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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미디어 생태학 - 인공지능이 재편하는 지식과 권력 ㅣ 방송문화진흥총서 252
이광석 지음 / 안그라픽스 / 2025년 9월
평점 :
『AI 미디어 생태학』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신앙이 된 실리콘밸리 산 기술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고, 인류세 위기 현실에서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색한다.
먼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핵심 신기술을 왜 근본적으로 의문시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리 사회에도 기술 숭배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 사회에 첨단 테크놀로지는 성장 중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된 듯하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시기 방역을 위해 바이러스 공포의 면역제로 각종 감시 기술을 도입했고 가상의 메타버스 일상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기술 축복이자 또 다른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미칠 사회와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나 대응책은 크게 부재하다.❞
❝성장 숭배, 기술 과진화, 지대 욕망 등에 허우적거리는 것 외에 자본주의의 바깥을 아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런 우울한 ‘리얼리즘’ 현실에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AI 테크놀로지가 사회 구원의 메신저처럼 군림하는 모양새다.❞
만성화된 경기 침체, 고용 불안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 신기술은 구세주처럼 여겨진다. 저자는 “대체로 우리 사회는 신기술 선점과 기업 경쟁력 확보를 통한 경제 발전의 낙수 효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빅테크 회사의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해왔다. 반면 시민 데이터 인권 상실, 기술 대체 효과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 기술 변화에서 배제된 사회 약자들의 소외, 플랫폼 노동 현실, 탈진실, 디지털 도파민에 사로잡힌 데이터 소비 방식 등 기술이 가져온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된 우리 사회의 미디어 기술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먼저 인공지능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짚고, 기후재난 시대에서의 인공지능 기술의 지위와 위상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그다음에는 생성형 AI 문제를 깊게 파고든다. 우리가 과연 생성형 AI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챗GPT는 나의 훌륭한 협업도구가 될 수 있을까? 저자의 분석은 ‘그렇지 않다’이다. 협업이라는 동등한 위치는커녕 기계와 인간의 지위가 역전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우리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점점 잃어갈 것이라 전망한다. 저자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권력이동 현상이 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AI 기업과 인력 브로커 업체의 하청이나 도급을 받고 ‘어시’ 일감을 수행하거나, 인력시장 플랫폼에서 단기 계약직을 수행하는 유령노동자나 미세노동자라는 불안한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애초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을 발 빠르게 도입한 은행들은 업무의 기본적인 고객 문의를 AI 챗봇이 처리하는 대신, 인간 상담사는 고객들의 복잡한 상담 서비스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런데 실제 AI 챗봇의 활용 효과는 은행이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많은 경우에 콜센터 상담원이 AI 챗봇에 지쳐 화가 잔뜩 나 있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 오히려 상담사들의 업무 난이도가 실제 높아졌다. (…) 생성형 AI 챗봇과 일하는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에게 이른바 ‘AI 뺑이’를 가속화해 노동자들을 편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의 3부부터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기술 환각에서 깨어나 다른 삶을 꿈꾸는 상상력과 대안을 논한다. 이 책은 AI 기술의 생태주의적 접근과 해법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새로운 현실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비인간 존재와 평화롭게 얽혀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보통 인간계나 자연계와 무관하며 비물질이거나 탈물질의 것으로 다뤄져 왔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청정의 거대 과학기술 발전 논리로 추앙하면서, 기실 그것이 물질적 실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물질 논리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가령 인공지능은 인간의 노동과 인간 활동 데이터 등 비물질 자원은 물론이고, 에너지, 토지 광물, 냉각수,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클라우드 등 물질 자원과 미디어 인프라의 동원 없이는 그 어떠한 연산처리도 불가능하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이론가 캐런 바라드의 ‘얽힘’ 개념, 문화 인류학자 애나 칭의 송이버섯 이야기(『세계 끝의 버섯』)를 가져와 인간/비인간 존재들의 상호의존적 관계와 얽힘, 돌봄 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을 생태주의적으로 다루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적 대상은 그 내적 논리를 지닌 독립된 인공물이나 따로 떨어진 개체적 존재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생태계, 마음계, 인간계, 자연계와 함께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는 이 얽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동시대 첨단 기술과 생태주의적 조화로운 동거를 모색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류세 파국을 막기 위해서 기술 폭주에 대한 ‘감속주의적 전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감속주의란 기술 ‘가속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기술 가속주의’는 저렴한 자연에 기대어 자본주의적 생산 기계의 산출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성찰 없는 성장과 발전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감속주의는 기술의 생태 사회적 숙의 과정을 통해 생명과의 공존을 위해 기술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성찰적 태도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도 닿아 있다.
감속주의는 단순히 기술의 포기나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감속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술 숭배 정서, 기술만능주의적 허상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기술 감속주의를 가로막는 몇 가지 장벽들을 검토한 뒤 책을 마무리한다. 인공지능은 전혀 청정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인공지능이 가진 물질적 독성을 전체 생애주기별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소제목은 <테크노 리얼리즘의 감각>이다. 이 책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용어법을 빌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휩쓸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실을 ‘테크노 리얼리즘’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를 구석구석 비판하고 성찰한 여러 사상가들을 지속적으로 호출한다. 문화인류학자, 비평가, 미디어학자, 사회학자, 신유물론자 등등.
저자는 마지막 글 <테크노 리얼리즘의 감각>에서 도나 해러웨이, 로지 브라이도티의 말을 인용한다.
해러웨이는 “기술이 버릇이 없지만 매우 영리한 자손들을 어떻게든 구하러 올”것이라 철석같이 믿는 인간의 기술 신앙과 그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은 적이 있고, 브라이도티는 우리 인간은 “기술 공포증적이어도, 순진하게 기술애호적이어도 안되며, 중간적 입장에서 오히려 우리의 역사성에 의해 야기된 복잡성을 다루기에 충분히 냉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기술 감속주의가 인류세 위기를 멈춰 세우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책을 마무리한다.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는 인공지능을 매일 꾸준히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자기 계발서적 같은 인공지능 관련 책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들의 존재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인공지능을 보다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균형감 있게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을 뿐이다. 이 책 『AI 미디어 생태학』은 그런 내 바람을 들어주고 내 독서의 빈틈을 메워준다. 인공지능이 재편하는 지식과 권력의 흐름을 잘 정리하여 알려준다.
이 책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 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이광석 교수님이 쓰신 책으로 대중적인 글쓰기와 학술적인 글쓰기 중간에 걸쳐있다. 그러나 생태주의, 신유물론 등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유익하게 읽을 수 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