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중독 - 실패 혐오 시대의 마음
롤란드 파울센 지음, 배명자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걱정 중독』은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 롤란드 파울센은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룬드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분석한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왜 인간은 생각과 걱정에 중독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걱정이 일상인 우리는 과한 걱정을 다스리기 위해 약이나 상담이 점점 더 의존하고 있다. 걱정과 불안에 대한 흔한 설명으로는 풀숲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사자를 불안해하던 시절 우리 조상들의 생존본능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 강력한 생존본능 때문에 불안과 걱정은 어느 정도는 어쩔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사회학자인 저자는 대중 "현상"으로써 걱정과 불안을 분석한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걱정을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걱정은 기본적으로 "만약에 ... 이면, 어떡하지?를 물을 때 생기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우려로 정의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정의를 좀 더 명확히 한다. 저자에 따르면 걱정은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 학문적 의미에서 걱정은 불안에서 야기된 반사실적 사고라고 정의할 수 있다(p76). 여기서 반사실적 사고란 "만약에... 이면, 어떡하지?"식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생각이다. 반사실적 가정은 매우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에 매우 현실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정서 중 많은 부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돕기도 한다. 반사실적 사고는 인간의 근본적 능력이기도 한데 문제는 반사실적 세계에 몰두하는 강도가 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1930년대 소련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 심리학자인 알렉산더 루리야는 농경사회를 지나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우리의 걱정은 크게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산업사회는 문해력과 추상적 사고력이 점점 더 중요해졌고 감각적 경험에 의존하던 농경사회에 비해 온갖 정보원에 의존하는 산업사회에 이르러서는 반사실적 사고에 기반을 둔 논리적 추론이 중시되었다는 것이다. 루리야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일찍이 논리적 추론을 배우고, 그리고 인해 상상력이 자라고 자기 성찰 능력도 갖추게 되어, 사람들은 더 자유로와지고 주변 환경에도 덜 얽매일 것이라 봤다. 한편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옳은 생각이다.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를 많이 하긴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창의적인 반사실적 사고를 하기보단 주로 거의 대부분 내 개인에 대해 우리 가족에 대해 걱정한다. 걱정은 개인의 책임과 자기 결정과 연관된 것에 더 강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인류학 연구를 자세히 살피면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발견된다. 늘 질병을 설명할 때 그 중심에 있었다.



2부는 문화와 역사를 넘나들면서 우리가 이토록 걱정 가득한 삶에 도달하게 된 여정을 설명한다. 수렵 채집 공동체의 삶에서 농경사회를 거쳐 산업자본주의에 도달했다. 인간의 삶이 복잡해졌으니 걱정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하고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불안해진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가 중시될수록 위험관리와 실패는 개개인의 탓이 된다. 또한 우리는 신이 계획한 세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기획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영국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세속적 걱정이 종교적 걱정보다 더 빨리, 더 넓게 퍼진다고 말한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 재앙에 대한 불안으로 바뀌었고, 도덕적 양심의 가책은 위험 분석으로 대체되었다.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특히 대중매체가 보도와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의 불안과 걱정에 대한 인식을 급진적으로 바꾸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 등장하고 이에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의 혼란은 가중된다. 왜냐면 전문가들이 저마다 다른 분석을 내놓기 때문이다.




3부는 불안과 걱정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싶은 우리를 위한 대책을 내놓는다. 요즘 정신과 상담을 받기가 어렵다고 한다. 환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 치료와 상담을 위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덧 정신과 상담, 우울증 약 복용 등에 익숙해졌다. 한편 이를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삶 속에 정신 기능과 관련된 문제는 잔디에 있는 잡초와 같이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정신 건강에 있는 문제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학자들 중엔 '정신질환'이라는 개념과 작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각종 '장애', '증후군', '질병', '신경증'으로 언어적으로 명명하는 순간 그것들은 진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불안을 줄이려는 심리치료는 불안의 수용을 방해한다. '불확실성'을 긍정하고 이것을 한껏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 존재와 우주의 근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삶은 통제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 진실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 더불어 근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착취한 지구에서 더 이상 풍요의 열매만을 수확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상에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다. 끝없는 진보와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물질숭배 삶의 방식, 자연을 재료 삼아 행복을 짜내는 삶의 방식이 어마어마하게 틀렸다는 또 하나의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람들에게 미래가 항상 오늘날처럼 중요했던 건 아니다. 미래 지평선,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내다보느냐는 오로지 실용적 이유로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며칠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의 미래 지평선은 구체성을 초월해 멀리까지 확장되어 있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미래‘는,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감히 추측할 수 없었건 긴 기간을 아우른다. - P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