑이야기,베트남의 잔다르크인 쯩자매이야기같은 하노이의 뿌리를 찾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이리저리 시간에 관계없이 하노이의 이야기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시 중국의 식민지였던 시대부터 프랑스에 점령당했던
시기, 일본에게 억압받던 시기, 베트남전쟁까지 계속된다.
이에 따라 하노이는 프랑스 식민주의의 아성이 되었다가 새로운 저항의 비밀아지트로
변신을 하기도 하고 미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선 호치민 주석이 이끄는 사회주의정권의
수도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하지만 1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답게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고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하노이는 이제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마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의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하노이는 서울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그들은 손하나 대지 않은 자연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선진국형, 인공적인 것이 가미된 것을 해보고 싶어서 자신들의 홍 강을 서울의 한강처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과거 동양의 베니스라 불리게 했던 강과 호수를 매립하며 하노이의
기억과 전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저자는 그런 모습에 하노이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처럼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들이
깔고 앉은 땅의 기억을 지우는데 필사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왕 짓는 마천루라면 서울과는 다른 하노이의 이야기를 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아직 베트남을 가보지 않은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이다. 이 책을 보다보니 옛 시가지에
있는 36거리를 걸으며 레 왕조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같은 비극적인 사랑를 한 미 쩌우의 사원이 있는 꼬 로아에서
베트남 역사를 떠올리고 싶다. 그러니 경제 발전을 위해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파괴하는
일만은 제발 그만두었으면 한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하노이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은 너무 적다!"는 베트남 소설가
레민퀘말처럼 사람들은 경제발전을 위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비단 베트남의 일이 아닌, 과거를 덮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지금 우리 서울의
모습을 생각하니 갑자기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