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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는 없어 ㅣ 꿈꾸는돌 45
김지현 지음 / 돌베개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 '돌베개'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주위의 기대가 버겁고,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괜히 눈치를 보며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내가 싫어질 때면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이 책 속의 아이들 또한 비슷했다. 지금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 했고, 어딘가로 떠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선택한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감정을 안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 모습을 따라가다 보니, 나 또한 나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유자가 그대로 먹기엔 시고 쓰지만, 시간을 들여 차로 우러내면 깊은 향과 은은한 단맛으로 변하는 과정처럼, 아픔과 슬픔을 겪었기에 얻을 수 있는 깊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흔들렸기에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우리 역시 힘들었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성장이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힘듦이 무엇인지 알기에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고, 슬픔을 겪어 보았기에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한 번에 깨뜨리지는 못하더라도, 그 껍질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유자의 두꺼운 껍질에 영양분과 향이 가득하듯, 우리가 겪은 불안과 상처 또한 지금의 나를 이루는 소중한 일부일지도 모른다.
또한, 흔들리고 고민하고 상처받으면서도 끝내 다시 일어서는 아이들의 모습은, 유자라는 이름과 겹쳐져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싫어질 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껴질 때 다시 찾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보았으니 말이다. 유자처럼 오래 남는 향을 지닌 이야기였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만큼 크게 내쉬었다. 내 속에 들어온 공기가 모든 불안과 상념을 데리고 나가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꾸 숨을 쉬다 보면 나쁘고 자신 없고 초라한 것들은 모두 비워 낼 수 있지 않을까? - P52
나에게서 제일 마음에 들던 부분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으니, 이제 나는 나의 어느 부분에서 위안과 긍지를 찾아야 하는 걸까. 지금 유지안을 이루고 있는 것 중에 그런 게 남아 있긴 할까? - P88
나에겐 한 적 없는 얘기를 뜬금없이 툭 꺼내 놓은 그 마음도 애써 헤아려 보았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서, 자신의 전사를 알지 못하는 적당히 낯선 누군가와 하는 대화라서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걸까.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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