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아파트 1 - 1001호 뱀파이어 몬스터 아파트 1
안성훈 지음, 하오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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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제본서평단 #협찬

익숙한 곳을 떠나는 불안,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 그러나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모과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모과는 행운마을 솔음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학교에서도 아파트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느낀다. 모과와 테오가 이사 오기 전 동네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친구들과 이웃 주민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과 그곳에서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모과와 테오를 더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장소보다는 그곳에서 누구와 어떤 추억을 공유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웃게 하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와 이웃들이 있다면 낯선 곳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아닐까? 새로운 곳에서의 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모과는 이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행운 저금통 열쇠를 잃어버린다. 이 열쇠는 모과의 마음 상태를 상징하는 것 같다. 모과가 행운 저금통 열쇠를 잃어버린 지금은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함에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인 것이고, 찾을 때쯤이면 모과의 마음의 문이 열린 상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모과가 새로운 환경에 마음을 여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니 말이다.

몬스터 아파트1은 테오네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권에서 살짝 언급된 이웃들을 시작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개성 있는 주민들이 모과의 세계를 넓혀줄지 기대된다. 정말 너무 재밌게 읽어서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 때문에 모과의 두 뺨이 금붕어처럼 부풀어 올랐다. - P9

아이들과 얼른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모과는 온종일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말하고 서툴게 행동했다. - P30

"네 잘못은 아니야. 여긴 정말 다양한 존재들이 사는 곳이거든. 현관문 안쪽에 각자의 사정이 있을지 모르잖니?" - P70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야. 이웃들과는 천천히 친해지면 돼. 기다리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소원 같은 거지." - P71

토요일 오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시간의 악보를 펼쳐 오후 두 시와 네 시 사이에 도돌이표를 찍어놓은 모양이었다. 하늘에 높게 뜬 해가 산과 건물 뒤로 사라질 때쯤 아빠가 퇴근할 텐데, 해는 도통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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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문
서맨사 소토 얌바오 지음, 이영아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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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하서포터즈1기 #협찬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양자역학적 세계관이다.

손님들은 지난 선택에서 생긴 후회를 전당포에 맡긴다. 전당포에 맡겨진 후회는 곧 실현되지 못한 또 다른 우주의 흔적, 즉 선택의 가능성 중 사라진 잔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중첩 이론'에 따르면, 선택의 순간마다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중첩 상태는 붕괴하고 하나의 현실만이 확정된다. 그렇다면 전당포에 후회를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택의 기록을 지움으로써, 그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삶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그 영향이 크든 작든 말이다.


하나는 운명이 정해진 세계에 살고, 게이신은 선택을 통해 미래가 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두 세계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물리 법칙이 다르다. 하나의 세계는 모든 사건이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은 단지 그 운명 위를 걷는 존재에 불과하다. 반면 게이신의 세계에서는 선택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그 선택이 현실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하나의 닫힌 세계에 게이신이라는 '변수'가 들어오면서, 예측 불가능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시쿠인이 등장한다. 하나의 세계에서 시쿠인은 질서를 유지하는 관리자로, 누군가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즉,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생겼을 때 그들을 추적한다. 시쿠인은 선택으로 생긴 수많은 가능성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자신의 운명대로 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가 게이신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와 도난당한 선택을 찾겠다고 '선택'하여 떠나는 여정에서 시쿠인에게 쫓긴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하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을 한 것이고, 이는 시쿠인이 용납할 수 없는 파동함수의 붕괴, 즉 결정론적 우주에 균열을 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후회와 선택, 그리고 인간의 운명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양자역학적 관점과 결합해, 우리가 '선택'과 '후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워터 문>은 물에 비친 달처럼 닮았지만 다른 두 세계를 의미하며, 현실과 환상이 겹치는 이야기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선명하게 보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 닮았지만 다른 두 세계, 우리가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바로 그 갈망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들.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 후회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다. 만약 그것들을 지운다면? 아마도 나는 나일 수 없을 것이다.



"망가진 건 뭐든 아름답지요. 의자든, 건물이든, 사람이든."
이즈미는 찻잔에서 고개를 들었다.
"사람도요?"
"사람이 특히 그렇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방식으로 망가지거든요. 움푹 파이고, 긁히고, 갈라진 곳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눈에 안 보이는 흉터는 가장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어 무척 흥미롭지요." - P21

"끝과 시작은 시간의 같은 지점에 있지. 오늘 밤은 나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중요해. 어쩌면 너한테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 - P40

"실패가 뭐가 나빠요?" 하고 게이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어때서요? 어떤 방식을 써왔다고 해 서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실패하면, 뭐 어때요? 잘못된 방향이 하나 제거되고 옳은 길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데. 과학은 위대한 사람들의 어깨 위에 지어졌죠. 그들이 이룬 업적뿐만 아니라 실수를 발판으로 삼아서요. 내가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겁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일." - P175

게이신은 이제껏 저지른 실수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잃는다 해도 아쉽지 않을 실수를 찾으려 애썼다. 저마다 다른 민망함과 실망, 고통을 초래한 실수들이지만, 그중 없어도 상관없는 것을 고르려니 어려웠다. 미련 없이 쉽게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힘들게 싸워 얻은 보물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실수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상처 같았다. 기쓰네는 그의 인생에서 딱 한 알갱이를 떼어 달라 요구했지만, 혹시 다른 모든 것이 그 알갱이 위에 지어진 건 아닐까 게이신은 의문이 들었다. - P200

"여기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 그래.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까.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공간에서 기쁨을 찾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걸 깨닫게 된단 말이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영영 못 닿을지 몰라도, 인생을 돌이켜보면 단 1초도 괴로움에 시간을 낭비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행복은 장소에 있는 게 아니라오. 우리가 쉬는 모든 숨에 깃들어 있지. 그러니까 숨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셔야 해." - P371

생물학이 뭐라 가르치든 간에, 누군가를 진정 살아 있게 하는 건 혈관 속의 피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었다. 목적을 잃어버린 게이신은 자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이것이 인간의 기묘한 점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때도 우리의 일부는 죽기를 거부한다.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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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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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밝은세상'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투 오브 어스>는 전문 사기꾼 '메그 윌리엄스'와 그녀를 10년간 추적해온 저널리스트 '캣 로버츠'의 이야기를 두 여성의 시점으로 교차해 들려준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중심으로, 두 여성의 십 년에 걸친 추격전은 피해자와 가해자, 복수와 정의의 경계를 끊임없이 묻는 치열한 심리전으로 펼쳐진다.


미니밴에서 잠을 자고 피트니스센터에서 샤워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 메그,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캣, 코리로 인해 꿈을 잃고 학교를 떠난 크리스틴, 론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잃고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로지 등 작품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피해를 입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인물들이다. 작품은 이들이 겪는 폭력과 불평등을 조명하는 동시에, 메그와 캣을 통해 생존과 저항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메그는 사기라는 무기를, 캣은 진실 폭로라는 방법으로 세상에 맞선다.

코리를 시작으로 메그는 십 년 동안 여러 도시를 떠돌며 여성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찾아다닌다. 뛰어난 사기 실력으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인생을 회복 불가능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녀의 표적은 모두 여성을 착취하고 약자를 괴롭히지만, 권력과 돈으로 법망을 빠져나간 인물들이다.

십 년 전, 수습기자였던 캣은 메그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캣이 증오하는 대상은 가해자인 네이트가 아니라 오히려 메그였다. 왜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메그를 더 증오할까?아마 캣에게 메그는 '그날의 시작'이자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불행의 원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법적으로 네이트를 단죄할 수 없었던 캣은, 결국 분노의 화살을 메그에게 돌려 그녀를 추적하며 자신의 상처를 통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메그를 쫓으면 쫓을수록 캣은 흔들린다. 메그가 표적으로 삼은 인물들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그녀의 행위를 단순한 범죄로만 규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그의 표적이 악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법이 외면한 악인들을 대신 응징하는 메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의란 무엇이며 복수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고, 그때마다 이전의 장면들이 새롭게 해석되었다. 메그가 과연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까? 캣은 메그를 믿게 될까? 어떠한 방법으로 론에게 복수할까? 등 모든 질문의 답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드러나 끝까지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 론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사기를 벌인 메그나, 트라우마를 안고 메그를 10년간 뒤쫓은 캣 모두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을 만큼의 인내력이 없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메그와 캣, 두 여성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장을 통해 '정의'와 '복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연기해온 수다한 인물과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겹겹이 쌓인 때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 이곳을 떠날 때와 별반 달라질 게 없는 사람이었다. - P24

남자에게 기대서 얻는 안락은 필요 없어. 너와 내가 힘을 모아 바라는 걸 쟁취하면 돼.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무서울 게 없지. - P51

"저에게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고통 없는 삶은 없으니까요. 암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힘껏 헤쳐나갈지 아니면 맥없이 주저앉을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 P59

"당신은 꿈이 없었던 게 아니라 도중에 잃어버린 거예요. 누군가 당신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가로막았을 수도 있죠. 한 번뿐인 인생을 꿈도 없이 산다는 건 너무 허망하잖아요.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한 삶을 살아봐요 - P367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나에게는 고향이 사라졌어요.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줄곧 어떤 환영 같은 감정에 휩싸여 살았어요. 그 감정이 내 삶의 질서를 다시 찾아줄 리셋 버튼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이제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영을 따라잡는 행위를 그만두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요."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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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 제5회 살림청소년문학상 대상, 2015 문학나눔 우수문학 도서 선정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2
박하령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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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미래인'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선정

⭐비룡소·살림 문학상 수상작가 박하령 대표작

⭐'미래인' 청소년걸작선 92


같은 날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은오와 지오. 일란성 쌍둥이지만 당당한 지오와는 달리, 은오는 위축되어 있으며, 심지어 지오의 성형수술로 인해 닮은 외모마저 달라져 더욱 대조되어 보였다.

이야기는 언니 은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학교에서의 위치, 친구 관계, 가족 안에서의 자리 등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매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그 속에서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솔직하고 섬세하게 담겨 있어, 은오의 내밀한 감정과 심경의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항상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기만 했던 은오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놀라움과 짜릿함이 공존했다. 은오의 반란은 지오를 향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억압했던 구조와 내면의 불안을 향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은오가 얼마나 단단하게 성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소설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의자 뺏기'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내 몫의 '의자 찾기'라고 말한다. 이 말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경쟁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위치, 가족 안에서의 자리, 나아가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는 자리 말이다. 결국 은오는 지오의 의자를 빼앗지 않고, 자신의 의자를 찾았다. 그리고 그 의자는 지오의 의자 옆에 나란히 놓일 수 있었다. 경쟁이 아니라 공존, 빼앗기가 아니라 나누기. 이것이 진짜 성장이 아닐까 싶다.


<의자 뺏기>는 불공평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든 청소년의 이야기다. 부모의 선택, 환경의 한계, 친구 관계의 어려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이 소설은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세상의 모든 은오들에게 말한다. "너도 앉을 자리가 있어. 그러나 그 자리는 네가 찾고 만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은오처럼 자신만의 의자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이 떠올라서 맺힌 울음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안에 단단히 맺혀 있던 슬픔이 졸지에 풀어 헤쳐지면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오래 묵은 만큼 그 농도가 짙어서인지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대책 없이 부풀어 오르는 거품처럼 울음은 삼켜지지도 않았다. - P57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는 거야.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듯이 말이다. 숨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엉키고 맺힌 것을 휘휘 저어서는 외로움이라든가 슬픔, 그런 것들을 낱낱이 가는 실처럼 풀어낸대! 물 풀을 바르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면 풀이 실처럼 되는 거 본 적 있어? 그딴 거랑 비슷한 거지. 우리가 ‘휴‘하고 날숨을 쉬면 걔들이 밖으로 나가 바람이 되는 거야." - P60

그런데 덮기만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덮어 놓은 까만 콩나물 이불 속에서 예상치 않게 웃자란 콩나물을 보면 놀라듯이, 난 요즘 들어서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 P85

이 분노가 끝이 나면 안 된다. 분노란 감정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드니까. 만약 이 분노가 맥없이 끝나면 할머니 말대로 밥벌이를 해야 할 그 누구는 바로 내가 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소리 없이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오에게는 다시 밀리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난 계속 분노할 것이고, 억지로라도 분노에 풀무질을 해 불꽃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노는 건강하고 정당하다. 또다시 마음에도 없는 ‘아임 오케이!’를 외칠 수는 없었다. 의자 뺏기를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다. 나도 이제는 앉고 싶으니까. 난 기필코 의자 뺏기의 승자가 될 것이다. - P93

하지만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무너지는 순간순간은 있다. 아무리 ‘아임 오케이!‘를 몇 만 번 외쳐도 그런 순간을 꼭 왔다. 내가 아무리 다짐을 하고 눈을 부라려도 그냥 단숨에 확 하고 나를 덮치는 질기디질긴 막막함. 그럴 때는 올무에 갇힌 짐승처럼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그 순간들이 모여 힘을 합쳐 오늘 드디어 걸쇠를 열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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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심리 처방전
김은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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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심리처방전>은 오십대가 마주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룬 심리 에세이다.

'백세 시대'의 오십은 인생의 절반을 지난 시점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을 깊고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정리한 목록을 '버킷리스트'라고 한다. 다만 50대라면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 그리고 하지 못할 것들이 무엇인지 작성해봐야 한다. 지금은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지만 60대에는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하고, 어쩌면 못 오를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p.39)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우리는 흔히 버킷리스트를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로 생각하며 여유롭게 미뤄두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50대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희망 목록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20대처럼 새로운 경험을 무한정 쌓아 올릴 시간이 없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난 시간동안 관계, 책임, 혹은 두려움 때문에 외면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 즉, 50대는 삶의 에너지를 재분배하고 후회 없는 노년을 설계하기 위한 전환기인 동시에, '나중에'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오십'이라는 시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지켜왔던 삶의 원칙이 무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 실수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원칙을 안 지켰다고 해서 다른 일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오십이다.(p.101)

막연히 오십은 인생의 절반이 지난 시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기가 단순한 중간 지점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십대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 변화하는 사회적 지위와 가정에서의 역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기였다. 마냥 젊지도 않고 마냥 늙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이 찾아오는 때인 것 같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아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깊이 와닿았다. 그렇기에 오십은 언젠가 다가올 먼 미래가 아닌, 지금부터 준비하고 이해해야 할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인 것이다. 젊은 시절의 경직된 원칙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여유,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성숙함. 이것이 바로 50대가 얻게 되는 지혜이자 선물이 아닌가 싶다.

***

오십은 더 이상 황혼이 아닌, 삶의 에너지를 재편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두 번째 출발선'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출발선에 선 이들이 그동안 사회적 역할과 타인의 기대 속에 묻어두었던 선택을 비로소 '자신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오십이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내가 하는 선택들이 어떤 '오십의 나'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이 책이 말하듯, 오십 이후의 삶은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보내야 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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