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과 풋사과
단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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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트라우마는 정말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겨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소설의 중심에는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있다. 9.11테러로 부모를 잃고 얼굴에 흉터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선재, 그리고 부모의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남겨진 아이 건우. 선재는 고향인 합천에서 번역 일을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어느 날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건우를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건우는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이나 분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감정이 비어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상태가 오히려 그를 괴롭힌다. 그는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붙인다. 반면 선재는 큰 트라우마를 겪고도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건우에게 선재는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두 사람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커다란 사건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잔잔하게 흘러가며,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와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번역가인 선재의 직업이다. 문장의 흐름을 고민하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따라가는 일. 번역은 결국 문장을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선재가 살아가는 '삶'은 그렇지 않다. 삶에는 문장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쳤는지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번역이라는 일은 오히려 선재가 통제할 수 없는 삶을 견디기 위해 붙잡고 있는 작은 질서처럼 보였다.

소설 속에서 선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한테 따뜻한 마음이 없어서 타인을 위로하는 게 껄끄럽다면, 그래서 함께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누굴 위한 일이냐?"(189p)

선재는 건우의 분노를 억누르려 하지도,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저 묵묵히 곁에 머문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회복의 방식은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처럼 보였다.

선재에게는 집에 쌓아 둔 성냥의 두약 색으로 하루의 운을 점치는 습관이 있다. 사소한 행동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통제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건우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그 습관은 점점 잊힌다.

작품의 제목인 '성냥과 풋사과' 역시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성냥은 언제든 다시 불이 붙을 수 있는 기억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고, 풋사과는 아직 익지 않은 감정과 이해되지 않은 경험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작품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아직 익지 않은 감정과 기억을 안고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삶은 완전히 이해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함께, 아직 덜 익은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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