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리영희
고병권 외 지음, 리영희재단 기획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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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리영희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글을 읽기 시작했기에 처음에는 내용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여러 필자의 문장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존경과 신뢰를 통해 그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1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궁금증이 생겨 그의 이력을 찾아보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은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사상가로, 냉전과 분단이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권력과 이념을 비판하며 사실과 진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이어온 인물이다. 언론·학문·시민사회 전반에 걸쳐 비판적 지성의 기준을 제시했으며, 억압적인 시대에도 침묵하지 않는 태도로 많은 이들에게 지적·윤리적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업적을 살펴보며 사회 전반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고, 동시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인상은, 그가 '대단한 인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생은 농담을 건네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인물이었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따뜻했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았다. 그의 삶을 스쳐 간 수많은 인연이 하나같이 '사람으로서의 리영희'를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사상보다도 관계 속에서 더 오래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은 자서전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자서전이 한 사람의 삶을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해서 보여준다면, <나와 리영희>는 여러 사람의 시선을 통해 하나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한 방향으로 정리된 서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리영희라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다. 업적을 나열하기보다, 각자의 삶에 스며든 흔적을 통해 그를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나와 리영희>는 리영희를 몰랐던 독자에게도, 이미 알고 있던 독자에게도 새로운 시선을 건네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한 지식인의 위대함이 단지 사상이나 업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때와 만났던 사람들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면서 기억의 서랍에 남기기 마련이다. - P15

그는 아이들을 너무나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시대를 살아왔고 그 속에서 특히 빠른 속도로 어른이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도 어린아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편지들 몇군데서 그의 어린아이가 얼굴을 내비치는 것을 보았다. - P37

류춘도 선생은 말했다. 먼저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자신은 덤의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내 부모도 노상 말했다. 좋은 사람은 다 가고 자신들 같은 찌끄러기들만 남아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고.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사라진 역사를, 그 속의 위대하고 가여운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 P57

진실을 알려면 사거의 앞면만 보면 안 된다. 사건의 뒷면은 물론이고 옆도 보아야 하고 깊이까지 보아야 한다. 철저하게 전체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앞만 보고 이를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 P192

선생의 감옥살이는 대부분 어떤 행위를 한 결과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한 인쇄물이 형법에 저촉되었다는 재판의 결과였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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