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현대지성 클래식 72
투퀴디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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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로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꼽는다. 페르시스 전쟁을 다룬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신화와 전설, 여행담과 풍문까지 폭넓게 담고 있는 것과 달리, 투키디데스는 오로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역사 기술을 추구했다.

​🌿투키디데스,
역사학자이자 전쟁의 목격자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고대 아테나이 출신의 투키디데스는 추방당한 장군이었다. 즉 그는 전쟁의 참전자이자 목격자였다. 기원전 460년경, 아테나이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해안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유력 가문 출신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청년기에는 소피스트들과 교류하며 수사학, 철학, 역사를 배웠고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초기부터 이를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기원전 424년에는 트라케 해안 지역의 방어 임무를 맡아 장군으로 임명되어 타소스섬에 파견되었는데, 일련의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20년간 아테나이에서 추방당했다. 추방 기간 동안 아테나이 적국인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정보를 수집하면서, 전쟁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연구했다. 기원전 423년-403년 동안 헬라스 전역을 다니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고 추방이 해제된 뒤에도 집필을 계속 이어갔다. 기원전 400년경에 사망하여 그의 저작은 기원전 411년까지의 사건만을 다룬 채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는 역사학자이자 전쟁의 참전자로서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을 오로지 인간의 행위에서 찾으면서, 역사의 무게중심을 신의 섭리에서 인간의 선택으로 옮겨놓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20세기의 냉전사와 21세기의 패권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고대 헬라스 세계에서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이어진 전쟁으로 민주정을 대표하는 아테나이(아테네)와 과두정을 대표하는 라케다이몬(스파르테) 간의 충돌이었다. 아테나이(아테네)는 페르시스 전체에 제국주의 정책을 펼치며 동맹국과 헬라스 도시국가들을 억압하며 팽창했다. 아테나이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은 전쟁에 나섰고, 당시 헬라스 세계는 이 두 강대국을 중심으로 양분되었다. 두 국가는 자신의 정치 체제를 동맹국에게 강요했는데, 민주정을 채택하지 않으면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될 수 없었고, 과두정을 따르지 않으면 라케다이몬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21세기 패권 전쟁과 비슷한 면이 많고, 두 강대국이 자신의 정치 체제를 동맹국에게 강요했다는 점에서는 20세기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냉전사도 떠올리게 만든다. 투키디데스가 말했듯 인간의 본성상 과거에 일어난 일들이 미래에도 되풀이된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회-국가 간 갈등을 들여다보면 인간과 사회의 본성을 통찰할 수 있다.

[제3권 제국의 균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상황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사태가 펼쳐진다. 인용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구성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총 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은 전쟁의 배경과 발발 과정, 제2권은 실전 개시, 제3권은 동맹국들의 이탈과 내전, 제4권은 펠로폰네소스반도 서쪽 최남단 필로스에서 벌어진 전투, 제5권은 니키아스 평화조약과 라케다이몬의 동맹국들 간의 동맹 와해, 제6권과 제7권은 시켈리아 원정, 마지막 제8권은 시켈리아 원정 패전 이후를 다룬다. 이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끝났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 라케다이몬과 페르시스 관계가 틀어지는 장면에서 갑자기 끝난다.

🌿연설문
앞서 말했듯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달리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역사 기술을 추구했다. 투키디데스 본인이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에 근거하여 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예외적으로 포함시킨 것이 연설문이다. 그는 연설문이 단순한 상상이나 수사적 장식이 아니라, 발언 당시의 정세와 이해관계를 면밀히 조사하고 합리적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연설문들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각기 다른 상황과 입장에서 이루어진 명연설들은 고대 헬라스에서 발달한 대중연설의 정수를 보여준다. 연설문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현실 속에서 인간 사회는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했는지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고대 헬라스 세계를 쇠퇴하게 만든 27년의 전쟁사를 읽으면서 변치 않는 인간사를 엿본다. 세상이 혼란에 빠지면 가장 영악한 사람들이 득세한다. 명분 같은 것은 그때 그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혼란을 틈타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고, 떼로 뭉쳐 조직적으로 탐욕을 충족시킨다.

✅박문재 번역가의 매끄러운 번역과 657개의 주석, 해설. 지도 등은 이 책을 온전하게 읽는데 큰 도움을 준다. 당시 도시국가의 수는 학자에 따라 700개에서 2,000개 이상으로 추정되며, 상당수가 이 책에 등장한다. 생소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명이 계속하여 등장하기 때문에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이 책 뒤에 실린 지도 세 장을 복사하여 곁에 두고 본문과 함께 읽었다. 처음에는 다소 진도가 더뎠지만, 익숙해지니 페이지가 잘 넘어갔고 읽고 나서도 남는 것이 많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20세기 국제정치학과 실증주의 역사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500년 전의 역사가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빅히스토리의 관점으로 우리 인간동물의 길고 긴 역사를 고려했을 때 2,500년 전에 쓰인 책은 아주 최신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100년도 채 못 살고 죽는 인간동물은 빅히스토리 관점으로 본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를 돌이켜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지만 2,500년 전 고대 헬라스에 살았던 사람들도 호모 사피엔스 종이고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도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 인간의 본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투키디데스의 통찰은 너무나 당연히 지금도 유효하다.

​#현대지성클래식 #고전책 #펠로폰네소스전쟁사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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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지음, 강초아 옮김 / 들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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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그렇게 바뀌었다』는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 태어나고 자라 베이징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난 뒤, 미국으로 이주하여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년 넘게 변호사로 일한 류쭝쿤이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례를 통해 미국의 인권 논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150여 년에 걸친 판례에서 노예제, 인종차별, 젠더, 총기, 국가폭력 등과 관련된 미국 사회의 주요 논쟁과 그 속에서 법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법의 민낯을 보여준다. 미국 사회를 흔들어놓았던 사건들을 읽어가며 우리는 법이란 것은 결국 우리가 함께 써나가야 할 일기장임을 보여준다. 분통 터지는 사건들은 인간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 가득한지 보여준다. 동시에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도 법원의 판결이라는 상징적인 공법 행위를 통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벌인 사람들 덕에 우리는 지금처럼 예전에 비해 극적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 인간의 행위는 다양하며 명확히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실이 존재한다. 입법자 역시 모든 상황을 다 예측해 법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말해 인간 행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한 면 때문에 공정함의 원칙이 필요하다. ❞

빈약한 역사책들은 미끈한 진보의 서사로 우리 세상을 기술한다. 그러나 사려 깊은 역사책들은 인간사란 진보와 후퇴를 반복했다는 것,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것, 진보란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쓴 역사라는 걸을 알려준다.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역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흑인은 시민이 아니다"라고 여겼던 노예제 시대에서부터 낙태 금지법 위헌 판결(로 대 웨이드), 미등록 이주민 아동의 공교육 권리 인정 판결(파일러 대 도)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사의 흐름에 영향을 준 사건들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입법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살핀다.



이 책의 수많은 곳에 인덱스를 붙이고 또 붙였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다가 "보통 사람들의 말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선량한 본성이야말로 그 사회의 궁극적인 희망이다." 옆에 붙은 인덱스를 발견했다. 이 문장이 내 눈길을 오래 붙든 이유는 우리 사회에는 독한 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독하고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하는 말들/뉴스들은 대체로 돈이 된다. 그래서인지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갈수록 찾기가 어려워진다. 절망적인 이야기는 현실을 통찰하는 눈을 뜨게 해줄진 몰라도 우리의 지금이 살만한 삶이라고 느끼게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 인간 동물은 희망을 좋아하는 동물로, 고통이 가득할 때보다는 절망에 빠졌을 때 생의 의지를 놓는다. 이 책은 법과 정의, 용기를 살펴본 뒤 신중한 희망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허점이 가득한지는 우리는 삶으로 배웠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은 법이 가진 구멍으로 인해 그나마 가진 것도 잃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법의 구멍을 이용해 대체로 가진 것을 더 불렸다.

유년 시절 가족과 함께 보았던 할리우드 법정물 영화는 정의가 가득했다. 억울한 누명을 쓴 피고인 자유와 권리를 찾아주는 멋진 백인 남성 변호사들은 정말로 멋있고 똑똑했다. 대학시절에는 미드 법정물을 좋아했다. 미드 법정물은 유년 시절 좋아했던 법정물과 조금은 달랐다. 정의는 보다 복잡해졌고, 진실은 종종 값비싼 수임료를 자랑하는 변호사의 혀끝에서 만들어졌다. 법이란 대체로 많이 가진 자들이 그들보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탄생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웠다. 국가라는 사회제도 역시 그 연장이라는 것을 배웠다. 역사책에 가득한 없는 자들의 고통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현실을 배웠다. 이 책은 지금 내게 딱 필요한 정의와 희망에 대한 신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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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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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1964~)는 그간 철학적 주제를 바탕으로 여러 대중서를 출간해왔다. 철학 분야 책을 좋아하는 국내 독자들 중에는 〈철하는 철학사〉 시리즈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철학하는 철학사〉 시리즈 총 3권 모두를 차례차례 구입하여 읽었다.

이번 신간에서 그의 관심이 동물로 향했다. 책 『동물은 생각한다』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평가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매혹되어 동물원장이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동물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 속에 양심의 가책이 싹텄다. 그는 1990년대부터 동물 윤리에 관한 에세이를 쓰거나, 동물원에 대한 특별 기고문을 실었다. 철학자 프레히트에게 인간이 비인간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 우리가 다른 동물들에게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지는 그의 삶의 화두라고 한다.


약 1만여 년 전부터 인간 동물은 비인간 동물을 '가축화'했다. 즉 계획적으로 사육하여 오직 우리의 이익을 위해 살아 있는 식량 자원의 형태로 키웠다는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무자비한 착취와 사디즘뿐 아니라 왜곡된 사랑과 본성 파괴, 의도치 않은 학대'가 뒤섞여 있다. 이 책이 던지는 주요 질문은 다음과 같다.

Q. 인간과 동물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적절할까?
Q. 동물을 도덕적으로 존중하기 위한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Q. 지능이 높은 동물의 생명권이 지능이 낮은 동물의 생명권보다 더 크고 귀할까?
(이 질문에서 '지능이 높다'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편협한 사고에서 나온 성급한 판단이다. 동물의 '지능'이란 무엇인지 합의된 기준조차 없다.)

이 책은 위 질문들을 새롭게 제기하여 하나하나 고찰한다. 먼저 1부에서 인간 동물이 대체 무엇 때문에 특별한 동물인지 살펴본다. 2부에서는 인간과 동물 관계의 문화사를 살펴보고 3부에서는 저자 고유의 윤리적 입장을 개진한다. 4부에서는 동물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상의 혼돈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를 살펴본 뒤, 우리의 인식을 총결산하여 앞선 논의에서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근대 과학의 진보 이후 우리는 동물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동물의 행태에 대한 앎뿐만 아니라 신경 생물학 및 행동 생태학을 통해 동물의 정신과 의식에 대한 앎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앎을 축적했다고 해서,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까지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철학자 피어 싱어가 동물 윤리에 대한 책을 펴냈고, 전 세계 여러 젊은이들이 비건을 실천하고 동물 해방을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지만, 이것들을 인류 초창기 시설 가축 사육자들의 애니미즘과 비교하여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는 인류 역사상 동물과 가장 혼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동물을 물건처럼 생산 수단화하고, 생존 기계나 고기 공급원으로 사육한다. 그런데 국가에 따라서는 법에서 동물을 물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판다 푸바오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반려동물 전용 장례 서비스를 통해 애도의 의례 행위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중국으로 간 푸바오가 행여나 한국에서만큼 대접을 못 받을까 봐 걱정하면서 상상초월의 환경에서 사육되고 살해된 돼지의 살을 맛있게 구워 먹는다.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비둘기 무리를 극혐한다. 즉 보통 사람들의 동물 윤리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고 모순적이다. 한편 동물 윤리학자는 다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동물 윤리학자들이 이념적 기저에 깔려 있는 잘못된 도덕관을 살펴본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존에 알고 있던 대부분의 앎을 허물어야 한다. 우리는 동물이 어떤 존재인지 결코 정의 내릴 수 없으며, 인간 동물이 가진 특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 다른 동물을 착취하는 본인 존재를 견딜 수 없게 된다. 이 불편감은 새로운 앎을 실천하고 그간 누리던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우리는 영양 문제와 동물 사육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다른 생명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지만, 폭력의 규모와 구체적인 방식은 바뀔 수 있다. 인간 동물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끔찍할 수 있는지는 상상초월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 동물의 윤리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통찰한다.

“ 인류의 역사는 인간들이 공동체적 질서 체계를 처음 떠올리고 실현하고 다시 뒤집고 개혁하는 과정들을 모아 놓은 박물관이다. 우리에게 당연해 보이는 창조와 도덕의 현 질서도 우리 시대와 문화 내에서만 이해횔 수 있다. 질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문화와 영역에서 그때그때 자기만의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저자는 '오늘날 새로운 이념과 이상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과거처럼 선구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풍향계로 검증된 폭넓은 공감'(534쪽)이라고 말한다. 그가 동물 윤리에 대한 책을 펴내고 우리의 기존 앎이 죄다 틀렸음을 알려주는 것은 바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우리 인간 동물은 인류의 다른 산적한 문제들처럼 동물 문제에 있어서도 크게 들렸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알게 된 정확한 한 가지 진실은 우리가 거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지의 윤리학을 토대로 무지의 실용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진보나 성장이 아니라, 인간 동물을 비롯하여 비인간 동물에게까지 도덕적 척도를 향상해야하는 시급한 과제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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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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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는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에서 멀리 일본의 북단 홋카이도에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분들의 유골을 30여 년에 걸쳐 발굴하고 그 유골을 고국으로 송환하여 유족을 찾아주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일본,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우정을 쌓아온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도노히라 스님이 정병호 교수를 유골발굴에 이끌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류학자 故 정병호 한양대학교 교수가 서있다. 1988년 그는 박사 논문을 위해 일본 어린이집들을 비교하는 현장 연구의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운명처럼 도노히라 스님을 만나게 된다. 1945년생 도노히라 스님은 청년 시절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방문했다가 유골 문제에 대한 깊은 각성을 하게 되었다. 故 정병호 교수가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발굴 프로젝트에 깊숙이 연루되게 된 것은 바로 도노히라 스님의 영향이었다. 도노히라 스님은 교육 철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고향 홋카이도로 돌아왔다. 그는 홋카이도 아이누 선주민 문제와 조선인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를 연구하다가 홋카이도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에 수많은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됐고, 고된 노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매장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노히라 스님은 1976년에 우연히 슈마리나이 우류댐 근처에 있는 절인 광현사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위패를 발견하게 된다. 이 위패는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고 그를 강제노동 희생자 문제를 자신의 주제로 삼아 그들의 흔적을 발굴하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도노히라 스님은 한참 뒤 박사 과정에 있는 정병호를 만나게 된다. 스님은 그의 일본 체류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 여기저기 이끌고 다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뜻깊은 만남은 이어진다. 1988년 일본에서의 현장 연구가 마무리되고 1989년 크리스마스 즈음 미국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1994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됐고 1995년부터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일로도 바빠진다. 그러다가 일본 평화교육 쪽에 연락을 받는다. 슈마리나이 유골발굴 관련 건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그가 유골 발굴에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그는 아내에게 조언을 듣는다. 아내는 말한다. " 당신 같은 인류학자에게 이런 중요한 일이 찾아왔는데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 정병호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슈마리나이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도노히라 스님과 <한일 유골발굴 실행 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으로 유골발굴을 시작한다.

❝ 이 인식은 '연루' 개념과 연결된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범죄 행위의 결과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삶의 기반으로 삼아 누리고 있다. 비록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이는 '사후 종범'에 해당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에 참여하도록 언어화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유골이 출토되던 날,
가해자의 자손과 피해자의 자손들이 함께 울었다

유해발굴이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첫 번째 유골이 출토됐다. 무려 영하 42도를 기록한 적이 있는 이 혹한의 땅에 세운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까.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되어버린 현장에서 네 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관도 없이 구덩이 속에 쪼그린 자세로 꺾여 들어가 있는 참혹한 주검. 이 유골이 발굴되든 순간 함께 작업하던 젊은이들 사이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고 한다. 가해자의 자손과 피해자의 자손, 그리고 아직도 차별의 역사를 현실로 안고 사는 재일동포와 조선인 자손들은 모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울었다. 안전한 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던 내가 감히 희생자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울었고, 유골현장에서 함께 울었던 그 젊은이들의 눈물이 또 나를 울렸다.

유골발굴은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졌다. 발굴된 115구의 유골은 광복 70주년에 맞춰 고국으로 모셔하는 '70년 만의 귀향' 프로젝트를 통해 드디어 한국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강제노동 현장에 세워진 첫 번째 박물관 이야기로 이어진다. '70년 만의 귀향'이 끝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라고 발표했다. 양국 관계를 정리하려는 시도에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가 권력의 이해관계는 기억을 외면하고 서둘러 지우려고 했지만, 양국의 시민 사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결코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아픔의 역사에 휘말렸던 양국의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화해하고 손잡고 함께 우는 기록을 보여준다. 희망의 증거를 보여준다.

❝일본에는 여전히 수많은 양심적인 시민이 있다. 홋카이도의 민중사발굴운동,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사죄와 배상 요구,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 년을 묵묵히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과 일본 정부가 담합이라도 하듯 문제를 덮어버리고 일본 언론이 일제히 "모든 게 해결됐다"라는 분위기로 보도해버리면 그들 또한 얼마나 허탈할까?❞

✅인간동물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뉴스에 더 이끌린다고 한다. 우리의 주의력을 훔치는 뉴스들에는 온통 폭력과 살인과 강간과 사기와 타락과 부패가 가득하다. 그러나 각종 매체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커다란 뉴스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스크롤 하여 내리고, 다른 탭들을 눌러 연재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의외로 다양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그것도 뭉클하고 인류애가 충전되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정병호 교수와 도노히라 스님, 여러 국가에서 온 청년들, 그리고 일본 지역 주민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유골발굴에 한창일 때 당시의 한국 언론은 이것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유골발굴 작업이 여러 매체의 연재기획 뉴스가 되어 널리 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이야기는 한참 뒤에 이 책으로 엮였다. 고통의 역사 앞에 선 선한 마음들이 눈물을 흘리며 단단해지고 어우러져가는 이 여정을 담은 이 책이 최대한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SNS를 가득 메운 혐한 혐중 혐일 글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글들을 퍼나르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길러낸 부모들이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유골발굴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과거를 파내는 어둡고 무거운 행사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이 만나 교류하고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역동적인 현장입니다.❞

✍️ 인간동물은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나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국가폭력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희생자에서 국가폭력의 가담자/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 복잡한 기억들은 쉬운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잊는 쪽을 택한다. 기억하는 것은 시인과 소설가와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몫이 된다. 한편 집단적 침묵과 망각을 택한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온전한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기억할 몫이 있다. 알고 나서도 침묵하는 것은 전후 공범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아픔이 더 아프도록 만드는 가해자/공범이 되는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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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 - 불안에 맞서 피어난 인류 창조성의 역사
나탈리 로런스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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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은 우리가 과거에도 만들었고 지금도 지치지 않고 만들고 있는 괴물들이 과연 인류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왔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먼저 괴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 인류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괴물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안다. 그러나 괴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괴물은 보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도도새나 천산갑(아르마딜로)은 다른 조류들이나 포유류와 비교하여 약간 다른 것을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들을 괴물로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18세기 사람들은 이들을 괴물로 분류했다. 그 당시 근세 유럽인들의 세계에는 이들을 적절히 분류할 수 있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신학적 세계에서 괴물의 존재는 당연했다.

이 책에서는 구석기 인류가 동굴에 남겨놓은 혼종 생물부터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프레데터 등을 종합하여 괴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괴물은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괴물은 곧 우리이다.
이 책이 괴물을 탐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괴물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인간이 만들어놓은 갖가지 이야기들, 즉 신화와 민담과 동화 속에 등장하는 온갖 괴물들을 살펴보면 결국 괴물은 인간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장 위험한 괴물은 인간 동물인 우리의 동물성에서 비롯되는 공격성, 잔인함, 공포, 불안, 슬픔 등 외면하고 싶거나 멀리하고 싶은 본성과 경험의 부분들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괴물을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 우리가 만든 괴물의 역사는 우리 자신의 동물적 본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와 동물적 본성의 필요를 드러낸다. 이 까다로운 관계라는 상처 속에 박힌 파편이 바로 괴물이다. 그렇다면 치유의 열쇠를 가진 것 또한 괴물일지 모른다. ”

또한 괴물은 인간이 자연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서구 문명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위계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그 유명한 그림 ‘존재의 대사슬’에서 확인된다. 인간은 신과 천사 바로 밑에 있고, 그 아래에는 온갖 동물들이 있다. 서구 문명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을 자연과 동물과 분리하려고 노력하였다. 서구의 근대 이후 과학은 자연을 변형하고 통제하고 착취하여 인간생활을 아주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끝이 있는 법이다. 현재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벼랑 끝’(p32)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만든 우리의 분신인 괴물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에서 분리된 인간,
영적인 인도자였던 반인반수 모습의 신들을 악마로 퇴출해버리다
이 책 1부에서 선사시대의 인간의 영적인 삶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계속하여 만난다. 그간 이런저런 책들에서 선사시대 인간에 대해 설명한 것을 읽어왔는데 이번 책이 가장 인상 깊다. 그 당시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현대인들이 집단적 고양감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가고 콘서트에 가는 것은 먼 옛날 수렵채취 시절 우리 조상들이 고안했던 공동체 의식에서부터 비롯한다. 소규모 집단 시대의 주술사들이 의례와 초월적 상태의 경험을 통해 공유된 믿음을 만들었고 공동체의 협력을 이끌었다. 공동체가 좀 더 큰 농경 공동체가 되자 이들은 신이 되었다. 한편 이러한 신들은 일신론이 등장하자 그 자리를 잃는다. 초기 기독교를 비롯한 거대 조직 종교가 대두하자 이전의 신들은 저급한 동물적 본성을 가졌다며 퇴출되었다. 기독교는 인간을 동물들의 세계에서 분리시켰고, 신 바로 아래 두었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가졌던 신들은 영적 인도자에서 기이한 괴물이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사탄'이라고 불렀고, 무시무시한 악마로 취급했다.


“ 고대의 뿔 달린 신들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다. 주류 종교가 우리를 자연 세계에서 떼어 놓았지만 두려움과 상상력의 결합은 계속하여 기이한 존재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우리가 공포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영적 인도자가 아니었다. 괴물이 도사린 어둠 속으로 유혹하고 혼돈을 일으키는 악한 세력이었다.”


✅이 책은 괴물들이 가지는 의미를 하나하나 파고들면서 결국 우리의 본성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가 '문명화'라고 '진보'라고 불렀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억눌러온 동물적 본성은 '괴물'이라는 존재를 통해 점점 드러난다. 이 섬세하고 지적인 책은 우리의 본성을 우리의 괴물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우리 인간동물은 자신을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분하려 애써왔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가녀린 몸집을 지닌 인간동물은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생명체들과 함께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떨어져 나왔다. 인간동물은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이해 능력을 가졌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과 짐승에서 분리시켰다. 인간동물은 과학과 철학으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물리와 화학 법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다.'(p345)
신과 영웅, 괴물과 마법 이야기는 우리의 인간동물의 불안전한 심리적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괴물들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하며 우리가 마법에 걸린 존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괴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종, 심지어 지형까지 괴물로 만들어 말살해온 야만적인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 인류세 시대에 우리 인간동물은 스스로의 위치를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위계의 꼭대기에 있지 않다.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처럼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가 우리 안의 괴물을 받아들이고 이와 불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깨닫는다면,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에 깃든 부정적 의미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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