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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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중독』은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 롤란드 파울센은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룬드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분석한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왜 인간은 생각과 걱정에 중독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걱정이 일상인 우리는 과한 걱정을 다스리기 위해 약이나 상담이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걱정과 불안에 대한 흔한 설명으로는 풀숲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사자를 불안해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의 생존본능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강력한 생존본능 때문에 불안과 걱정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사회학자인 저자는 대중 "현상"으로써 걱정과 불안을 분석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걱정을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걱정은 기본적으로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를 물을 때 생기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로 정의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정의를 좀 더 명확히 한다. 저자에 따르면 걱정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학문적 의미에서 걱정은 불안에서 야기된 반사실적 사고라고 정의할 수 있다(p76). 여기서 반사실적 사고란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식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생각이다. 반사실적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 매우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정서 중 많은 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돕기도 한다. 반사실적 사고는 인간의 근본적 능력이기도 한데 문제는 반사실적 세계에 몰두하는 강도가 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1930년대 소련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 심리학자인 알렉산더 루리야는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의 걱정은 크게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산업사회는 문해력과 추상적 사고력이 점점 더 중요해졌고 감각적 경험에 의존하던 농경사회에 비해 온갖 정보원에 의존하는 산업사회에 이르러서는 반사실적 사고에 기반을 둔 논리적 추론이 중시되었다는 것이다. 루리야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일찍이 논리적 추론을 배우고, 그리고 인해 상상력이 자라고 자기 성찰 능력도 갖추게 되어, 사람들은 더 자유로와지고 주변 환경에도 덜 얽매일 것이라 봤다. 한편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옳은 생각이다.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를 많이 하긴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창의적인 반사실적 사고를 하기보단 주로 거의 대부분 내 개인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걱정한다. 걱정은 개인의 책임과 자기 결정과 연관된 것에 더 강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류학 연구를 자세히 살피면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발견된다. 늘 질병을 설명할 때 그 중심에 있었다.



2부는 문화와 역사를 넘나들면서 우리가 이토록 걱정 가득한 삶에 도달하게 된 여정을 설명한다. 수렵 채집 공동체의 삶에서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자본주의에 도달했다. 인간의 삶이 복잡해졌으니 걱정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불안해진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가 중시될수록 위험관리와 실패는 개개인의 탓이 된다. 또한 우리는 신이 계획한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기획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영국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세속적 걱정이 종교적 걱정보다 더 빨리, 더 넓게 퍼진다고 말한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 재앙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었고, 도덕적 양심의 가책은 위험 분석으로 대체되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특히 대중매체가 보도와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의 불안과 걱정에 대한 인식을 급진적으로 바꾸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 등장하고 이에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의 혼란은 가중된다. 왜냐면 전문가들이 저마다 다른 분석을 내놓기 때문이다.




3부는 불안과 걱정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싶은 우리를 위한 대책을 내놓는다. 요즘 정신과 상담을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환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 치료와 상담을 위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덧 정신과 상담, 우울증 약 복용 등에 익숙해졌다. 한편 이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삶 속에 정신 기능과 관련된 문제는 잔디에 있는 잡초와 같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정신 건강에 있는 문제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학자들 중엔 '정신질환'이라는 개념과 작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각종 '장애', '증후군', '질병', '신경증'으로 언어적으로 명명하는 순간 그것들은 진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불안을 줄이려는 심리치료는 불안의 수용을 방해한다. '불확실성'을 긍정하고 이것을 한껏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 존재와 우주의 근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삶은 통제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 진실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근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착취한 지구에서 더 이상 풍요의 열매만을 수확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상에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다. 끝없는 진보와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물질숭배 삶의 방식, 자연을 재료 삼아 행복을 짜내는 삶의 방식이 어마어마하게 틀렸다는 또 하나의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람들에게 미래가 항상 오늘날처럼 중요했던 건 아니다. 미래 지평선,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내다보느냐는 오로지 실용적 이유로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며칠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의 미래 지평선은 구체성을 초월해 멀리까지 확장되어 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미래‘는,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감히 추측할 수 없었건 긴 기간을 아우른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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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 내 발목을 잡는 가족에게서 벗어나 죄책감과 수치심에 맞서는 심리학
셰리 캠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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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리학자이자 가족 문제 전문가인 저자 셰리 캠벨은 단호하게 말한다. 해로우면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내 가족이 내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면서 내 영혼을 갉아먹고 내 육체를 파괴해도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참지 말라고. 해로운 가족과는 관계를 끊어내도 된다고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가족은 모두 조금씩 미쳐있으니 결함을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모든 부모는 완벽하지 않다. 의도치 않게 자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고 자녀가 원할 때마다 나타나 정서적 욕구를 다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떤 부모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평범한 결함과 한 인간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과정을 파괴하는 해로움은 분명히 다르다. 저자는 1장에서 해로운 가족과 결함이 있는 가족을 구분한다. 해로운 부모는 자녀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한다. 네가 더 착하거나 덜 보채는 아이였다면 자신도 부모 노릇을 더 잘했을 거라 주장하고, 부모가 하는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없는 아이를 그렇게 믿게 만든다. 자기 행동과 무관한 갈등이 생겨도 비난의 화살이 자녀를 향한다. 건강한 부모와 그렇지 않은 부모와 다른 점은 자녀에게 상처를 줬을 때 부모가 속상해하는지 아닌지다. 본인 인생의 불행을 자녀에게 풀고 그것에 대하여 수치스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모는 해로운 부모다. 한편 해로운 부모는 어떤 사람들인가? 저자는 1장에서 해로운 사람의 특성을 잘 정리하고 있다(p28~31). 이 특성들에 대한 목록을 내 부모 혹은 가족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적 결함들과 비교해 보자.





불행히도 최근까지도 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참아라'가 우세했다. 수많은 문학작품들은 가족에서 비롯된 불행과 학대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다루어왔지만, 대중 매체는 거의 대부분 매우 정상가족 신화에 사로잡혀 매우 좁은 가족 이미지를 제시했다. 가족문제 상담가들 역시 가족을 화해시키거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목표를 두었지 '가족과 단절하여도 된다'라는 식의 조언은 없었다. 따라서 최근까지도 우리는 가족문제에 있어선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망령을 견뎌야 했다. 저자 역시 가족으로 인해 불행을 견뎌야 했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비교할 본보기나 설명 같은 것이 없었고, 본인 선택의 결과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었던 것이다. 가족을 떠나서 생존해야겠다는 이 간절하고 중대한 결정 앞에 기댈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책의 원제는 『 Adult Surviors of Toxic Family Members 』으로 국내 번역본과 차이가 있다. 국내 번역본 제목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은 무척 직관적이고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한다.


이 책은 해로운 가족과 관계를 끊으면 희망이 생기고 삶이 명료해진다는 진실을 전한다. 해로운 가족과 선을 긋는 기술과 외부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느 전략을 알려준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이 책을 쓰는 건 별로 유익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왜냐면 이 책 때문에 저자의 가족은 더 길길이 화를 내고 더 큰 앙심을 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가족의 학대에서부터 살아남아 삶을 살아야 할 생존자들을 위해 힘주어 말한다. 가족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상처 많고 어딘가 음울해 보여 왠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으로 자립하여 타인의 마음을 고통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고, 무감각하고, 다정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가족과 관계를 끊는 게 아니다. 사실 정반대다. 경계선을 긋는 이유는 내가 입은 상처를 걱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다.

학대하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경계선이 생기면 상처가 치유되고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와 방법이 열린다. - P57

해로운 가족과 관계를 끊는 건 그들을 버리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접촉 지점을 없애는 것이다. 해로운 가족은 정서적 유기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잔인성을 인지한 후 느낄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가 일으키는 악영향을 계속 모른 척하기로 스스로 선택한다. (중략)

해로운 가족은 이런 무감한 방어로 자신들이 꽤 괜찮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유지한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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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학 -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
마커스 초운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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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커스 초운은 대중의 눈높이에서 과학을 알려온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마커스 초운이 저술한 많은 책들이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고 좋은 반응들을 얻었다. 마커스 초운은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공대에서는 바로 그 유명한 리처드 파인먼의 지도로 천체물리학을 전공했다. 그가 저술한 <중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과학 도서상인 영국 왕립학회 과학 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이번에 까치에서 출간된 신간 <지금 과학>의 원제는 <The One Thing You Need To Know>이다. 저자는 양자 컴퓨터에 대한 강연을 의뢰받고 어떻게 하면 과학 지식이 없는 청중들도 양자 컴퓨터를 이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책의 집필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양자 컴퓨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다른 모든 것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한 가지는 무엇일까?"를 깊게 파고든 저자는 그 고민의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나와 같은 대중은 저자가 설명해 주는 이 한 가지만 잘 이해해도 현대 과학의 핵심을 어슴푸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35년 동안 무려 17권의 과학 소설과 교양서를 집필했는데 현대 과학의 모든 개념과 사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깨달음을 과학 전공자들만이 알아듣는 언어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하여 우리에게 가장 최신의 현대 과학의 큰 그림을 그려준다.


<지금 과학>의 한국어 번역본 부제는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이다.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꼭 알아야할 핵심 21개는 다음과 같다.


중력

전기

지구 온난화

태양이 뜨거운 이유

열역학 제2법칙

판 구조론

양자 이론

원자

진화론

특수 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인간의 진화

블랙홀

표준모형

양자 컴퓨터

중력파

힉스장

반물질

중성미자

빅뱅


앞서 말했듯 저자는 과학의 핵심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책 속에 등장한 21개의 핵심 과학 개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차근차근 설명된다. 이 책은 관심 있는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상관없지만 이 책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처음부터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의 시작은 '중력'이다. 21개의 과학 개념들은 기초부터 시작해서 점점 심화된 설명으로 나아간다. 책을 차근차근 읽어가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의 핵심 개념을 서서히 다가온다. 지식을 알려주는 책은 결국 저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제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저자의 앎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커스 초운의 <지금 과학>은 과학 입문서로 아주 쉬운 개념부터 최신의 이론까지 담고 있다. 각 장의 도입 부분은 아주 쉬운 설명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사로 잡지만 몇 장을 넘기면 난이도가 꽤 올라간다. 저자가 강조한 그 '한 가지'를 얻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분명 커다란 성취감을 맛볼 것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자유로운 감상만을 담아 쓴 리뷰입니다.

중력은 모든 물체와 다른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보편적" 인력이다. 예를 들면 여러분과 길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하고, 여러분과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동전 사이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그러나 중력은 지극히 약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실제로 느끼기는 어렵다.
- P13

전기는 생물학과도 추종한다. 우리는 전기적 존재이다. 식품에 들어 있는 전자가 우리의 세포벽을 가로지르는 전기장을 만들고, 그것이 에너지를 가진 아데노신 삼인산(ATP)과 같은 분자를 생산한다.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그 내용을 장기 기억 속에 저장하는 흥미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뇌의 뉴런(신경세포) 사이를 흘러 다니는 전자 덕분이다. - P37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어제가 없는 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우주는 영원히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탄생했다. 대략 138억2,000만 년 전에 우리가 빅뱅이라고 부르는 불덩어리 속에서 모든 물질, 에너지, 공간은 물론이고 심지어 시간까지 폭발하듯이 탄생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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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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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었던 허먼 멜빌이 1851년 발표한 위대한 소설  『모비 딕』 을 소개하기 위한 수식어가 필요할까? 윌리엄 포크너는  『모비 딕』 을 손에서 놓자마자 '내가 썼더라면...'이라고 생각했고, 문화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이후 성취하기 어려웠던 '진정한 문학적 독창성'이 허먼 멜빌에 이르러 마침내 성취되었다고 평가했다. 소설의 명성에 걸맞게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왔고 독자들은 선호하는 출판사나 번역자를 골라서 읽을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독자의 화두는 '누구의 번역본을 읽을 것인가?'이다. 

이번에 작가정신에서 출판된 『모비 딕』은 대한민국 최고의 번역가로 손꼽히는 김석희 번역가님의 작품이다. 김석희 번역가님은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했고, 한글발전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출판사 작가정신에서도 이번 『모비 딕』이 출간 13년 만의 전면 개역판임(작가정신에서 2011년 김석희 번역가님의 번역으로 기 출간하였다)을 알림과 동시에 김석희 번역가님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또 하나의 역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개역판에서는 기존판에서 150여 개의 역주를 추가하였고, 등장인물 소개, 작가 연보, 역자 해설 및 대담 등을 담고 있다. 상징과 암시로 가득 찬  『모비 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주석과 해설들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 작가정신의 전면 개역판 『모비 딕』은 정말 국내 모비딕 번역본 중 끝판왕이 아닐까 한다.

『모비 딕』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모비딕'이라고 불리는 향유고래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이 복수를 하기 위해 모비딕을 뒤쫓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이슈메일의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된다. 줄거리는 간단한데 비해 『모비 딕』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모비 딕』은 방대하고 광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온갖 비유와 상징으로 넘쳐나고 작품 속에 담긴 철학적 사유의 매우 깊다. 다층적 구조와 중층적 의미로 가득 차 있는 『모비 딕』은 최소 세 번 이상 읽고 『모비 딕』 해설을 별도로 찾아 읽어야 그 뜻을 겨우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영국의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고래학에 분류했다고 한다.  고래의 생태와 활동, 포경 등과 관련된 방대하고 상세한 설명이 소설 『모비 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은 『모비 딕』을 쓸 때 과학적 정확성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방대한 문헌을 조사했다고 한다. 모비 딕을 뒤쫓는 과정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소설 읽기의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다.(그 속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번에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나온 전면 개정판 『모비 딕』은 주가 모두 각주로 처리되어 책을 읽을 때마다 책 뒤로 가지 않아도 된다. 김석희 번역가님의 혼신의 노력 덕분에 온갖 상징과 비유를 비롯하여 소설의 이해에 필수적인 시간적 공간적 맥락들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세계문학에 아무런 조예도 없지만 누군가『모비 딕』을 읽고자 한다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작가정신 2024년 전면 개역판 김석희 번역가 선생님의 『모비 딕』을 선택해서 읽으라고 말이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자유로운 감상만을 담아 쓴 리뷰입니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래도 좋다-지갑은 거의 바닥이 났고 또 뭍에는 딱히 흥미를 끄는 게 없었으므로,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내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다. - P43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이 기묘하게도 뒤죽박죽 엉켜버린 사태에는 우주 전체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농담으로 여기는 야릇한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인간은 그 농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농담이 다름 아닌 자신을 웃음거리고 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 P334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나아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정해진 단계를 거쳐 나아가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즉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도취, 소년기의 맹목적인 믿음, 청년기의 의심(만인의 숙명이다), 이어서 회의, 그다음에는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혹시나’ 하고 심사숙고하는 성년기의 평정 단계에서 정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그 단계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서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 ‘혹시나’를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 P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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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회복 -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김정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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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참전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추모 공간을 만든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던 누군가의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들이 참혹한 전쟁터에 끌려가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피해자이다. 그들의 희생과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적으로 공적으로 그들을 추모한다. 한편 강간 피해자를 위한 기념비가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하여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과연 그런 것이 필요하기는 한가?'였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무지와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는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일종의 무언의 지지이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침묵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공동체가 강간 문화를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만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공동체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사건을 비가시화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심지어 사건의 내용만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경우 생존자들 회복을 불가능하게 한다. 생존자들은 공동체에서 분리된다. 강간은 사회적 사건이다. 강간 사건의 처리 방식은 공동체 정의와 관련된 사회문제인 것이다.


미국 미니애폴리스공원에는 '성폭행 생존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는 공동체 조직가인 세라 슈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전 남자친구로부터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는 12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녀는 사법 시스템 안에서 피해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법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느끼기 힘들었는데 그것은 공동체가 성폭행을 다루는 방법에 기인했다. 가해자의 부모는 아들이 기소당하게 되었으니 평소 아들이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증언해 주는 공동체의 지지를 기대했다. 가해자 부모가 이런저런 아들 구하기 활동을 펼치는 동안 그녀는 그들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이러한 것은 삭제당했다는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강간 사건 몇 주 뒤, 그녀는 이 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본인임을 언론에 밝히기로 했는데 자신의 지인 중에 자기 언론 활동에 응답해 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


저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하버드대학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며 트라우마 치료 및 연구 분야의 세계적 거장으로 손꼽힌다. 이 책 『진실과 회복』은 허먼의 '트라우마 연구' 3부작 중 대미를 장식하는 역작으로 트라우마 회복에 필요한 마지막 요소로서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트라우마 회복은 공동체 차원의 진실 인정과 정의 바로 세우기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생존자들 중 여성과 아동 대상 폭력의 생존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생존자들을 택한 이유는 우선 이런 폭력은 인권 침해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하고 가장 오래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고 저자가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이러한 생존자들과 가장 많이 작업해 왔기 때문이다. 책 2부에는 저자가 아동기 성 학대, 성폭행, 성매매, 성희롱, 가정 폭력 생존자 여성 스물여섯 명, 남성 네 명으로부터 수집한 증언을 증언을 토대로 정의의 비전을 논의한다. 여기서 염두 해야 할 점은 저자도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증언자들은 생존자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1세 미만이나 최근에 폭행을 당한 사람은 인터뷰에서 제외했다. 이 제보자들은 회복의 시간을 보낸 뒤 '정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성찰한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권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이론인 '정의는 권력의 사회적 조직화에 의지한다'를 설명한다. 2부 <정의의 비전>은 제보자들의 증언으로부터 그려낸 정의의 비전을 상세히 설명한다. 3부 <치유>는 정의가 피해자를 치유할 뿐 아니라 가해자와 사회 전반을 치유할 수 있는 논의를 펼친다.



우리는 보통 '독재'라는 단어를 들으면 독재자 또는 소수의 권력 집단이 대다수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한한 권력을 부당하거나 잔인하게 사용하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독재는 계몽주의적 개념들인 '자유', '평등', '인권', '법치' 등과 대립항이다. 이 책에서는 '독재'가 '정의'의 대립항이기도 하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독재 사회는 강압적 통제의 수법들을 사용하여 종속 집단을 복종시킨다. 이 통제 수법들은 독재는 전쟁과 통지의 공개 영역에서도 친밀한 관계의 비공개 영역에서든 비슷한 양상을 띈다. 폭력은 아주 빈번할 필요도 없고 한 번 사용할 때 확실하게 사용하면 된다. 폭력의 피해자들은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인 '공포'와 더불어 사회적 감정인 '수치'까지 느끼게 된다. 지배자는 몇 사람을 대상으로 본보기식 폭력을 휘두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독재의 규칙을 따라 사는 사람들인 '방관자'가 되기 쉽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부당한 사건들 앞에 "머 세상일이 머 원래 그렇지"라고 자조하는 사람들은 이미 방관자가 된 이들이다. 폭력의 생존자들에게 방관자들의 공모와 침묵이 더 큰 배신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즉 우리가 피해자가 되면 친구들, 친척들, 이웃들의 무관심과 공모가 직접 당한 피해보다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다. 독재의 규칙도 공동체의 암묵적인 허락과 동의에서만 가능하다. 즉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존자 정의의 제1원칙은 공동체가 피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비가시화되고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각종 폭력을 공동체가 인정해야만 정의가 설 수 있다.



우리 안에 너무나도 깊이 박혀 있는 억압 체계들의 해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세계로 녹아든 억압 체계들을 낯설게 보고 불편하게 만들고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는 것.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체계들을 창안하는 것. 이 유토피아적이고 추상적인 선언이 이 책 『진실과 회복』에서는 다양한 증언자들의 목소리로 구체화된다. 저자는 철학, 사회과학, 역사, 법, 심리학의 성과물을 통해 트라우마는 사회문제이며 결국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함을 설명한다. 우리 모두는 개개인의 단위로 또는 가족 단위로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생존 게임'에 참전 중이다. 이 책은 주로 젠더 폭력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이 책이 전하는 정의와 회복에 대한 통찰력은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공개적 인정을 통해 생존자들을 예우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면 이는 흔히 생각하는 정의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러한 인정이야말로 생존자 정의 실현에 필수적이다. 생존자들에게는 이러한 인정이 큰 의미가 있다. 공동체와의 깨진 관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략)



기념비는 우리 사회가 누구를 예우하고 누구를 존중하는지를 말해주는, 오래가는 공개 선언이다. 더 많은 경우에는 누락을 통해 누가 치욕당하고 무시당해야 하는지, 누가 안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중략) - P22

성폭행 기념비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념물은 생존자들의 권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남성 우월주의에 말해지지 않은 특권 의식들에 도전한다. 은폐되어 있던 잘못들의 공개적 인정은 평등한 정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여러모로 표상한다. - P23

피해자가 분노를 느끼느냐는 그가 당한 피해에 공동체가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 P60

‘독재의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슨 방법으로 변화의 동기를 부여하겠는가, 그들보다 높은 사람(남자)의 권위에 의지해 단호하게 명령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지 않겠는가‘ (중략)

‘그 남자에게 변화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부친이나 남자 상사나 남자 목사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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