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와 신도 - 신숙주, 외로운 보국(輔國)의 길
김용상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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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늘 승자의 편이라 승리한 자들의 시선에서 쓴 자기 정당화의 기록이다. 

그래서 패한 자는 역사적 진실과는 다르게 부정적으로 서술되고 늘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포악한 왕으로 불리는 궁예나 사치와 향락으로

망국의 군주로 불리는 의자왕 등은 패자인것도 억울한데 사실과 다르게 '나쁜왕'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간간히 승자임에도 패자와 같은 낙인을 받는 억울한 사례도 있다.

'당 태종에게는 위증, 나에게는 숙주'라고 세조가 칭한 신숙주도 바로 그런 경우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신숙주에 대해서 당대에는 '대의를 따르는 과단성있는 인물'

이었으나 후대에는 사육신,생육신 등을 좇는 도학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기회에 능한

변절자'로 평가되고 있다고 쓰여져 있다.

당시에는 패자였던 사육신이 절의와 충신의 대명사가 되어 두고두고 회자된 것에 비해

신숙주는 승자임에도 흉악한 배신자로 지금까지 알려져 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신숙주에게 항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조선을 위해 해 온 많은 업적과

더불어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해온 현실주의자로서 바르게 평가해달라고 말한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려 했을때, 그의 선택 기준은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유리한가'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가'였다.

"어린 임금을 지키려 했던 벗들의 대의보다는 세종대왕께서 이루어놓으신 위대한

왕업을 길이 보존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나의 대의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세종대왕의 위업을 계승해 조선을 반석위에 세워놓으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금상이 적합한 인물이라고 믿었다. 그러한 내 판단이 최선을 아닐지 몰라도

차선은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원성을 사거나 비난을 받더라도 부국안민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위해 감수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마디로 신하로서 누구에게 충성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때 그가 가야할 길인

신도(臣道)는 국왕이 아니라 '조선'과 '그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조선의 신하, 신숙주다!"라는 항변이 그가 사육신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담고있다. 부제인 '신숙주,외로운 보국의 길'이 그래서 제목보다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지만 정통역사서라고 생각할 만큼 꼼꼼하게 사실에 입각해서 쓰여져

있다. 단종이 자결이 아니라 사사되었다고 잘못 전해진 것도 바로잡고 계유정난때

신숙주가 가담했다는 일반적인 통설에 맞서 계유정난시에 외지에 있었다는 내용과

조선왕조실록에 공신에 대한 기록에도 2등에 책봉되어 있다는 점을 예로 든다.

 

요사이 보면 역사속에 사라진 패자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많이 나온다. 왜냐하면

역사가 승자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진실과 정당성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난뒤에도 잊혀져 있던 사실을 발굴하여 끊임없이 재평가와 수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이기때문에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에서처럼 신숙주에 대한 새로운 시선들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외교,국방등 많은

일들을 이룬 업적은 칭찬받아야 하고 그가 선택한 신도의 길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데

이견은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신하 신숙주에 대해 여전히 아쉬운 것은 뭘까?

"세조에게 옳지않다,하지말라,바꿔라 등의 말로 비위를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고

한 한명회의 충고에 그대로 물러서 있는 모습은 조선을 위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주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장래를 위해 수양대군과 손을 잡는 결단을

내릴 때처럼 "아니다. 할말은 하겠다"라며 세조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기개를

보여주었더라면 신숙주가 택한 선택이 더 이해가 갔을 것이다. 

 

그래서 세월에 따라 변화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달라야하는 것도 알고 현실과 타협하는

현실주의적인 신숙주 모습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사육신처럼 원칙을

따지는 꼬장꼬장함이 더 마음에 끌린다. 요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인지 더욱 그리워진다.

 

역사에 가정은 부질없은 것이고 역사엔 만약에 라는 말이 허용되진 않지만 가끔은 가정을

해보고 싶은 때가 있다.

'사육신이 단종복위운동에 성공했더라면" 세조가 이룩한 조선보다 더 나빴을까?

왠지 어린 단종이였더라고 세종,문종의 피를 이어받은 군주였으니 잠깐의 어려움을

있었겠지만 세종을 이어 문치의 나라로 더욱 발전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너무 안의한 생각일까?

 

신하된 도리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지만 어떻게 풀어 갈 것이가 하는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신숙주와 사육신 . 결과가 어떻든 모두 진정한 조선의 신하임은

틀림없고 그 선택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역사에 대한 바른 시각을 특히 신숙주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분들은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ps) 이 책을 읽을 때 많은 시간이 걸렸다. 447쪽의 분량때문이 아니라 군데군데 즐거운

우리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글거렸다. 덴겁했다. 비나리치기, 콩팔칠팔, 용모파기,

쓰렁쓰렁한, 울골질 등 처음 접해보는 말들이라(내가 무식한 건가?)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면서 읽느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만가만

발음해보면 어찌나 정감가는지 우리말을 찾아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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