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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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골목 지하에 위치한 작은 바 '히바리'와 헬스클럽 '사브'를 배경으로, 이 작품은 각자의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마주하고 풀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설은 여섯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물들은 서로 다른 사연 속에서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 일상과 가족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중년의 직장인 혼다, 일의 압박에 짓눌린 미레, 딸의 죽음 이후 무너진 가족 관계 앞에서 한계를 느끼는 치과 의사 시카이까지.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고민을 안고 히바리를 찾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히바리의 주인 곤다, 일명 '곤마마'다. 그는 조심스럽고 따뜻한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러나 곤마마 자신도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살아왔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나 명확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야 하거든. 그래야 상대 마음 깊숙이, 정확하게 전달되니까."(39p)
결국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작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였다.


☕️ 작품 속 인물들의 사연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더욱 공감이 된다. 일에 대한 압박, 가족과의 단절 같은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역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물들이 아픔을 숨긴 채 웃고 있을 때에도 곤마마는 조용히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하느냐 아니겠어?"(111p)

☕️ 이 작품은 곤마마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들어주는 태도와 공감임을 보여준다. 상대를 존중하며 귀 기울일 때야 비로소 진심이 전달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위로해 주던 곤마마 역시, 결국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각자 상처와 어둠을 안고 살아가며, 그 역시 타인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작은 목소리로 전달되는 진심’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견디고 조금씩 성장한다. 덕분에 독자는 지금 자신의 삶의 고통도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여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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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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ゲーテは全てを言った

🏷️ 일본의 괴테 연구 일인자 히로바 도이치. 그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딸과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홍차 티백의 꼬리표에 적힌 한 문장을 발견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도이치는 이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괴테 전집을 뒤지고, 학계 사람들과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며 추적한다. 그러나 결국 명확한 출처를 찾지 못한 채, TV 프로그램 촬영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명언을 입에 올리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마침내 도이치는 아내와 딸, 그리고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독일에서 그 명언의 출처를 찾게 되고, 자신이 왜 그토록 이 문장에 집착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 도이치는 자신의 독일인 친구 요한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독일 사람은 말이야,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23p)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명언이 있고, 그 말들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전해져 왔다. 유명인이 말했다고 알려진 명언들 중에는 사실 누군가가 지어낸 말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명언들을 진짜처럼 믿고, 그 말에 가까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작품은 명언의 진위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도이치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 도이치가 명언의 출처를 찾아나서는 여정 끝에
‘모든 것은 반드시 이어져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언가로부터 생겨났고, 우리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212p)
라고 깨닫는 장면에서, 나 역시 큰 깨달음에 휩싸였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그 문장을 비로소 몸으로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껏 유명인이나 위인들의 명언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흔히 명언을 SNS 프로필에 적어 두는 사람들을 비웃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통해, 명언이 지닌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직접 내 입으로 말하고, 그 말에 걸맞게 행동할 때, 그 문장은 비로소 남의 말이 아닌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괴테의 그 말 말이지, 자네는 그걸 찾을 수 있을게야.
그 말이 진짜라면.“(157p)

자신의 스승이자 장인인 마나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명언의 출처를 찾는 일보다, 직접 ’말하는 행위‘를 통해 그것이 진짜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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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 가라사대와 같은 표현인 듯,ㅎㅎ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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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를 앞둔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석탄 장수인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다섯 딸과 함께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석탄 배달을 위해 찾은 수녀원에서 혹독한 추위 속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고립된 미혼모들과 아이들을 보게 된다.

“이 위는 이렇게 고요한데 왜 평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67p)

겉보기에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한 펄롱은 수녀원에서 본 장면을 계속 떠올인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도덕적 책임과 양심, 그리고 현실적 두려움이 부딪히며 갈등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119p)

펄롱은 자신의 키워 준 미시즈 윌슨의 따뜻한 친절과 격려, 그런 ‘사소한 것들’을 떠올리며 결국 용기를 낸다. 앞으로 어떤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 모르지만, 그는 한 발을 내딛는다.

☕️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가족과 함께 따뜻한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케이크를 만들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성당에 가는 모습들. 그러나 그 따뜻함 사이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둠이 깔려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펄롱은 어느 순간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29p)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삶을 살아온 그는 자신의 불행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수녀원에서 만난 소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그 기시감은 점점 더 커져 그 소녀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수녀원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교회와 깊게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 펄롱이 거대한 두려움과 맞서는 모습을 보며 ‘나라면 과연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작품 속’수녀원’과 같은 공간은 존재해 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도가니에서 다룬 광주인화학교 사건이었다. ‘장애 아동을 돌보는 학교’라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아이들을 절망의 끝으로 밀어 넣었던 그 현실은, 소설 속 수녀원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끼면서도,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나라면 펄롱처럼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 작품 속 수녀원은 실제 역사 속 막달레나 세탁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감금되고 강제 노역을 당하며, 때로는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같은 고통과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마음 깊이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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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복원이 될까요?
송라음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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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결혼의 실패를 뒤로하고 설은 구례에 정착한다. 지리산 근처 헌책방에서 책 복원 전문가로 일을 시작한 그녀는 어느 날 등산 중 길을 잃고 야생동물 수의사 유건과 만나게 된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구례에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설은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에서 산에서 마주쳤던 남자와 다시 만나고, 그가 바로 인터뷰 대상인 유건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반달가슴곰 치료로 지친 유건은 약속된 설과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첫 만남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어긋난다.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게 되던 중, 설의 오랜 친구 태양이 나타나 뒤늦게 마음을 고백하고 설은 혼란을 느낀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는 설에게 유건은 말한다.
"이미 부서진 마음은 테이프 덕지덕지 붙인 책이랑 똑같아요. 그 상태로는 예전 그대로 못 돌아간다고. 그러니까 그냥 새 걸로 바꿔요."(314p)

낡은 책을 고치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고칠 용기조차 없었던 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믿음을 주는 유건에게 점점 흔들린다. 두 사람은 갈등과 오해를 거치며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서서히 회복해 나간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시 세우고,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랑도 복원이 될까요?』라는 제목은 지나간 사랑의 상처 역시 책처럼 다시 복원될 수 있는지 묻는다. 인물들이 서로의 상처를 대면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그 질문에 답을 건넨다.

"책을 고치며 배운 첫 번째 사실은 낡고 파손이 심한 책일수록 험해보이는 외양과 달리 따뜻한 사연이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책이라는 건 주인이 아끼는 만큼 손때가 묻고 낡는 물건이니까."(76p)

특히 책을 대하는 설의 태도는 인상 깊다.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친 책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고쳐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과 사람 역시 고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상처를 딛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 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아픔도 치유받은 듯했다.

설과 유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윤슬이 반짝이는 섬진강과 달콤한 모과나무의 향이 느껴질 것 같은 화엄사 구층암, 대나무 숲 너머 반전의 공간을 품은 쌍산재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의 봄이 너의 봄은 아닐 수도 있다"는 태양의 말처럼, 각자의 속도로 찾아오는 봄을 기다리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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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로 그린 심장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22
이열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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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픽셀처럼 흩어져 있던 존재들이 모여, 심장과도 같은 '사랑'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거대한 위협 앞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며 공존의 길을 찾아갈 것인가.


2040~2060년대, 초능력을 지닌 능력자들과 일반인이 공존하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픽셀로 그린 심장》은 14편의 독립된 단편이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는 소설이다. 각기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며 하나의 서사로 확장되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작품은 염력, 사이코키네시스, 자가 치유, 기억 조작 등 다양한 초능력을 가진 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자유롭게 능력을 사용하며 100% 자신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160p)

능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나'로서 살고 싶은 인물들의 바람은, 초능력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상처와 인간관계 속 갈등에 주목하고 있다.

2060년대, 외계 생물체 바르크의 침공으로 한국은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혼란 속에서 초능력자들은 "모두가 합심해서 살아남아야 해."(232p)라며 시민들을 지키지만, 그 힘이 커질수록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과거 차별의 기억이 다시 갈등을 일으킨다.

"그래서 언니도 늘 바랐잖아,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241p)


이 작품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인물들에 집중한다. 각자의 능력으로 발생하는 문제와 상처, 고립, 이별을 겪으며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고 성장한다. 특히 재이는 상처받은 언니 지수에게 말한다.

"난 인간성을 믿어. 다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배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어."(241p)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배려'라는 메시지는 큰 울림을 준다. 우리 사회 역시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며,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해 온 것도 사실이다. 작품은 그 희생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336p)

이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번쯤 초능력을 상상하며 동경하지만, 작품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만약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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