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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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1946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태생으로 8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생산적이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한결같이 우리 시대의 온갖 정치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수십 종의 책들, 왕성한 대중 연설들이 보여주듯 그는 '현행성의 철학자'이다.


철학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조예도 없지만 지젝의 책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는 있다. 우리 집 서재에 지젝의 책을 꽂는 방식이기도 하다.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인 학자 지젝이 쓴 이론서들과 현실 참여적 지식인 지젝이 쓴 국제정세 관련 논평/에세이들이다. 『제로 포인트』 는 후자에 속한다.

『제로 포인트』의 1부는 세계정세에 관한 철학적 개입 에세이들이고 2부는 가자 학살에 관한 에세이들이다. 2부는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전 연설 이후 벌어진 해프닝 이후 쓴 글들을 엮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중 '가자를 위한 철학'은 2부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제로 포인트』 1부에서 독자인 우리는 지젝의 해석을 거친 우리 세상의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부에서 지젝은 '우리의 사회, 경제적 제로 포인트뿐 아니라 글로벌 전쟁의 위협과 강간 문화까지, 각기 다른 영역에서 하강 나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일반적인 개요를 제공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지젝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왔다. "정치 대신 전문가들의 행정, 집단적 권리와 연대가 아닌 개인의 자유, 사회 복지보다는 민간 자선, 예술 대신 문화, 계급투쟁 대신 특정한 정체성, 사랑 대신 섹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단어 두 개를 더 추가해 보자. '우파 포퓰리스트', '글로벌 자본주의'. 그리고 더욱더 강조돼야 할 단어들도 있다. '금융의 광기', '경제 정치', '연성 파시즘 등. 국제 정서와 관련해서는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이다.

한편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모두는 우리 세계의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젝의 이야기에는 '좋은 사람은 없다. 그저 어느 정도 나쁜 사람들과 결코 쉽지 않은 선택들이 있을 뿐이다.' 한국 사회 역시 분열과 갈등이 폭발하고 있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드론 폭탄에 찢겨 죽는 수준은 아니다.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절대적 빈곤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최소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덕택에 '각자 자신 특유의 '자기 돌봄',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분산된 개인들'로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

우리 시대에 대의는 사라졌다. 지젝은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단순히 자신들의 편안한 삶을 지키고 있을 분이고 그런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우크라이나를 희생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2부는 가자 지구 참상과 관련하여 지젝이 일기처럼 써 내려간 에세이들이 엮여 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하여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헬리나 코번, 라미 G. 쿠리 지음, 동녁 출판사, 2025), 『이스라일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일란 파페 지음, 교유서가, 2025) 등을 읽었기에 지젝의 논평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평소 좋아하는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지젝을 향한 비판과 지젝의 반론,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유발 하라리, 노엄 촘스키 등이 가자 지구 참상과 국제 정세와 관련해 내놓은 논평들에 눈길이 갔다.

2부에서는 지젝이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심지어 2부 제일 마지막 글은 <다시 또 요약>이다. 지젝은 새롭고 독창적인 반전에 반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요약하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무언가'라고 한다. 먼저 가자 지구 사태와 관련해서는 둘 다 그 땅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비극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상호 인정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실행하지 않는 그것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우리 집 지붕에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그 어떤 글을 읽더라도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라는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피해자를 향한 동정심에 깃든 비밀스러운 주이상스를 끊임없이 의식하는 독자가 되었다. 나는 나의 위선적인 면을 깨달은 상태까지는 왔지만 지젝이 말하는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다'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젝이 지치지 않고 논평을 쏟아내고 글을 써내려가는 이유는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이 웬만하면 '제대로 된 말'을 하길 원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다음 해야 할 것은 사라져 버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대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여전히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기 안의 위선이라도 깨닫자. 우리는 우리의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알면서도 그것이 깨지기를 원치 않는 존재이니 말이다.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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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 - 빅뱅부터 행성 지구와 인류의 미래까지, 300가지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과학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지음, 이충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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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 는 138억 년 전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부터 포화 상태에 이른 행성 지구의 오늘까지, 이 긴 시간 동안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했었고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판사는 이 책을 '과학 지리서'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지구와 생명체들의 역사를 생물물리학 관점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동물의 역사를 자연에서 따로 떼어 구분하지 않는다.


* 생물물리학 : 물리학의 눈(법칙과 도구)으로 생명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 그동안 생물학이 "생명체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현상과 분류에 집중했다면, 생물물리학은 "생명체도 결국 우주의 물질인데, 어떤 물리적 법칙(역학, 열역학, 전자기학 등)에 지배를 받으며 움직이는가?"를 탐구한다. 


이 책에서 자연과 인간동물을 분리하여 생각해온 서구의 이분법적 자연관은 통하지 않는다. 이 자연관은 책에서 '과학의 역사'라는 일종의 과학사 특집 코너의 어느 글 딱 하나에만 나온다. 이 글마저도 이러한 서구의 이분법적 자연관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설명한다.


생물물리학 세계에는 은하 간 공간에서부터 원자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결코 '자연'이라 불리지 않고인간동물도 지구 표면에 사는 전체 생물의 일부로서 포함된다. 인간중심적 사고가 보편화된 이후 자연은 인간동물의 생존과 번영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 결과 지구 온난화와 생물종 감소, 다양한 형태의 오염이 심화되었고, 이제서야 인간동물들은 지구 생태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우려는 이 지도책을 출판하는 결정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138억 년에 이르는 억겁의 시간 속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펼쳐진 생명 현상의 동역학을 일반적이면서 열린 관점으로 다루기 위해 세계적인 지리역사학자 크리스티앙 그라 탈루뿐만 아니라 고고학, 천체물리학, 생물학, 기후학, 역사학, 행성학 등 3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에 프랑스 최고의 역사 전문지 <역사(L'Histoire)>의 방대한 아카이브가 더해져 300가지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지구 행성의 역사를 살펴본다.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 는 역사책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와 함께 지구라는 행성에서 펼쳐진 생명체들의 이야기와 그중 하나인 인간동물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보여주는 역작이다. 나는 그 어떤 글을 읽더라도 이 두 권의 책과 함께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문학을 읽을 때도, 국제 정서를 다룬 슬로베니아 출신 문제적 철학자의 글을 읽을 때도, 오늘 자 국제란 뉴스를 볼 때도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펼친다. 


" 이 책은 지구에서 살아간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리학으로, 사회들과 생물물리학 세계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복잡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도와 간단하고 명확한 모형으로 표현하려는 과학적, 교육적 필요성에 중점을 두어 기술한다."




총 9개의 역사의 층


이 책은 지구의 역사를 총 아홉 가지의 '역사의 층'으로 구분한다. 각 역사의 층이 책의 각 부에 해당한다.


 1. 빅뱅에서 행정 지구까지

 2. 핵에서 성층권까지

 3. 생명의 행성

 4. 사람 동물

 5. 순화

 6. 대농업 시대

 7. 자원의 세계화

 8. 화석 탄소 시대

 9. 포화 상태의 행성


138억 년에 이르는 우주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압축하여 각 역사의 층이 일어난 때를 보여준다. 우주의 역사를 24시간으로 축약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널리 빅뱅이 일어난 때가 0시라면 지구의 탄생은 오후 4시 11분에 일어났다. 지구에 생명현상이 일어난 것은 조금 뒤인 오후 5시 55분이다. 인간동물은 자정을 조금 앞둔 밥 11시 59분 18초에 지구 행성에 등장했다. 농업을 시작하고 온갖 사회를 만들었다가 해체하고 산업화를 시작하는 등 우리 인간동물의 성문화된 역사책을 가득 메우는 이야기들은 불과 자정 1초 전에 시작된 것들이다. 


협소한데다가 뒤틀리기까지 한 인간동물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 행성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균형 잡히고 겸손한 태도로 지구 행성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동물은 지구의 지배자도 주인도 아니다. 그저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과 비물질 존재들과 함께 더부살이하는 존재일 뿐이다.



과학사에서 일어난 역사적 순간들


책 중간중간에는 어두운색 배경의 특집 페이지가 끼여있는데, 이 특집은 과학사에서 일어난 역사적 순간들을 다룬다. '과학의 역사'라는 코너로 코페르니쿠스 혁명, 지구의 크기 측정, 평면 지도 제작, 기후 이론, 진화론, 선사학, 농업의 시작, 과거의 기후 측정, 인류세의 출발점 등을 다룬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탄생한 지구라는 행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구물리학과 생물학 지식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축적되어온 인간의 집단적 앎에 대한 지식도 필수이다. 과학사를 다룬 교양 과학책들 중에는 벽돌책 두께를 가진 것들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과학사의 영역 중 소수의 주제들만 선택했다. 이 주제들은 현대 사회의 주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과학의 역사' 코너에서도 서구 중심적 역사관과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난 설명이 돋보인다.


"자연의 지배자이자 주인"이라는 제목의 글(p220~221)은 인간 동물이 자연의 지배자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데카르트는 그 유명한 책 《방법 서설》 제6부에서 "우리는 불, 물, 공기, 별들, 하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물체의 힘과 작용을 알고...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가 될 수 있다."라고 썼다. 이 유명한 문장은 지난 3세기 동안 널리 받아들여졌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자연을 인간동물과 분리한 뒤, 이 자연을 도구처럼 마음껏 휘둘러왔다.


한편 이 글에서는 이러한 자연/문화 이원론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서구 사상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많은 사회에서 인간과 나머지 세계 사이에 서구의 것만큼 극단적인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학자 필리프 데스콜라가 체계화한 세계와의 관계 형태 분류는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 구성이라는 견해를 보여준다. 데스콜라는 육체성과 내면성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애니미즘 토테미즘, 자연주의, 유추주의 총 네 개로 분류한다. 여기서 자연주의 사회(서구 사회)만 인간과 비인간(자연)을 구분하고 자연을 대상화한다. 그리고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러한 자연주의에 해당하는 곳은 서유럽과 한반도+일본 두 곳 밖에 없다. (한국이 포함되어서 인상 깊었다)




인간동물에 대한 이야기


나는 우주적 관점에서 책을 읽기 위해 늘 노력을 하는 독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은데 역시나 인간동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이 책에 실린 방대한 지구 역사의 이야기 중 나의 독후감에 골라온 것이 결국 인간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골라온 의도는 분명 더 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빅히스토리 전문 이야기꾼 유발 하라리 덕분에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용어에 무척 익숙하다.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의 역사를 다룬 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꽤 많다. 성실하고 친절한 역사와 과학 분야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인간과 지구의 역사를 다룬 책들을 꾸준히 접해온 덕분에 이 책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에 등장한 인류의 대장정에 관한 지도와 호모 사피엔스의 이종 교배에 관한 인포그래픽을 보다 감동적으로 대할 수 있는 독자가 되었다. 우리 독자들은 그간 읽어온 것들이 서로 만나 섞일 때 크나큰 행복을 느낀다.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내게 행복감을 안겨 준다. 



 이 책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는 탁월한 지은이들이 모여 우수한 아카이브 중에서 지도와 인포그래픽으로 변환될만한 앎을 선택한 결과물이다. 생성형 AI에서 결코 받을 수 없는 신뢰감을 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나는 요즘 학습자들은 선택에 더욱 신중해져야 한다. 나는 평생토록 역사를 공부할 학습자이자 독학자이다. 내겐 너무나 든든한 두 선생님이 존재한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와 『지도로 보는 지구의 역사』라는 선생님들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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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 그곳에 살아 있는 감각과 기억에 대하여
아키코 부시 지음, 박지영 옮김 / 멜라이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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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키코 부시'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작년 가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온라인 서재 계정의 주인이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이라는 책을 호평했기 때문이다.


나는 '침묵', '드러내지 않기', '도피', '숨기', '침묵', '듣기' 등을 주제로 한 책을 좋아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있어 보이게 연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매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지치고 소모적이고 파괴적인지 깨닫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기 증명과 매끄러운 자아 연출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예전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그런 내가 아키코 부시의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을 사서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번 책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집'이라는 공간의 모호한 이면에 주목한다. 지은이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안정에 관한 이야기며 동시에 불안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집은 우리의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한다. 언어화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있다. 집은 종종 후자에 속한다.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과 늘 상호작용했지만 언어에 탁월하게 민감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사춘기 무렵부터 독립할 때까지 살았던 나의 어둡고 좁았던 방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 우리는 집에서 때때로 혼동, 실수, 착오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마음속 불편함의 정체를 파악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엇인가 어긋나 있는 듯한 느낌이 때로는 어떤 진실을 드러내기도 하니까. "


독자인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배경에 얽힌 지은이의 기억을 하나하나 경청했다. 지은이는 동남아시아에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전형적인 농가의 형태였던 단층 목조주택에서 살았다. 지은이가 유년 시절 사랑했던 공간인 거실과 거기 있었던 회전의자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것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길어올린 '모호한 진실'을 이야기하는데 동원된다.


지은이가 현재도 거주하고 있는 허드슨 밸리의 집 이야기를 듣는 것은 특히 좋았다. 이 집은 18세기 초에 지어졌고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길렀던 공간이다. 오래된 집은 끊임없는 보수가 필요하다. 소비주의 시대는 '새것'과 '신상'을 찬양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입지 좋은 곳의 '새집'이 가진 경제적 가치는 어지러울 만큼 찬양되니 말이다.

집이라는 공간 안을 메운 물건들 중 오래된 것이 찬양받는 것은 그것의 경제적 가치가 있을 때에 한한다. 낡고 오래되었으며 당근 거래에 무료로 내놓아도 아무도 관심 주지 않을법한 헌 물건은 반(反) 자본주의적 존재이다. 그러나 지금은 잊었지만(어쩌면 잊음을 강요당했지만) 한때 우리 모두가 알았다. 나의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의 가치와 그 애틋함을. 비인간 존재인 물건은 인간동물인 우리와 상호작용한다. 사물들은 그 목적을 다하면 사라지지만 그것은 결핍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생명력을 다하고 그것이 가진 기능이 존재했던 자취를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책의 1부 <INSIDE> 집안에 대한 이야기 중 '바람'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한국의 선풍기가 등장한다. 이 글에서 밑줄을 그었던 부분은 다음이다.

"주거 공간은 안전하고 편안해야 한다는 믿음, 소비재에 대한 집착, 불가사의한 문화적 신념 등이 뒤엉킨 요인들로 인해 특히 집에 대한 유난하고도 기이한 불안이 탄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p74)

책의 2부 <OUTSIDE> 는 집이라는 공간 밖을 배경으로 한 저자의 기억과 사유에 대한 글을 모았다. 아파트 공화국에 살고 있는 나는 자연이 펼쳐진 공간이 무엇인지 글로만 읽었다. '편애의 기술'이라는 글에는 자연을 주제로 쓴 글을 질색하고 안 읽는 지은이의 친구 브룩 이야기가 잠시 나온다. 나는 질색까지는 아니지만 경험이 없어서 자연을 묘사하는 글이 몇 페이지 이상 길어질 때는 종종 집중력을 잃는 편이다.

"장소나 공간은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타인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p181)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지. 우리는 스스로를 과하게 노출하는 집에 타인을 초대하기 꺼리기도 한다.


나는 아키코 부시의 『낡고 사소한 것들의 자리』 를 읽으며 저자가 살고 있는 허드슨 밸리의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 집은 오래되었지만 우아하다. 두 세기가 넘은 오래된 집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유지하기 위해 집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바닥을 쓸고 구석구석 닦았던 집주인의 부지런함이 시선이 던지는 곳마다 느껴진다.

지은이의 집에 초대받았으니 구석구석을 눈에 담고 갈 것이다. 1826년산 코로넷 리버티 동전이 있을 지은이 책상 위 창턱도 꼭 보아야지. 문간에 걸려 있는 그 액자 - 이웃 사람이 어린 곰을 조심하라고 써준 쪽지를 액자로 만든 것 -도 꼭 보고 싶다. 지은이의 집에서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전력회사에서 띄우고 갔다는 그 주황색 풍선도 구경하고 싶다.

나는 언제부턴가 새로운 물건을 사도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불경한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다. 끊임없이 소비를 해야 자본주의가 굴러갈 텐데. 입지가 좋은 동네의 새 아파트에 입주해야 노후가 보장될 텐데 나는 수십 년째 땅값이 오르지 않는 동네에 살고 있어도 별다른 불만도 불안도 없다. 더 많은 대출을 해서 끊임없이 아파트를 '갈아타야' 은행도 시장도 기뻐할 텐데.

나는 낡고 사소한 것들이 속삭이는 말들이 조금씩 들리려고 한다. 내가 좀처럼 타인과 나누지 않는 경험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아키코부시

#낡고사소한것들의자리

#멜라이트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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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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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생각하는 ‘올바른 말’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서는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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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 -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 심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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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고로 뇌 손상을 입고 신체 안에 갇힌 사람들,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불운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었고, 반대로 우리의 우연적인 행운이 그들의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나의 이러한 반응은 적절한 것일까. 나의 반응은 특정한 지식 주장에 근거한 편견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 우리는 정신지체인이 그 지체 상태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이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들과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감의 원천이 되는 바로 그 상상력이 (...) 그들에게 부재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한다. 우리는 정신지체인이 그처럼 중요한 자원을 결여함으로써 치명적 결함을 지니게 된다고 여긴다. 상상력이 결여되면 그들은 공감의 주체가 될 능력 자체를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을 자연종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생각해왔다. 나의 모든 가시적 반응 아래 은폐된 것을 파헤치고 싶다. 그래서 내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상징적 언어나 구조적 기저를 드러내는 『지적장애의 얼굴들』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향한 그간의 내 반응들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얻었다. 나도 어쩌면 지적장애가 있는 개인을 보면서 왜곡된 형태로서의 나 자신을 보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누가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을 취약하고 고통만 가득하다고 분류하는 것일까. ‘지적장애’라는 언어에 내재한 상징적 폭력은 무엇일까. 누가 개념과 언어를 생산하는 것일까.


미국 프로비던스 철학과 교수 리시아 칼슨은 지적장애에 대한 철학적 연구를 확장한 선구적인 학자라 평가받는다. 칼슨 교수는 이 책 『지적장애의 얼굴들』 에서 지적장애인을 '결여된 존재', '비시민적 존재' 또는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온 시선들을 철학적으로 고찰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검토할 것처럼 보이는 철학자들에게도 지적장애는 생소한 주제였다고 한다.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 안에는 지적장애가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철학 담론에서 지적장애가 등장했다. 그 논의는 일반적으로 전통적 접근과 비판적 장애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판적 장애 접근은 전통적 접근 방식에 대한 수정으로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지적장애는 신체장애와 일반적인 장애 논의에 가려져 있었다.

이 책의 목적은 지적장애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때 따라야 할 이론이나 교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칼슨 교수는 푸코적 시각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지적장애 역사를 탐구하여 지금까지 논의된 적이 없었던 부분을 조명하고 논의에 기여하고자 한다. 칼슨 교수는 이 책에서 비판적 장애 접근의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지적장애를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지적장애의 역사


저자는 1부 <지적장애의 역사적 세계>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지적장애에서 다양한 얼굴로 지식의 객체로서 형성된 방식을 살펴본다. '백치'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결핍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다가 19세기 전반 백치는 별도의 고려가 필요한 존재로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1848년 미국의 사우스 보스턴에 백치를 위한 실험적 학교가 문을 열었고, 이 학교의 관리자들은 백치 유형학을 만들어 내게 된다. 정신박약자를 수용하는 시설이 만들어지자 새로운 전문가가 탄생했고 이들은 지적장애라는 새로운 지식의 객체의 주요 생산자가 되었다.

지적장애를 설명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양적 관점과 질적 관점이다. 먼저 양적 관점은 백치가 단지 다양한 인간 자질의 '많고 적음', 즉 양적 차이의 문제라고 본다. 백치는 '정상인'과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보지 않는다. 19세기 중반부터 현대적 정의에 이르기까지 지적장애는 일관되게 양적 차이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되었다. 한편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양적 관점이 결국 정신능력검사로 구체화되어 정신박약 수준을 다양한 지능의 정도로 분류하게 된 것이다. 지능검사가 대중화되면서 백치의 정의는 지능을 나타낸다고 여겨진 수치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질적 관점은 지적장애를 본질적으로 다른 부류, 즉 인간 이하 동물과 같은 존재로 간주한다. 질적 관점에서 지적장애인들은 정상인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비인격체 인간이며, 인간보다 동물에 더 가까운 종으로 분류했다. 이 책의 2부를 읽으면 철학 담론에서 철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지적장애의 얼굴에 동물의 얼굴을 덧씌웠는지 알게 된다.

1부를 읽으며 지적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들은 언제부터 격리의 대상이 되었을까? 정신박약자 시설과 지능검사의 도입으로 지적장애에 관하여 어떤 지식이 생산되었고 어떤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을까? 이들은 치료가 가능한 존재들인가? 왜 누군가는 백치로 태어나는가? 한편 서구의 역사에서 '백치'의 역사는 왜 백인 백치들에 대한 텍스트만 등장하는가? 정신박약 어머니는 어떤 억압을 당했는가?

1부 덕분에 내 머릿속 개념 사전에 하나를 추가했다. 바로 '시설'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의 발전사를 읽으면 '병명'이 병을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설 안팎의 권력관계에 주목한 1부는 나의 빈약한 개념 사전을 약간은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1부는 어빙 고프만의 수용소 개념을 비롯하여 특히 미셸 푸코의 규율 권력,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억압 개념 등에 관한 그간의 나의 산발적 독서가 나름의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읽기의 기쁨 +_+)

“시설이 보여주듯, 어떤 유형의 개인은 지식 생산의 새로운 기술과 함께 등장한다. 이 점은 지능검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능검사는 모론이라는 정신박약의 새로운 유형과 함께 등장했다.”

✅지적장애의 철학적 세계

1부를 통해 정신박약자 시설과 지능검사가 도입되면서 의사, 심리학자, 입법자, 여성 현장 연구원, 페미니스트 운동가, 개혁주의자들이 지적장애에 관한 지식을 생산했다. 한편 철학자들은 지적장애에 관한 지식 생산과 담론 형성에 무엇을 역할을 했을까?

이것보다 더 앞서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가 지적장애를 정의해야 할 책임이 있을까? 지적장애의 모든 형태나 사례를 포함하는 하나의 용어를 철학자들이 만들 수 있을까? 혹시 철학자들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닐까?

독자인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점점 궁금해진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모든 삶을 다룬다면서 왜 지적장애에 대하여는 신중했던 것일까

책의 2부 <지적장애의 철학적 세계>에서는 철학자와 전문가가 구성한 인식의 대상, 논의에서 배제된 타자의 목소리 사이에 형성된 권력 관계를 탐구한다. 20세기 전환기의 제도적• 시설적 세계에서 현대 철학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지적장애와 관련된 철학 담론을 살펴보면 가장 선한 의도를 지닌 철학자조차도 지적장애를 다루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실질적인 해악의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철학자는 지적장애에 관한 지식과 담론 생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철학 문헌은 지적장애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낸다. 먼저 지적장애를 동물화하는 것이다. 철학자는 지적장애인의 이해관계를 이들과 유사한 비인격체, 비인간 동물에 관한 논의로 자주 격하시켰다. 지적장애인을 비인간 동물과 동일한 범주에 몰아넣고 자신들의 도덕적 정치적 이론의 가장자리 사례로 구성하기도 했다.

그다음은 지적장애인을 고통의 얼굴로 드러내는 담론이다. 철학자들은 장애와 고통을 동일시했다. 칼슨 교수는 지적장애에 관한 논의에서 고통이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특정한 사유의 경향이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살펴보고 문제와 고통을 경감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나는 인간동물을 비롯하여 비인간동물, 궁극적으로는 지구상 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의 경이로움과 고통을 읽어나가고 싶다. 기존의 앎을 지속적으로 허물고 새로운 앎을 추가하여 더 겸손하고 덜 무지한 인간동물이 되고 싶다. 성인이 되고 난 뒤 내 앎은 주로 은폐된 것들, 고통스러운 것들에 대한 글들을 통해 성장했지만 동시에 고통을 구경하는 사람이 될까 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고 내 존재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이번 책 『지적장애의 얼굴들』에 나와 같은 사람들을 정확히 분석한 대목이 있다. 취약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상상하는 것은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과 관련이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고통받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 2부에서 설명한다. 약간 덜 무지한 쪽에 속하는 사람이 지적장애인에게서 동물의 얼굴을 발견하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나 그 사람은 지적장애인의 얼굴에서 고통만을 선택적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지식 생산의 문지기들이 대체로 '정상'으로 분류하는 사람들, 지적장애가 없는 사람들조차도 능력주의 시대에 태어난 탓에 신자유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탈진과 번아웃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우리는 어느 수준에 부합되지 않을까 봐 어느 문턱을 넘지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상인'들의 탈진을 지적장애인의 얼굴에 씐 두 개의 가면 짐승의 얼굴과 고통의 얼굴과 연관하여 읽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개념화하고 언어로 구체화한다. 이들의 언어는 제도가 되고 시스템이 된다. 다수는 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삶을 살아간다. 우리 삶을 가득 메운 절망과 고통은 많은 경우에 연유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재확인했다.

이 책은 성실하게 읽고 부지런히 생각하여 기존의 인식론적 장벽을 끊임없이 깨부수는 독자가 되고 싶다는 결심에 용기를 준다. 철학 담론을 검토하는 글을 독해하는 것은 이토록 유익하다. +_+

“푸코가 "우리는 어떻게 도덕적 주제로서 자신을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그 질문은 다음과 같은 더 넓은 함의를 내포한다. 우리는 어떻게 도덕 공동체의 경계를 그으며 누가 그 안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가? (...)

도덕 담론 속에서 지적장애인이 가장 추상적이고 희미한 방식으로 그려질 때, 그런 '비인격체'의 결핍된 삶과 타인과 공동체 속에서 함께 나누는 풍부한 삶 사이에서 깊은 간극이 발생한다. “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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