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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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야기는 프랑스의 고성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한 미국인 관광객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그는 '호랑이성'이라 불리는 이 성의 오백 년 전 모습을 놀라울 만큼 상세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액자식 구성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이 인물은 누구이며, 왜 호랑이성의 이야기를 이토록 자세히 알고 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나를 500년 전 에스콰베타 왕국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책을 읽은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 장면을 읽으니, 낯섦은 사라지고 깨달음과 놀라움이 남았다.


마법과 성, 공주와 왕자가 등장하는 판타지이지만, 이 작품이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툴리아는 공주로 태어났지만 정략결혼이라는 정해진 길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였다. 또한 왕의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나톨의 모습은,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선택을 지켜보면서, 가족의 기대와 사회의 시선,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결국,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도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온전히 나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연인 간의 사랑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아나톨이 툴리아를 딸처럼 아끼는 마음, 아나톨과 피토 사이에 싹튼 우정, 그리고 자유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세 사람의 연대는 사랑이 단 하나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모든 형태의 사랑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자와의 결혼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의 사랑, 혈연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아끼는 마음, 신분을 뛰어넘은 진정한 우정. 이 모든 것이 진짜 사랑이며, 어떤 형태의 사랑도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모든 이야기는 마법사 아나톨의 시점으로 진행되었다. 그래서 처음엔 툴리아와 피토가 어떠한 생각과 마음으로 여정에 참여했는지, 그들의 결말이 어떠한지도 알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마침표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기에 뒷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독자가 스스로 결말을 상상하고, 질문하며, 각자의 해석을 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기에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이 작품이 더 값지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열린 결말 속에서 나는 나만의 결말로 이야기를 완성하며, 사랑스럽지만 용감하고 조심스럽지만 단단했던 그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백 년 전 호랑이성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 정해진 길을 그대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진정한 행복이 누군가가 대신 정해준 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불확실하고 두렵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삶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최근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실패라고 부를 만한 사건들을 잇따라 겪었다. 나는 실패보다는 일시적인 차질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랑이가 성에 왔을 당시 궁정에서의 나의 위상은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 - P21

"제가 운명을 통제할 수는 없을 테지만, 제 운명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오직 저만 정할 수 있습니다." - P44

그는 우리가 나이를 먹지 않으면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실상 우주와 보조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죽음은 점진적인 변화의 한 단계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이 영원한 시간 속에서 계속 더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믿었다. - P77

생각만 해도 호랑이가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썼다. 말하거나 떠올리지 않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이.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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