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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볼딘 동물원 ㅣ 은행나무 시리즈 N° 23
송섬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8월
평점 :
멜볼딘이라는 찬란함으로 시작해,
상처라는 이름의 동물원에 마침표를 찍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 수진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연서.
멜볼딘여자고등학교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두 사람은
단절된 관계를 다시 이어가기 시작한다.
영업이 중단된 빈 동물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서로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절대로 읽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불현듯 수진은 사라져 버린다.
10년 뒤, 연서는 수진의 딸 표은에게서 과거의 편지를 받게 된다.
두 사람은 떠나버린 수진이 남긴 흔적을 찾기 위해
외국의 한 동물원으로 향한다.
수진과 연서, 그리고 표은.
이 세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게 했다.
슬프다는 말도, 먹먹하다는 말도,
그렇다고 서늘하지도 않았다.
사랑이 끝난 후,
비로소 이별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문득 찾아오는
알싸한 감정이 드는 작품이었다.
표은은 삶의 마지막에 자신을 떠난 엄마에게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정작 본인은 그 감정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열렬히 미워하는 마음 안에는
그만큼 상대를 향한 깊은 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표은이라는 인물에게 자꾸 눈이 갔다.
엄마가 남겨두고 간 편지.
자신에게 적은 것이 아닌 그 편지를,
표은은 대체 왜 연서에게 전해주려 했던 것일까.
그 행동의 의미를 한참 곱씹어봤지만,
명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병실에서 죽어가던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다른 사람인 양 기억하고 싶었던 것처럼,
표은 역시 엄마라는 사람의 또 다른 한 조각의 모습을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편지의 주인을 통해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연서에게 멜볼딘여자고등학교는
수진과의 관계가 시작된 찬란한 기억의 장소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동물원’은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등장한다.
한 사람의 부재가 남겨진 두 사람을 만나게 하고,
한때 누군가와 기억이었던 공간이
또 다른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장소가 된다.
이 소설은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잃는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멜볼딘에서 시작된 찬란했던 기억은
수진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지나
결국 연서와 표은이라는 새로운 관계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동물원,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시작된 만남과 헤어짐.
그 너무나 당연하지만 살아내느라 쉽게 잊고 살았던 진실을,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조용히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