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 - 릴케와 카푸스 왕복 서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프란츠 크사버 카푸스 지음, 최성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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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는 그 유명한 릴케의 서한집이다. 테레지아 육군 사관학교 생도였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1883-1966)는 밤나무 고목 아래서 릴케의 시집을 읽다가 우연히 릴케가 사관학교의 선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카푸스는 갓 스물도 되지 못한 젊은 청년으로 군인의 길에 접어든 상태였지만 릴케와 마찬가지로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품고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일곱 살 많은 선배이자 흠모하는 위대한 시인 릴케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릴케에게 답장을 받는다. 그 두 사람은 1908년까지 서신을 교환하다가 점차 소원해졌다.

릴케가 시인 지망생 카푸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이하 『편지』)는 전설과도 같은 책이 되었다. 특히 문학계와 예술계에서 이 책은 필독 도서로 여겨졌다. J.D 샐린저는 이 책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성경 같은 책이라 말했고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그 특유의 수줍지만 카리스마 있는 말투로 이 책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팝가수 레이디 가가는 그녀의 콘서트에서 이 책에 나온 어느 구절 전체를 직접 낭독했다고 한다.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음미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편지』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젊은 시인이 보낸 편지』는 기존의 『편지』에서는 실리지 않았던 바로 그 '젊은 시인'인 카푸스가 릴케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싣고 있다. 을유문화사의 책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위대한 시인 릴케와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그 젊은 시인이 주고받은 서신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편지』의 내용을 더욱 온전히 흡수한다.



『편지』는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을까

예술을 소명으로 하지 않는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에게도 이 책은 왜 이토록 영속되는 영향을 주는 것일까. 나는 문학 전공자가 아니고 아직은 문학 애호가라고도 말할 수 없다.(나는 그러나 문학을 동경하고 흠모한다) 또한 예술이나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 나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읽기 위해 산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나는 『편지』에 실린 예술과 창작에 대한 릴케의 조언은 삶과 읽기에 대한 조언으로 종종 바꾸어 읽기도 한다. 내게는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 가능한 비평-미학 나부랭이는 읽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생명력 없이 돌처럼 굳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편파적인 것들 혹은 교묘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오늘날 그중 한쪽의 견해가 옳다 한들 내일이면 뒤집히기 일쑤입니다.”
_릴케, 1903년 4월 23일



나는 위 문장을 온갖 버전으로 변용하여 읽는다. 나는 문학작품에 실린 해설이나 해제는 꼭 읽고 이름난 작가나 사상가 들이 쓴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도 종종 찾아 읽는다. 그러나 나는 수전 손택이나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을 명심한다. 문학작품을 내 맘대로 해석한다. 무지와 편견에 가득 찼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식으로 해석한다. 거기에 릴케의 조언을 함께 명심한다. 나는 소위 '지식인' 내지는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언어놀이에 너무 빠지지 말아야지...

“슬플 때면 스스로 고독한 채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왜냐하면 미래는 언뜻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는 '마비된' 순간에 바깥에서 일어나는 시끄럽고 우발적인 사건들보다 훨씬 더 삶에 다가가 있습니다.”
_릴케, 1904년 8월 12일


나는 신자유주의에 염증을 느낀지 오래고 소비와 물질의 신은 내게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나는 관계에 미숙하고 비대한 자아를 가진 한없이 천박한 영혼을 가진 현대인이다. 나는 권태에 빠진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현대인이지만 자본주의식 삶이 별로 살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한지 오래다. 그래서 무가치한 내 삶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종결하는 방법으로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런 내게 릴케의 서한들은 이 세상에 좀 더 존재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조언이 내게도 한밤의 등대가 되어준다. 이 감동과 뭉클함, 그리고 먹먹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릴케의 서한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은 그가 읽는 이의 마음을 두드리고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을 걸어 오기 때문이다. 릴케의 조언은 보잘것없는 내 삶이라는 것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창조적 생산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알려준다. 허무와 회의에 빠진 수십억 인간동물 중 한 개체인 나는 릴케의 『편지』를 읽다가 가슴에 꼬옥 안았다. 아.. 이것이 바로 『편지』의 전설과도 같은 감동이구나.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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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 인류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600가지 지도로 살아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지음, 정미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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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역사지리학자 크리스티앙 그라탈루의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는 세계사의 흐름을 무려 600여 개에 이르는 지도와 인포그래픽을 통해 공간에서 펼쳐 보이는 역사지리학 책이다. 프랑스의 유명 역사학자인 파트리크 부셰롱은 이 책의 추천사 성격의 글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에서 역사를 쓴다는 건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물과 시대 상황, 사건들의 인과 관계는 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지만 시간이 공간에 남긴 흔적을 풀어내는 것은 훨씬 어려우며, 역사학자는 시간과 공간이 충돌하고 얽히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역사 지도'라 불리는 것으로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이 지도책은 기원전 3000년에서부터 2023년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다룬다. 이 책의 초판본은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이 기획은 프랑스에서는 거의 40년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지도책이었다고 한다. 이 지도책은 책의 공동 출판사이자 역사 전문 월간지인 <역사 L'Histoire >에서 수십 년간 축적해온 정밀한 역사 지도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책은 출간과 동시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13개 언어 40개국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한국에서도 출간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역사 지도책이라는 명성에 맞게 나와 같은 독학자를 비롯하여 학생, 선생님 모두가 평생 곁에 두고 활용할 책이다. 나는 이 '지도책'을 텍스트 중심의 다른 세계사 책들과 함께 활용한다. 각각의 책들은 서로를 보완해 주며 나만의 세계사 선생님이 되어준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이 잡지의 더욱 향상된 지도 제작 역량 덕분에 개정판에는 더 풍부하고 정밀한 인포그래픽을 담은 100장이 넘는 새로운 지도가 추가되었다. 그라탈루는 제2판 서문에서 이 책은 서구 중심의 관점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누이트의 이주 경로나 폴리네시아 문화의 확산과 같이 서구 중심의 역사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주제들을 담았다. 한편 저자는 이 책이 유럽 중심의 서사를 벗어난다고 해서 '역사를 지도 위에 담는 작업 자체를 멈출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책은 21세기의 관점으로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려 하지만 책의 구성에서 몇 장은 유럽에 할애되어 있다.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었다. 책은 전 지구적 관점에서의 역사 서술, 각 지역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 전체 구성에 대한 기초 틀 제시, 16세기 이후까지 존속했던 고립 사회에 대한 조명, 15세기를 기점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가는 세계를 중심 축으로 구성되었다.


전 지구적 관점의 역사 서술에 해당하는 장은 1장(단 하나의 인류/기원전 3000년), 3장(구대륙의 네트워크/신석기 시대~15세기), 7장(유럽의 세계 정복/16~18세기), 9장(유럽의 세계 식민지화), 12장(서구가 지배한 세계/1914~1989년), 13장(1989년 이후의 세계/1989~2023년)이다. 각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에 대한 장은 4장(구대륙의 네트워크/신석기 시대~15세기), 5장(구대륙의 사회들/7~15세기), 8장(유럽/16~18세기), 10장(유럽 이외의 강대국들/18세기 후반~19세기), 11장(유럽의 역사/1789~1914년)이다.
전체 구성을 아우르는 기초 들은 2장(독립적으로 발전하는 세계들)이고, 이 책의 구조적 중심축에 해당하는 장은 6장(15세기의 세계)이다.

이 방대한 역사지도책의 내용을 요약한다는 것은 시도조차 할 수 없으니 이 책의 구조적 중심이라는 6장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6장<15세기의 세계>가 왜 이 책의 구조적 중심축이 되었을까? 15세기는 흔히들 말하는 '대항해 시대'였다. 15세기는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다. 이 시기에 국제 정서는 매우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했으며,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교역망이 다양해졌다. 특히 포르투갈이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항로를 개척하면서 교육의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대서양의 여러 섬으로 진출도 활발해졌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건설은 이러한 교역 확장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세계사 책에서는 종종 이런 가정을 한다. 만약 15세기 초 중국의 정화의 대함대가 원정(정화의 항해는 1405에 시작되어 1433년에 끝났다)을 계속했다면 역사의 흐름은 바뀌었을까? 중국은 해양 진출 정책을 중단했고 신항로 개척의 주도권은 유럽 국가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역사책에서 마르고 닳도록 들은 이탈리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진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 지도책은 르네상스를 지도로 보여준다. 나는 그간 수없이 많은 책에서 르네상스를 오로지 텍스트로 읽었다. 물론 문자들 사이에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그림과 건축물에 대한 이미지도 보긴 했다. 이 책에서는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두 지도를 보았다. 여행하는 인문주의자였던 '에라스뮈스의 주요 여행 경로'를 그린 지도에서 존 콜렛, 토머스 모어, 자크 르페브르 데타플과 같은 인문주의자들의 이름을 함께 발견한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의 문화에 대한 지도'를 통해 프랑스, 독일, 플랑드르, 스페인 등과 유럽 각국의 르네상스 중심지가 어디였는지 어떤 나라에 영향을 미쳤는지 한눈에 확인한다.

이 책과 비슷한 인포그래픽 역사지도책으로는 2008년 구입해서 지금까지도 종종 펼쳐보는 『르몽드 세계사』가 있다. 현대 세계의 역사와 우리 시대의 지구적 이슈와 쟁점을 탁월한 역사 인포그래픽으로 펼쳐 보이는 이 책을 정말로 아꼈다. 현대사 중심이었던 『르몽드 세계사』와 달리 크리스티앙 그라탈루의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는 호모사피엔스 시대부터 2023년까지를 다룬다. 알제리 내전(1990년대), 르완다와 부룬디(1959~1994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2022년) 등 인문교양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무수히 많은 글에서 만나게될 이 아픈 역사, 지금도 진행중인 이 아픈 역사를 지도로 만날 수 있다.

또한 한국 사람으로서 12장에 포함되어 있는 '일본의 만행(1931~1945년)' 지도, '한국 전쟁(1950~1953년)' 지도에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이 압도적인 역사지도책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는 한 마디로 열공 욕구를 불태우는 책이다. 평생 저와 함께 해요!


📚출판사 이벤트에 응모하여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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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나고 찢긴, - 여성 바디호러 앤솔러지
조이스 캐롤 오츠 외 지음, 신윤경 엮음 / 문학수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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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나고 찢긴,』 은 조이스 캐럴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쓴 바디호러 작품들을 엮은 앤솔로지이다. 강렬한 표지에서 알 수 있듯 조각나고 찢기는 대상은 여성의 신체이다. 여성이 신체를 찢어발기는 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순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수단들을 발명해왔는데, 대체로 폭력적인 방식이 그 효과성을 인정받았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책의 〈서문〉에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기 들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맥박 같은 것이 고동치는데, 그것은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한 속박에 반항하며 맞서는 맥박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나 좀 고민했다.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훨씬 더 많이 읽은 나는 언제나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쓰는 독후감이 훨씬 어렵다. 고민을 하다가 내 서가에 있는 페미니즘/여성주의/가부장 코너 및 문학비평 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로이스 타이슨의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을 꺼냈다. 이 책의 4장 <여성주의 비평>에서 가부장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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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는 여성의 자신감과 적극성을 훼손시키는 폭력을 끊임없이 자행하며, 자신감과 적극성을 부재야말로 여성이 선천적으로(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순종적인 존재임을 증명한다고 강조한다.”
_200쪽 4장(여성주의 비평), 로이스 타이슨 『비평 이론의 모든 것』 중

『조각나고 찢긴, 』에 실린 작품 중 타이슨의 가부장제에 대한 설명을 길게 풀어쓴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조이스 캐럴 오츠의 《평온의 의자(1853년, 뉴저지 트렌턴, 토마스 필 부인의 일기 중에서)》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 ‘히스테리’라는 진단으로 정신병원에 갇혔던 어느 유한계급의 기혼 여성이 쓴 일기를 바탕으로 썼다. 이 여성은 실존 인물인데 남편과의 잠자리를 거부했고, 남편의 소유인 육체적 아름다움을 훼손했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혔다. 이 작품의 모든 문장은 로이스 타이슨이 말한 ‘가부장제’에 대한 설명을 보충한다.

이 작품은 아마도 이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읽기 쉬운 글이 아닐까 한다.
​1부 <넌 괴물을 만들었어>에서는 리사 림의 《거울과 춤을》(신체 변형 및 훼손 등), 2부 <병리해부학> 중 에이미 라브리의 《육안 해부학》(강간 및 시간, 남근 훼손 및 절단에 대한 암시 등), 3부 <몸에서 벗어나 영원으로> 증 《일곱 번째 신부 또는 여자의 호기심》(강간, 우발적 살인, 시체 수습 등) 등의 많은 작품에서 바디호러 장르가 선사하는 그 강렬함을 체험할 수 있다.

‘강렬함’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야겠다.
『조각나고 찢긴, 』에 실린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강렬하다. 이 강렬함은 잔혹하고 역겹고 혐오스럽고 괴이스러우며 공포스럽다. 이 강렬함은 언제든 침범/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약함, 신체 훼손과 변형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 등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견디기 쉽지 않은 강렬함이다.

한편 내가 픽션보다 훨씬 많이 접해온 논픽션에는 인간동물의 수천 년에 걸친 엽기적이고 잔혹한 일들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한 것들이 많다. 현실은 더 픽션보다 더 끔찍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마녀로 몰려 재산몰수/고문/화형으로 삶을 마감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사례, 난징대학살 때 자행되었던 집단강간/살해(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온갖 전쟁성범죄/강간을 기술하고 있는 이브 엔슬러의 『그들의 슬픔을 껴안을 수밖에』 등을 떠올리자 『조각나고 찢긴,』에서 받은 이 강렬함은 조금씩 순화되었다.

만약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혐오스럽고 공포스럽게만 느껴진다면, 이 모든 강렬함에 깔려 있는 깊디깊은 슬픔과 억압과 분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이 현실이 더 잔혹하다는 것을 아직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인해 여성을 비롯하여 어느 하나의 젠더 정체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 충분히 가부장적이지 못한 일부 남성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대한 시간과 분량의 고통의 역사를 써왔는지 몰라서 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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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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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 - 희생된 진보의 새들은 연합할 수 있고, 우리는 소외를 거부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우중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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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반대한다』는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지식계의 슈퍼스타 슬라보예 지젝이 쓴 철학 에세이다. 이 책은 제목에 명시된 것처럼 진보 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지젝은 지식계에 등장함과 동시에 세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철학적/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했다. 헤겔과 라캉을 토대로 마르크스의 이론과 대중문화를 함께 가져와 사유를 펼친다.

이번 책에도 대중문화를 활용해 쓴 글들이 여러 편 있다. 「진보와 그 변이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프레스티지〉, 「내전」에서 알렉스 갈렌드 감독의 영화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권위」에서는 미드 〈더 와이어〉, 「세계의 종말」에서는 한국의 웹소설을 다룬다. 그가 분석한 한국 웹소설의 탈정치화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나는 그의 분석에 동의한다.

❝ 남한의 ‘웹소설’에서 목격하는 것은 탈정치화된 커뮤니티다. 겉보기에 더 ‘개방적’이고 민첩하지만, 모종의 아주 근본적인 정ㅇ치적 측면이 형식에서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그 형식, 그 형식의 분명 한국적 구현물은 남한 젊은이들의 삶을 특정 짓는 선택지의 안정성 및 의미 없는 다양성과 동종의 부류로 보인다. ❞


순수지식인인 그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순수지식인들의 난해한 사유의 핵심을 나와 같은 생계형 대중들이 알아듣도록 아주 열정적으로 설명해왔다. 그가 분석한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들으며 나는 우리 시대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또 그런 시대에 적당히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문제와 위선을 살펴본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사이토 고헤이 등을 시작으로 20세기 주요한 철학자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의 저서 『옥중수고』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위기는 낡은 것이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 이 간격에서 아주 다양한 병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포퓰리스트 우파부터 철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싸우고 있는 싸움터는 대부분 자유주의적 중도 진영이 겪는 그러한 병적인 증상이다. ❞


내게 “다 잘 될 거야.” “너는 소중해.” “오늘도 힘들었지. 수고했어” 따위의 자기위로서적을 아무리 읽어도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깊이 깨닫고 이런 책들에 환멸을 느끼던 20대 중반 무렵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읽기의 방향을 정비했다. 그때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서재에서 그가 너무나 좋아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나는 평소 내 계급과 지위를 의식하며 대체로 주제와 분수에 맞게 행동하지만, 책읽기에 있어서는 다르다. 내 지적인 수준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독서를 해왔고 로쟈 선생님이 읽는 책들을 따라 읽으려 노력해왰다. 그의 서재에 등장하는 동서고금 온갖 지식인/사상가/철학자 중 왜 지젝에게 그토록 애정을 표할까.

『진보에 반대한다』를 읽고 나서 이 독후감을 쓰기 위해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두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와 『책을 읽을 자유』에서 지젝에 대해 쓴 부분을 다시 읽었다.

우리는 왜 지젝을 읽어야 할까.

❝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을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념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
___ 『로쟈의 인문학 서재』 284쪽, <내가 지젝을 읽는 이유> 중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 슬라보예 지젝과 같은 순수지식인의 이야기에 나와 같은 생계형 대중이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우리 시대 문제를 예리하게 해부해서 적당한 해결을 원하는 대중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고 환상을 깨어주기 때문이다.

지젝이 비판하는 진보는 자유주의적 진보를 말한다. 우리의 진짜 먹고사니즘 문제가 왜 이렇게 고달픈지 교묘히 피해 가는 그 자유주의적 진보말이다. 우리 시대에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쉽게 비관하지만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포로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 비관을 사회 구조적 비판 담론으로 확장시키지 못한다.

❝ 단순하게 말하자면, 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두 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나뉘는 반면, 상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분열되었다기보다 양쪽의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교란된 하나의 잘 조직된 전체이다. 우익은 자동적으로 자신이 온건 중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
❝ 계급 권력은 우주공간처럼 빈틈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결함과 균열로 가득하다. ❞ __ 〈절대적 불변자〉 중


우리는 최저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외국인 노동자의 착취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내 아파트 매매가가 왜 오르지 않는가에만 관심 있다. 왜 우리 아파트 앞에는 지하철이 지나가지 않는가에 관심을 가진다.

❝ 대다수의 사람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경 쓰지 않는 쪽이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삶이 방해받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결정해야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

지젝은 현대 진보, 자본주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그는 우리의 현실을 냉철히 분석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만적인 의식도 함께 해부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왜 절망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공감한다.

자연과 남반구 사람들의 착취하여 짜낸 온갖 물질적 편의를 누리고 있기에 지금의 물질적 삶에 딱히 불만은 없다. 그러나 신형 아이폰으로 바꾸어도 그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이미 자본주의에 신물이 났다. 건강 이야기, 경제적 자유 이야기, 행복 담론만 가득한 이 시대 사람들의 대화가 피곤스럽다.

대안을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임금의 노예로 오늘 하루 더 사는 것이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그냥 그만 살아도 되겠다.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라는 급진적이고 생태적인 생각에 이르게 된 나는 앞으로도 지젝을 계속 읽을 것이다.

#우주서평단 #우중몽 #슬라보예지젝 #진보에반대한다

@woojoos_story 진행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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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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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는 버지니아 울프가 쓴 에세이 여덟 편과 2025년에 최초로 공개된 두 편의 시를 묶은 책이다. 책에 실린 미술 에세이 두 편은 국내 독자에게 처음 소개되는 글이라 한다. 이 책은 독자에게 울프의 '비평적 목소리'를 들려주는 귀한 선물이다.

울프의 명성은 여전히 드높고, 그녀의 글은 지금도 널리 읽힌다. 울프는 모더니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울프는 평론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울프는 1904년부터 <가디언>에 무기명 서평과 에세이를 기고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 책의 옮긴이 이루카는 비평가로서 울프가 쓴 글들은 '단순한 논평이나 해설이 아니라 언어의 실험이자 사유의 공연이고 저항의 행위'였다고 말한다.

울프의 비평은 영문학의 정전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탐구하여 글을 썼고, 울프의 에세이는 이 장르의 모범으로 평가되며 소설과 맞먹는 명성을 얻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대목에서 '윌리엄 해즐릿'이 떠올랐다. 지금 이 책을 펴낸 아티초크 출판사는 영어권 최고의 에세이스트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집 세 권을 출간했는데, 바로 그중 첫 번째 책 『혐오의 즐거움』의 서문을 울프가 썼다. 이 탁월한 서문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 실린 여덟 번째 글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에 최고의 비평가로 해즐릿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_+

나와 같은 평범한 독자들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 역시 울프의 글을 사랑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가 토니 모리슨은 울프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고, 수전 손택은 울프를 글쓰기의 모델로 삼았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어슐라 르 귄, 리베카 솔닛 등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이 울프에게 바치는 글이 적혀 있다. 이 리뷰에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작가 리베카 솔닛이 울프에게 바치는 헌사를 가져왔다.

“ 울프는 혁명가였다.
하지만 그녀가 바꾼 것은 세상보다 우리 내면의 풍경이었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면서도 시대 넘어를 꿈꾼 작가.
박제된 예술을 거부하라.
당신을 다시 모험하게 할 울프의 역비평. ”
__리베카 솔닛

책에는 앞서 말했듯 총 여섯 편의 에세이와 두 편의 시가 담겼다. 이 책에 실린 제일 첫 번째 에세이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 세계를 비평적으로 탐구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 같은 존재"라는 표현은 꼿꼿하고 엄격하며 말수가 적은 제인 오스틴의 면모를 놓고 붙인 표현이었다. 울프는 오스틴에 무자비할 정도로 날카로웠고,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풍자의 시선을 가장 꾸준히 유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천재는 울프만큼이나 우리 독자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2025년은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이었는데, 국내에서도 제인 오스틴과 관련된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다. 나 또한 운 좋게 김선형 번역가님이 새로 옮기신 『이성과 감성』을 읽었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을 다시 읽으며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었다.

제인 오스틴은 문학적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오스틴은 겨우 열다섯 살의 나이에 『사랑과 우정』이라는 작품을 썼다. 울프는 이 글에서 열다섯 살의 제인 오스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제인은 그 어린 나이에도 이미 '작가'였다. 그녀의 문장에는 리듬이 있고 형태가 있으며, 절제된 힘이 있다. (...)

열다섯 살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었고 자신에 대한 환상은 더욱 없었다. (...)

그녀의 시선은 늘 본질은 향하고, 우리는 인간 본성의 지도 위에서 그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

제인 오스틴과 버지니아 울프를 모두 흠모하고 존경하는 독자인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이 고개를 끄덕였던가.

"그래 이거야. 바로 그래 그랬어."


나는 울프의 글을 통해 오스틴의 작품에 보다 깊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오스틴의 문장 속에서 머물렀던 시기 동안 나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였었던 단상들과 감상들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했다. 울프의 표현을 빌리면 '침묵의 영역'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울프의 비평적 언어 덕분에 나의 감상들은 비로소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내졌다. 문장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이러한 예술가들/작가들/비평가들은 정말이지 나에게 경이로운 존재들이다.

이번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좋았다.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이 좋았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부터 시작하여 각 글에 달린 각주, 책의 부록에 실린 울프의 연보까지 좋았다.

무척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이번 책에서 특히 좋았던 글을 꼽아보라고 하면 세 번째 글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와 네 번째 글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를 선택할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의 좁은 읽기의 세계에 추가된 주제로는 인류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한 인간사회의 불평등, 계급과 지위, 유한계급의 허영/위선과 없는 자들의 모방/따라하기, 문학의 역사, 문학의 탐구 대상의 변천(신에서 인간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등), 문학의 사회학적 기능,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예술이란 무엇인지, 감정의 상품화, 양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온갖 영역에서의 변화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모더니즘 문학에 관한 관심도 추가되었다. 두서없이 언급한 주제들이 바로 이 책의 두 번째 글과 세 번째 글에서 모조리 탐구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 반드시 옮긴이 해제/문학비평가의 해설을 읽고자 한다. 대부분의 작품에는 해제/해설이 실려있지만 없는 책들도 있다. 나는 생계형 인간이라 나의 감상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순수지식인이 풀어놓은 언어를 내 것과 상호 비교해 본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놓친 것을 비평가의 정제된 언어로 읽는 것은 큰 기쁨이다. 울프는 탁월한 지성을 이용하여 소설가가 구축한 세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본 뒤 나와 같은 생계형 인간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생계형 인간인 나는 순수지식인 버지니아 울프 덕분에 원래도 읽고 싶었던 셰익스피어를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의 모든 것이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역자가 달아놓은 모든 주석까지. 마지막에 부록으로 실린 버지니아 울프 연표는 역사 및 문화적 배경을 정리해 놓았다. 이 귀한 자료는 문장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으며 최근 테리 이글턴 덕분에 모더니즘 문학에 다시금 기웃거려 보기로 마음먹은 내게 귀중한 도움을 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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