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는 법 - 싸게 팔지 마! 힘들어도
최병철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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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클북'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맞추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소모해 온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삶이 힘들어질수록 더 쉽게 자신을 타협하고 낮추게 되는 순간들을 짚어내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헐값에 내어주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불편하고 외로운 선택일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힘들어도 버텨야 하는 이유를 성공이나 성취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삶의 중심을 외부가 아닌 자기 안에 두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면서도 따뜻하게 전해준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하면서도 단호하고, 엄격하지만 따뜻하게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드는 문장들 앞에서 순간적으로 움찔하기도 했고, 어떤 문장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완전히 공감되지 않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 책이 가진 솔직함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책 전반에는 날카롭지만 차갑지 않은, 분명하지만 사람을 밀어내지 않는 가르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시간이 지나 미래의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문장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스쳐 지나간 문장들이 언젠가는 삶의 경험을 지나며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 한 번 읽고 덮어두기보다는, 인생의 다른 국면에서 다시 펼쳐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말 잘 듣고, 튀지 않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옳은 삶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삶이 어쩌면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던 방식은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남을 위하고, 눈치를 보며 살아온 시간들이 과연 나를 위하고 생각한 삶이었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만든 책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그때의 나를 보듬어주고, 앞으로는 조금 더 나를 잃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어졌다.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무시하지 않는 것.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태도가 결국 나를 지키는 일임을 배웠으니 말이다.

실수를 계속하면 성공, 포기하면 실패
실수는 도전과 실행이 낳은 자식이다
인생의 비밀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에 있다
중단하지 않는 한 포기는 없고,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없다 - P85

좌절은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빨리 해버려야 하는 것이다 - P138

단점은 사실 단단한 점이다
누군가의 장점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사랑의 여정을 하는 것이다 - P149

삶은 끌어당김의 연속이다
인간이 더 세게 끌어당기면 태어나고, 신이 더 세게 끌어당기면 죽는다
가깝거나 멀거나 끌어당김이 작용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탄생은 그 끌어당김의 틈새에서 이루어진다 - P410

슬픈 표정 짓지 마라
위로, 동정 구걸 마라
살아온 나의 삶도 누군가에겐 희망이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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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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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돌베개'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주위의 기대가 버겁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괜히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내가 싫어질 때면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이 책 속의 아이들 또한 비슷했다. 지금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고, 어딘가로 떠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감정을 안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나 또한 나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유자가 그대로 먹기엔 시고 쓰지만, 시간을 들여 차로 우러내면 깊은 향과 은은한 단맛으로 변하는 과정처럼, 아픔과 슬픔을 겪었기에 얻을 수 있는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흔들렸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우리 역시 힘들었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성장이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힘듦이 무엇인지 알기에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고, 슬픔을 겪어 보았기에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한 번에 깨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껍질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유자의 두꺼운 껍질에 영양분과 향이 가득하듯, 우리가 겪은 불안과 상처 또한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일부일지도 모른다.

또한, 흔들리고 고민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유자라는 이름과 겹쳐져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싫어질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껴질 때 다시 찾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보았으니 말이다. 유자처럼 오래 남는 향을 지닌 이야기였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만큼 크게 내쉬었다. 내 속에 들어온 공기가 모든 불안과 상념을 데리고 나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꾸 숨을 쉬다 보면 나쁘고 자신 없고 초라한 것들은 모두 비워 낼 수 있지 않을까? - P52

나에게서 제일 마음에 들던 부분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으니, 이제 나는 나의 어느 부분에서 위안과 긍지를 찾아야 하는 걸까. 지금 유지안을 이루고 있는 것 중에 그런 게 남아 있긴 할까? - P88

나에겐 한 적 없는 얘기를 뜬금없이 툭 꺼내 놓은 그 마음도 애써 헤아려 보았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서, 자신의 전사를 알지 못하는 적당히 낯선 누군가와 하는 대화라서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걸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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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김의경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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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현대문학'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주거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모순으로 굳어졌음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열심히 살아도 내 집 마련은 요원하고, 평생 임차인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작품 전반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때로는 체념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이라는 공간이 삶의 안정이자 동시에 가장 큰 불안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애완동물 사육 불가반려동물과 길고양이까지 돌보는 자매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찾는 이야기를 담았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된 시대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집을 구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현실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마빈 히메이어 씨의 이상한 기계루바토빌 건물에 거주하는 청년과 주민들이 전세사기를 겪으며 점점 절망에 빠져가는 과정을 그렸다. 잘못은 분명 사기범에게 있음에도, 피해자의 선택과 판단을 먼저 탓하는 모습이 씁쓸하게 남았다.

평수의 그림자 어느 날 사람들의 그림자가 그들의 주거 형태로 보이기 시작한 은행원의 이야기이다. 집의 크기와 점유 형태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보여주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밀어내기결혼을 계기로 집을 구하던 부부가 부동산 시장의 변동과 집주인의 횡포 속에서 점점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리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거 불안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왜곡하고, 관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볼 수 있었다.

베이트 볼바다에서 생활하던 주인공이 육지로 올라오며, 무리지어 사는 삶과 홀로 사는 삶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였다. 작가노트의 '사는 곳이 아니라 살 곳이, 거주지가 아니라 투자처가 되어버린 집'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은 서로 다른 상황을 다루지만, 모두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삶의 불안과 균열을 보여주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집을 그저 거주 공간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이 작품들은 추상적인 수치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절박한 삶을 마주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 깊었다. 집은 머무는 공간이자 스쳐 지나가는 공간이었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이자 사고파는 시장이었다.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불안,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을 따라가며, 집이 없다는 것, 정확히는 '내 집'이 없다는 것은 삶 전체가 임시 상태에 놓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일차원적인 사고를 확장시켰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부동산 문제와 전세사기, 주거 불안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언젠가는 당당히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희망만큼은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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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리영희
고병권 외 지음, 리영희재단 기획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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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리영희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글을 읽기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내용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여러 필자의 문장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존경과 신뢰를 통해 그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1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궁금증이 생겨 그의 이력을 찾아보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사상가로, 냉전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권력과 이념을 비판하며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이어온 인물이다. 언론·학문·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비판적 지성의 기준을 제시했으며, 억압적인 시대에도 침묵하지 않는 태도로 많은 이들에게 지적·윤리적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업적을 살펴보며 사회 전반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고, 동시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인상은, 그가 '대단한 인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생은 농담을 건네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인물이었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따뜻했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그의 삶을 스쳐 간 수많은 인연이 하나같이 '사람으로서의 리영희'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사상보다도 관계 속에서 더 오래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은 자서전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자서전이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해서 보여준다면, <나와 리영희>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 방향으로 정리된 서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리영희라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업적을 나열하기보다, 각자의 삶에 스며든 흔적을 통해 그를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나와 리영희>는 리영희를 몰랐던 독자에게도, 이미 알고 있던 독자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건네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한 지식인의 위대함이 단지 사상이나 업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때와 만났던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기억의 서랍에 남기기 마련이다. - P15

그는 아이들을 너무나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시대를 살아왔고 그 속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어린아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편지들 몇군데서 그의 어린아이가 얼굴을 내비치는 것을 보았다. - P37

류춘도 선생은 말했다.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신은 덤의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내 부모도 노상 말했다. 좋은 사람은 다 가고 자신들 같은 찌끄러기들만 남아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고.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사라진 역사를, 그 속의 위대하고 가여운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 P57

진실을 알려면 사거의 앞면만 보면 안 된다. 사건의 뒷면은 물론이고 옆도 보아야 하고 깊이까지 보아야 한다. 철저하게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앞만 보고 이를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92

선생의 감옥살이는 대부분 어떤 행위를 한 결과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한 인쇄물이 형법에 저촉되었다는 재판의 결과였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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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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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프랑스의 고성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미국인 관광객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그는 '호랑이성'이라 불리는 이 성의 오백 년 전 모습을 놀라울 만큼 상세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액자식 구성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이 인물은 누구이며, 왜 호랑이성의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히 알고 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나를 500년 전 에스콰베타 왕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책을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 장면을 읽으니, 낯섦은 사라지고 깨달음과 놀라움이 남았다.


마법과 성,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판타지이지만, 이 작품이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툴리아는 공주로 태어났지만 정략결혼이라는 정해진 길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였다. 또한 왕의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나톨의 모습은,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선택을 지켜보면서, 가족의 기대와 사회의 시선,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결국,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인 간의 사랑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아나톨이 툴리아를 딸처럼 아끼는 마음, 아나톨과 피토 사이에 싹튼 우정, 그리고 자유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세 사람의 연대는 사랑이 단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모든 형태의 사랑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자와의 결혼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의 사랑, 혈연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아끼는 마음, 신분을 뛰어넘은 진정한 우정. 이 모든 것이 진짜 사랑이며, 어떤 형태의 사랑도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모든 이야기는 마법사 아나톨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툴리아와 피토가 어떠한 생각과 마음으로 여정에 참여했는지, 그들의 결말이 어떠한지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마침표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기에 뒷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독자가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고, 질문하며, 각자의 해석을 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기에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이 작품이 더 값지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열린 결말 속에서 나는 나만의 결말로 이야기를 완성하며, 사랑스럽지만 용감하고 조심스럽지만 단단했던 그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백 년 전 호랑이성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 정해진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진정한 행복이 누군가가 대신 정해준 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불확실하고 두렵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삶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최근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실패라고 부를 만한 사건들을 잇따라 겪었다. 나는 실패보다는 일시적인 차질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랑이가 성에 왔을 당시 궁정에서의 나의 위상은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 P21

"제가 운명을 통제할 수는 없을 테지만, 제 운명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오직 저만 정할 수 있습니다." - P44

그는 우리가 나이를 먹지 않으면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우주와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죽음은 점진적인 변화의 한 단계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계속 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믿었다. - P77

생각만 해도 호랑이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다. 말하거나 떠올리지 않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이.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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