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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그림을 객관적으로 감상하는 방법이 있을까? 또한 그림 감상은 배울 수 있을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그렇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려준다. 이 책이 기존의 미술 감상 안내서들과 다른 점은 그림 감상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데 있다. 기존의 그림 감상 방법, 즉 전통적인 미학은 작품이나 작가, 역사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경험미학, 실험미학이라고도 불리는 예술심리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그림 감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방법을 알려준다.
예술심리학
예술심리학은 예술 경험을 다루는 학문으로 예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 예술심리학은 실험법, 조사법, 면접법, 관찰법, 생리적 지표 측정, 뇌 활동 측정 등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인간의 예술경험을 측정하고 관찰한다. 예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시도들은 매우 주관적인 예술 경험에 대한 폭넓은 통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며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도 아니며 예술을 역사 맥락적으로 해석하는 방식과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시작은 150여 년 전 독일의 구스타프 페히너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예술을 실험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이었는데 경험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제창했다. '아래로부터의 미학'이란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예술적 반응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인데 '위로부터의 미학'과 비교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미학'은 미학에 관한 이론이나 법칙을 먼저 정하고 이를 개별 작품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페히너가 수행한 미학 실험으로는 황금 비율 선호 실험이 있다. 사람들이 정말로 황금 비율을 선호할까? 페히너는 347명의 실험 참여자에게 가장 선호하는 사각형을 고르도록 했는데, 실험 결과 35퍼센트가 황금 비율을 가진 사각형을 선택했다고 한다. 한편 페히너의 실험에 대한 반론도 있다. 페히너가 제시한 실험 방법에는 많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지만 그로 인해 예술심리학에서 감상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감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술감상 수업
미술감상 수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이 책의 1장에서는 먼저 미술의 발전 과정과 그림 감상 발달에 대하여 설명한다. 먼저 미술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표현 방식에 따라 크게 5가지로 나눈다.
★ (미술 역사 구분)
재현의 시대 → 표현의 시대 → 인상의 시대 → 추상과 초현실의 시대 → 개념의 시대
여기서 인상의 시대(인상주의의 출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인상주의 출현은 그림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간의 미술은 대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감정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상주의는 예술의 주인공을 그림의 대상에서 예술가의 마음으로 옮겨 놓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였다.
★ (그림 감상의 발달)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크 파슨스가 나눈 5단계
편애 → 아름다움과 사실성 → 표현력 → 스타일과 형식 → 자율적 판단
그림 감상도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달하는데, 전문가와 초심자 또는 비전문가가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고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보고되었다고 한다. 파슨스는 1~3단계 발달은 나이와 함께 병행하여 발달하며, 나머지 두 단계의 발달은 예술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5단계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반드시 더 훌륭하고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이 훌륭한 작품인지는 감상자의 몫이다. 다만 단계가 높아질수록 감상자의 더 깊은 수준의 노력과 경험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감상 단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맥락적 방식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 작품에 대한 특별한 심리 행동을 중심으로 감상 방법을 알려준다. 눈을 통해 색, 형태, 깊이, 크기, 배치 같은 객관적인 특징과 밸런스, 구성, 리듬, 역동, 감정 같은 심리적 특징을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한다.
△ 색과 형태
인간의 시각은 실세계에서 보통 형태를 늘 우선시하고 색을 보조적인 역할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의 세계에서는 색이 형태와 동등한 역할을 하거나 특정한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책에는 프란츠 마르크의 <파란 말 I>, 앙드레 드랭의 <채링크로스 다리>, 라울 뒤피의 <로열 새스콧의 끌림>을 통해 색이 형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러한 미술 작품들은 우리가 가진 시각적 편견을 내려놓도록 만든다. 이 불편함을 새로움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드디어 미술 감상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풍경화는 시대와 문화권을 초월해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그림의 장르이다. 풍경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곳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 특정 위치에 있다는 현장감 또는 몰입감(이것을 생태적 감정이라 부른다)을 느끼게 된다. 풍경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현장감이 큰데 관찰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풍부하고 우리 눈은 이 단서에 매우 친숙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은 왜 풍경화를 좋아할까?
이 책에서는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먼저 진화적 안전이라는 측면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던 안전 본능을 제안한다. 그의 전망-도피처 이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잠재적인 적이나 위협을 발견할 수 있고 먹잇감을 찾거나 동족의 안전을 살피기에 유리한 탁 트인 전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카페나 식당의 구석진 자리나 창문 옆, 배산임수도 전망-도피처 이론에 부합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시각 처리의 유창성이다. 풍경화는 추상화에 비해 이해하기에 쉽다. 풍경화는 실세계 경치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처리하는데 인지적 노력이 덜 든다.
세 번째로 수평적 안정감이다. 풍경화의 수평성은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중력의 방향에 민감한 데서 비롯한다는 흥미로운 설명이다. 심리학 연구 결과 사람들은 '분노'처럼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라고 요구받으면 종이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강렬한 선을 그렸고, '평온'을 표현하라는 요청에서는 대부분 일관되게 수평선을 그렸다고 한다.
네 번째는 생태적 활력이다. 풍경이 보이는 창문이 심리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익숙하다. 창문이 있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더 빨리 퇴원하고 진통제 사용량이 더 적다는 것은 공간이나 심리학 계통의 다른 책에서도 접했던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창문의 대안으로서의 풍경화라는 설명이다. 창문이 없는 실내에 풍경화는 창문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풍경화 감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생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 그림 속 성차별
인물화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곤 한다. 새롭지도 않다. 한편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얼굴 두드러짐'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개념은 몸에 비해 얼굴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뜻하는 것으로 얼굴의 길이를 얼굴을 포함한 전체 신체의 길이로 나누어 값을 구한다고 한다. 인물화에서 얼굴이 묘사된 영역이 클수록 상대가 더 지적이고 호소력 있으며 인격적인 존재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연구 결과 여성을 그린 그림에서는 얼굴보다 몸이 더 많이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 잡지, 정치 포스터,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예시로 들고 있다. <미인도>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 두드러짐 지수는 매우 작다. 물론 전신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저자는 여성의 가채, 얼굴의 섬세함, 신체의 가녀림 등을 묘사한 것을 보면 신윤복은 여성을 성적 매력의 대상으로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앞으로 프로필 사진에서 지적으로 보이고 싶다면 얼굴을 큼지막하게 신체는 극히 적게 노출된 사진으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문학이나 음악, 회화나 조각 등 예술이 삶을 구원하거나 적어도 지속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것은 많은 글들을 통해 접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헨드릭 빌렘 반 룬의 <예술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구입했다. 이번 책 『감상의 심리학』은 내가 역사 맥락적 방식으로 예술에 접근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감상의 심리학』은 이렇게 치우친 미술 감상 방법을 보완해 준다.
저자는 감상을 배우는 일은 정답이 없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객관적 과학적 감상 방법은 역사 맥락적 감상과 짝을 이루어 함께 갈 때 비로소 풍요로운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하고 이 책에서 전하는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한다면 앞으로의 미술 관람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