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 독립운동 초단편 앤솔러지 마름모 청소년 문학
김동식 외 지음 / 마름모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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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역사적 사실이 적힌 문장 한 줄만으로는
독립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염원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이 책은 역사적 순간을 포착해 담아낸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길지 않지만 독자에게 짧고도 강한 울림을 남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백범 김구, 박상진, 남자현과 같은 인물들의 모습도 그려지지만,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과 사건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도 15만 원 탈취 사건의 주역 윤준희, 한미 합작 특수훈련 전사 오성규, 그리고 호남의 항일운동가 이석규. 이제껏 빛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던 진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를 놀라게 했다. 사실 이 책에 실리지 못한 독립운동가들까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은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들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그들의 숭고한 노력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지만, 이 책 속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이야기들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를 그 시대의 현장으로 이끌어, 그들의 투쟁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지식으로 암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마음에 깊이 남았던 인물은 임시정부 참의부 소속으로 무장투쟁을 했던 채찬이었다. 그는 투쟁 중 전사한 이들의 자녀들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보호자가 이어졌다. 보호의 되물림이었다. 아이들은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나 또 다른 누군가의 아이가 되었고, 그 덕분에 아이들은 끝까지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들을 지켜낸 것은 아버지라는 이름에 담긴 사명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장면을 읽는 순간, 나는 먹먹함에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좋은 점수를 위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외워 왔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이 책을 통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작가들의 손길을 통해 이야기에 살과 뼈가 더해지자, 교과서 속에 머물던 인물들이 하나의 생생한 모습으로 완성되어 갔다. 그리고 이야기가 막을 내린 순간, 그것은 뭉클함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그리움으로 남았다.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을 그린 작품들은 많다. 그러나 비슷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늘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억울함과 슬픔, 분노와 상실이 뒤섞여 마음속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왜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지 못했을까.'

오늘도 나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어떤 책을 읽을지 생각하며 주말에는 어디로 놀러갈지 계획한다. 이렇게 평범하고 안온한 나의 일상 속 작은 고민들은, 결국 그들의 희생이 만들어 낸 결코 작지 않은 '행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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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과 풋사과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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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트라우마는 정말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겨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소설의 중심에는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 9.11테러로 부모를 잃고 얼굴에 흉터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선재, 그리고 부모의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남겨진 아이 건우. 선재는 고향인 합천에서 번역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어느 날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건우를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건우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이나 분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감정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상태가 오히려 그를 괴롭힌다. 그는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반면 선재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도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건우에게 선재는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두 사람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커다란 사건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며,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와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번역가인 선재의 직업이다. 문장의 흐름을 고민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따라가는 일. 번역은 결국 문장을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선재가 살아가는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는 문장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쳤는지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번역이라는 일은 오히려 선재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을 견디기 위해 붙잡고 있는 작은 질서처럼 보였다.

소설 속에서 선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한테 따뜻한 마음이 없어서 타인을 위로하는 게 껄끄럽다면, 그래서 함께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누굴 위한 일이냐?"(189p)

선재는 건우의 분노를 억누르려 하지도,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저 묵묵히 곁에 머문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회복의 방식은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처럼 보였다.

선재에게는 집에 쌓아 둔 성냥의 두약 색으로 하루의 운을 점치는 습관이 있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통제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그 습관은 점점 잊힌다.

작품의 제목인 '성냥과 풋사과' 역시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성냥은 언제든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는 기억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풋사과는 아직 익지 않은 감정과 이해되지 않은 경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작품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아직 익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안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삶은 완전히 이해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함께, 아직 덜 익은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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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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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로 살아갈 것인가'

스무 살 준서는 모로코와 파리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는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서울행은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시도였지만, 그는 다시 이방인이 된다.

주연을 한국에 대한 끌림의 이유로 생각하지만, 그마저 신기루였음을 깨닫는다. 나는 준서가 타인에게 기대다 무너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정체성이란 타인을 통해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작품을 통해 '소속'이 곧 정체성인지 묻게 되었다. 준서는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라는 두 색이 섞여 자신만의 색을 잃은 듯 보이지만, 그 섞인 색이 준서만의 색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외국에서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오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서도 언젠가 '나다움'이 자신의 정체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

준서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끼던 순간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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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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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소녀가 겪어야만 했던
가족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


중학생 마리안나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남동생 야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잔잔하고 평온했던 일상은 아빠의 파산으로 무참히 깨져버린다. 빚을 청산하기 위해 부모는 영국으로 떠나고, 마리안나와 야쿱은 할머니 알리치아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 작품은 한 가장의 무책임함이 어떻게 한 가족의 형태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가족이란 울타리는 단단해 보이지만, 현실의 사건 하나로도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리안나는 부모와 떨어져 살아가는 생활을 마음 깊숙이 경멸한다. 오래되어 낡은 가구, 쿱쿱한 냄새가 나는 집, 그리고 자신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할머니까지, 그녀는 모든 상황이 자신을 억누른다고 느낀다. 이때 마리안나가 느끼는 '상실'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감각에 가깝다.

"자신이 겪은 일이 무엇인지 이름조차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163p)

이 문장은 마리안나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녀의 고통은 존재하지만, 아직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힘조차 없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극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고, 마리안나 역시 부모의 부재와 할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삶에 집중하지 못한 채 방황한다. 성적은 떨어지고, 수업과 친구 관계마저 흔들린다. 이는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현실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이란 온전한 형태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함께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마리안나를 보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 작품 속 가족은 이미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삐거덕거리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 그녀에게 가족은 상처를 주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사라져서는 안 되는 마지막 안전장치였던 듯하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된다. 그러나 중학생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낸 '상실의 그림자'는 깊다. 부모의 부재와 이혼, 세대 차이 등 이 사회적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마리안나가 집을 도망칠 만큼 버거워했던 상황이 결코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끝은 다행스럽게도 희망적이다. 무너진 가족의 틀은 다시 세워지고, 가족들은 각자의 자리를 조금씩 되찾는다. 이상적인 화해라기보다는, 상처를 안은 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관계에 가깝기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당연하게만 여겨지던 것들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붕괴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족의 의미와 자신의 자리를 다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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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홍이
박경란 지음 / 하늘퍼블리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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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타고 내려온 아픔의 역사.
그리고 그 아픔을 끝마치기 위한 또 하나의 '안녕'


이야기는 3대에 걸쳐 대물림된 상처의 시간을 따라간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 징용, 한국 전쟁, 파독 간호사,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길게 관통한다.

일본인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된 홍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 간신히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삶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기엔 그녀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너무도 가혹했다. 죽음을 결심한 순간, 일본 군수공장에서 끌려갔다 돌아온 태구를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안 삼으며 살아가지만, 한국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이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홀로 딸 현자를 낳은 홍이는 침묵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현자는 파독 간호사가 되어 독일로 떠나고, 현자의 딸 은수는 아빠의 죽음 이후 계모인 현자의 손에서 자란다. 그러나 은수는 뿌리를 알지 못한 채, 설명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살아간다. 이 세 여자의 삶은 모두 '전쟁'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홍이라는 인물이 선택한 '침묵'이었다. 딸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과거를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던 삶. 그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을지, 나는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상처를 말하지 않는 것이 곧 극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홍이를 통해 더 분명해졌다.


"침묵했던 할머니들은 한참이 흐른 후에야 상처를 이야기했다. 상처가 치유되어서가 아니라, 상처를 안고 저무는 인생이 더 두려워서였다."(109p)

한 번 구겨진 종이는 다시 필 수 있어도 남은 주름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질 수는 있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 이 아픔은 3대에 걸쳐 이어져야 했을까. 답 없는 질문을 되뇌는 사이, 이야기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늘 홍이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존재하는 인물, 모든 고통이 그녀를 향해 모이고 다시 흘러간다. 홍이의 삶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결국 한참을 멈춰 서야 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홍이라는 인물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상상하는 순간 끝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그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땅에서의 삶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이렇게 참 많은 상처를 품고 있다. 그 시간을 직접 겪지 않은 나는,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밖에는 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홍이들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가족의 비극이 아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새기고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고통의 역사다.
그리고 이 소설이 건네는 '안녕'은, 이별이 아니라 끝내 잊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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