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 - P15
살기 힘든 것이 심해지면 살기 편한 곳으로 옮겨 가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 가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가 태어나고 그림이 생겨난다. - P15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 P16
서른이 된 오늘날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를 분리하려고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 치워버리려고 하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 P16
그러고 보면 시인은 보통 사람보다 시름이 많은 성향이라 평범한 사람의 배 이상으로 신경이 예민할지도 모른다. 세속을 초월한 기쁨도 있겠지만 슬픔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되는 것도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 P20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알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는 제삼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제삼자의 위치에 서야 연극을 봐도 재미있다. 소설을 읽어도 재미있다. 자신의 이해는 문제 삼지 않는다. 보거나 읽는 동안만은 시인이다. - P21
이해관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니까 전력을 다해 예술 방면에서 그들의 동작을 관찰할 수 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아름다운지 아름답지 않은지를 감식할 수 있다. - P26
가을이 되면 그대도 억새꽃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 P45
실연의 고통을 잊고 그 부드러운 면이나 동정이 깃드는 면, 수심 어린 면, 한 발 더 나아가 말하자면 실연의 고통 그 자체가 흘러넘치는 면을 단지 객관적으로 눈앞에 떠올리는 데서 문학과 미술의 재료가 된다. - P47
밟는 것이 땅이라고 생각하니 갈라지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하늘이라는 것을 알기에 번개가 관자놀이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움도 생긴다. 남과 다투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속세가 재촉하기 때문에 번뇌의 고통을 면치 못한다. - P86
아름다운 것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려고 안달할 때,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그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사에서 차면 기운다는 속담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 P105
"몰인정한 게 아닙니다. 비인정하게 반하는 겁니다. 소설도 비인정으로 읽기 때문에 줄거리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겁니다. 이렇게 제비를 뽑는 것처럼 착 펴서 펼쳐진 곳을 멍하니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 P125
"그 가가미가 연못은 저도 가보고 싶은데요."
"가보세요."
"그림 그리기 좋은 곳인가요?"
"몸 던지기에 좋은 곳이지요."
"아직은 그리 쉽사리 몸을 던지진 않을 생각입니다."
"저는 머지않아 던질지도 몰라요."
"제가 몸을 던져 떠 있는 장면을, 괴로워하며 떠 있는 게 아니라 편하게 죽어서 떠 있는 장면을 예쁘게 그려주세요."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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