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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 - 소설로 쓴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
김용필 지음 / 문예마당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양반을 벗고 사람을 담으려오>.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순탄한 길을 갈 수있는 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마다하고 굳이 세상과 맞서 아웃사이더로 살며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이용후생를 부르짖었던 연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최적의 제목이
아닐까 한다. 참 맘에 드는 제목이다.
연암 박지원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은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양의 학문과
과학기술에 지적 충격을 받은 지식인들이 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이 태동했던 시기다. 그중에서도 박지원은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펼쳐 조선 사회를 개혁하자는
신지식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책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책으로 '소설로 쓴 연암 박지원의 생애와 문학'
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연암의 문학작품보다는 연암의 문학적 사랑과 인생을
그렸다는 작가의 말처럼 연암의 일대기와 소설적 창작이 어울려져 있다.
박지원은 노론벽파인 명문가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서양문화에 남다른 식견을
가진 실학자였던 장인 이보천과 처삼촌 이양천의 영향으로 실학에 눈을 떴다.
고질적인 신경쇠약과 우울증때문에 과거를 포기하고 그 시간들을 사유와
글쓰기로 보냈다.청나라 건륭 황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다녀온 후 쓴 <열하일기>가 문체반정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어렴움을
겪었다. 나이 50이 넘어 음관으로 벼슬을 얻은 뒤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그곳에서 백성을 위한 이용후생의 정치를 실천하였다. 양양부사로 재직중
중풍으로 쓰러져 69세 나이로 별세했다.
이 책은 연암의 일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장점이다. <열하일기>를 쓴
뛰어난 문장가 이면에 있는 사람냄새 풍기는 인간적 면모와 벗들과의 우정,
시대적 고민을 교감할 수 있도록 인간 박지원의 모습을 낱낱이 풀어놓았다.
그러나 범상치 않았던 연암의 삶. 이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소설로 버무렸을
까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러 올랐던 마음이 정약용과 문체반정으로 인한
토론을 하는 시작부터 수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고 극적인 묘미를 위하여 인물과 사건들은
사실과 무관한 부분이 있다고 서문에 명시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간과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조시절 박지원와 더불어 지식인의 양대 산맥이였던 다산 정약용과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게 정론임에도 첫서두의 만남도 그렇고 연암에 대한 비판을
연암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단정지어 버리는 묘사는 거슬린다.
또한 앞부분에선 소현세자가 인조에게 독살당했다고 하고선 뒷부분에선
인조가 던진 벼루에 맞아서 소현세자가 죽었다는 일관성 없는 역사적 사실도
아쉽다.
인물을 설명할 때마다 똑같은 수식어가 반복되어 나오는 것, 이를테면 연암의
할아버지 박필군이 나오면 대사간,지돈령부사, 병조참판을 지냈다는 양력이
자동적으로 반복해서 나오고, 봉원사에서 만난 기인 윤영은 여러번 등장하여
누군지 다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다시 설명하는 하는등 소설의
긴장감을 놓아버리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럼에도 18세기 지식인의 냉철함과 개방적 자세, 허위의식에 빠진 양반
사회를 비판하던 학자로서의 연암과 직접 백성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가난에서
구제하기 위해 청나라의 선진 기술을 직접 만들어 백성을 위하던 관리로서의
박지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오늘날 연암 박지원같은 인물이 새삼 더 그리운 이유는 뭘까?
문득 탑골공원에 가서 백탑파들의 지식의 향연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