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뺏기 - 제5회 살림청소년문학상 대상, 2015 문학나눔 우수문학 도서 선정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2
박하령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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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미래인'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선정

⭐비룡소·살림 문학상 수상작가 박하령 대표작

⭐'미래인' 청소년걸작선 92


같은 날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은오와 지오. 일란성 쌍둥이지만 당당한 지오와는 달리, 은오는 위축되어 있으며, 심지어 지오의 성형수술로 인해 닮은 외모마저 달라져 더욱 대조되어 보였다.

이야기는 언니 은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학교에서의 위치, 친구 관계, 가족 안에서의 자리 등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매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그 속에서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솔직하고 섬세하게 담겨 있어, 은오의 내밀한 감정과 심경의 변화를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항상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기만 했던 은오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놀라움과 짜릿함이 공존했다. 은오의 반란은 지오를 향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억압했던 구조와 내면의 불안을 향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은오가 얼마나 단단하게 성장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소설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의자 뺏기'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기 위한 내 몫의 '의자 찾기'라고 말한다. 이 말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경쟁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위치, 가족 안에서의 자리, 나아가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채워가는 자리 말이다. 결국 은오는 지오의 의자를 빼앗지 않고, 자신의 의자를 찾았다. 그리고 그 의자는 지오의 의자 옆에 나란히 놓일 수 있었다. 경쟁이 아니라 공존, 빼앗기가 아니라 나누기. 이것이 진짜 성장이 아닐까 싶다.


<의자 뺏기>는 불공평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모든 청소년의 이야기다. 부모의 선택, 환경의 한계, 친구 관계의 어려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이 소설은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세상의 모든 은오들에게 말한다. "너도 앉을 자리가 있어. 그러나 그 자리는 네가 찾고 만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은오처럼 자신만의 의자를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이 떠올라서 맺힌 울음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안에 단단히 맺혀 있던 슬픔이 졸지에 풀어 헤쳐지면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오래 묵은 만큼 그 농도가 짙어서인지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대책 없이 부풀어 오르는 거품처럼 울음은 삼켜지지도 않았다. - P57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는 거야.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듯이 말이다. 숨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이것저것 엉키고 맺힌 것을 휘휘 저어서는 외로움이라든가 슬픔, 그런 것들을 낱낱이 가는 실처럼 풀어낸대! 물 풀을 바르고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면 풀이 실처럼 되는 거 본 적 있어? 그딴 거랑 비슷한 거지. 우리가 ‘휴‘하고 날숨을 쉬면 걔들이 밖으로 나가 바람이 되는 거야." - P60

그런데 덮기만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덮어 놓은 까만 콩나물 이불 속에서 예상치 않게 웃자란 콩나물을 보면 놀라듯이, 난 요즘 들어서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 P85

이 분노가 끝이 나면 안 된다. 분노란 감정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드니까. 만약 이 분노가 맥없이 끝나면 할머니 말대로 밥벌이를 해야 할 그 누구는 바로 내가 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소리 없이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오에게는 다시 밀리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난 계속 분노할 것이고, 억지로라도 분노에 풀무질을 해 불꽃을 일으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노는 건강하고 정당하다. 또다시 마음에도 없는 ‘아임 오케이!’를 외칠 수는 없었다. 의자 뺏기를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거다. 나도 이제는 앉고 싶으니까. 난 기필코 의자 뺏기의 승자가 될 것이다. - P93

하지만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무너지는 순간순간은 있다. 아무리 ‘아임 오케이!‘를 몇 만 번 외쳐도 그런 순간을 꼭 왔다. 내가 아무리 다짐을 하고 눈을 부라려도 그냥 단숨에 확 하고 나를 덮치는 질기디질긴 막막함. 그럴 때는 올무에 갇힌 짐승처럼 꼼짝없이 있어야 한다. 그 순간들이 모여 힘을 합쳐 오늘 드디어 걸쇠를 열었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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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심리 처방전
김은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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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심리처방전>은 오십대가 마주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룬 심리 에세이다.

'백세 시대'의 오십은 인생의 절반을 지난 시점이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을 깊고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정리한 목록을 '버킷리스트'라고 한다. 다만 50대라면 남은 인생에서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 그리고 하지 못할 것들이 무엇인지 작성해봐야 한다. 지금은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지만 60대에는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하고, 어쩌면 못 오를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p.39)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 충격이었다. 우리는 흔히 버킷리스트를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로 생각하며 여유롭게 미뤄두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50대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희망 목록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20대처럼 새로운 경험을 무한정 쌓아 올릴 시간이 없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난 시간동안 관계, 책임, 혹은 두려움 때문에 외면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 즉, 50대는 삶의 에너지를 재분배하고 후회 없는 노년을 설계하기 위한 전환기인 동시에, '나중에'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나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

'오십'이라는 시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지켜왔던 삶의 원칙이 무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 실수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원칙을 안 지켰다고 해서 다른 일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오십이다.(p.101)

막연히 오십은 인생의 절반이 지난 시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 시기가 단순한 중간 지점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십대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 변화하는 사회적 지위와 가정에서의 역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기였다. 마냥 젊지도 않고 마냥 늙지도 않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이 찾아오는 때인 것 같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아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깊이 와닿았다. 그렇기에 오십은 언젠가 다가올 먼 미래가 아닌, 지금부터 준비하고 이해해야 할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인 것이다. 젊은 시절의 경직된 원칙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여유,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성숙함. 이것이 바로 50대가 얻게 되는 지혜이자 선물이 아닌가 싶다.

***

오십은 더 이상 황혼이 아닌, 삶의 에너지를 재편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두 번째 출발선'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출발선에 선 이들이 그동안 사회적 역할과 타인의 기대 속에 묻어두었던 선택을 비로소 '자신의 선택'으로 바꿀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나의 오십이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동시에 지금 내가 하는 선택들이 어떤 '오십의 나'를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이 책이 말하듯, 오십 이후의 삶은 더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보내야 할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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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충격파 - 성균관대 김장현 교수의 AI 인사이트
김장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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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충격파>는 인공지능이 불러올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기술적 발전 상황과 AI가 사회·경제·교육 환경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AI는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들(기후 위기, 팬데믹, 불평등, 자원 고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위험과 윤리적 딜레마를 만들고,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겼던 자의식과 창의성 부분까지 침투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포스트휴먼 시대는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AI와의 건전한 공존 방안을 준비하고 모색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이끌 수 있다고 말이다. 과도한 낙관주의나 비관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접근과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 덕분에 더욱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 역시 처음에는 '굳이 AI를 써야 하나'라고 망설였고,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업에 AI를 쓰면 티가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배울 시간도 부족해 당장 시작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무량이 늘어나고 선택의 여지가 좁아질수록 ChatGPT 같은 도구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느낀 건 놀라움이었고,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AI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이전에 혼자 처리하던 일들이 AI의 도움으로 훨씬 빨리, 그리고 체계적으로 끝나니 시간 배분과 업무 효율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이처럼 AI는 구체적이고 적절한 프롬프트(명령)를 입력하면 적절한 답변을 제공한다. 그리고 AI에게 적절한 질문을 연속해서 던져 AI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전문가를 '프롬프트 엔지니어'라고 한다. 기계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AI의 환각을 맹신하지 않는 비판적 사용자로서 말이다. AI를 막연히 믿거나 배척하기보다는, 명확한 기준과 책임 하에 사용한다면 AI는 위협적이기보다는 공존에 필요한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물론 반사회적인 이용자가 아닌 올바르고 착한 이용자로서 사용한다면 말이다.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AI. 이미 우리 삶에 깊게 들어온 A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준과 시선을 기를 필요가 있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상호보완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AI라는 거대한 파도의 힘을 이용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충격파‘는 파괴의 힘인 동시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창조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는 이미 우리를 향해 밀려오고 있다. 이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충격파에 나가떨어져 파도에 휩쓸려가면서 표류할 것인가, 아니면 파동의 힘을 이용해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갈 것인가, 둘 중 하나뿐이다. - P7

교육기관이 따라잡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그래도 변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대학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챗GPT와 상담해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 시대가 왔다. - P24

진빵 하나를 추천받는 작은 일상에서부터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채용과 대출 심사까지, AI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고 있다. 이제는 ‘AI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넘어서 ‘AI가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 P3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닌 준비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닌 변화를 주도하는 자세다. 포스트휴먼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가능성이 무한한 시대가 될 것이다. 그 시대의 주인공은 AI가 아닌, AI와 함께하는 우리 인간이다. - P83

기술이 개인영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만성적인 불안이 되고 있다. 기계가 더 이상 나에게 귀찮은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동시에 내 개인정보는 잘 보호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공존하는 요즘이다. - P132

한참을 스마트폰에 빠져있던 우리는 눈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나서야 바깥세상에 나가보려 한다. 그런데 집을 나선지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응시하며 주변 상황에 무감해지는 ‘스몸비‘, 즉 스마트폰 좀비로의 변신을 경험하게 된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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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 초보 농사꾼의 고군분투 영농기
김영화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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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학이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는 시골 생활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견한 진짜 삶의 가치를 전해주는 책이다. 고되고 때로는 절망적이기까지 한 농사일의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기쁨과 성취감을 놓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모님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계절의 흐름과 농사의 과정을 보면서, 부모님도 이 길을 걸어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갈 때마다, 계절마다 수확한 작물을 건네주시는 부모님의 그 맛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신선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땀과 시간, 그리고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사랑 때문이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을 따라 자주 밭과 논에 가곤 했는데, 성인이 되고부터는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가끔 농사일을 거들 때면, 부족한 나의 보탬이 부모님께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다가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껏 받은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는 함께 나누는 삶에 더 익숙해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이 질문처럼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는 쉽게 채소와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거나, 농사를 '조금만 하면 되는 일'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곤 한다. 저자의 말처럼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씨앗, 거름, 농기구 등 어느 것 하나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없다. 게다가 기후 위기 앞에서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매번 찾아오고,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받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농사꾼들은 늘 고단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시골인심을 운운하며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났고, 혹여나 나도 그런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았다. 이 세상의 쉬운 일은 없기에 모든 일이 값지고 대단하다. 우리의 식탁을 지탱하는 농사꾼들의 땀과 노고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솔직한 기록을 통해 농사의 무게를 글로 접할 수 있었고, 매 계절 묵묵히 농사를 지어내는 부모님의 삶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오신 부모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 길에 작은 보탬을 더하며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다.



모두 맛있게 먹고 건강하길. 이것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음식이 아닌,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친구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길. 달콤한 인생으로 지내길. - P15

농사를 종교처럼 품고 한길을 걸으며 진심을 다해 농사짓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 엄지 척! 농부들이 우리동네에 살고 있다. - P19

시골도 사람 사는 곳이다. 세금 내고 산다. 땅에다 씨앗을 뿌리려면 돈 주고 씨앗을 구입해야 한다. 거름도 비료도 구입한다. 자기 땅이 없으면 임대료 내고 농사지어야 한다. 무엇 하나 거저 얻는 것은 없다. - P22

부모님을 보다가 명치끝이 아파와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참 많이 늙으셨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힘들면 찾아가 기대어 쉴 수 있는 버팀목이었으나 이제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세월의 무상함에 점점 더 쓸쓸해져 가는 부모님이다. - P93

욕실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버지는 이 어려운 걸 어찌 해마다 하셨던 걸까. - P129

여러가지 채소 등을 직접 재배해서 먹으니 무엇이 진짜 맛있지 알게 되었다. 수확한 농산물을 먹는 행복은 땀 흘리며 수고한 노동을 잊게 해준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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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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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진료하던 벤지 워터하우스가, 환자의 자리에 서게 되며 써 내려간 기록이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정신과 의사와 심리치료사의 역할 차이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정신과는 주요 증상에 집중하고, 심한 정신병에도 약물 처방을 통해 치료를 진행한다. 이는 일회용 반창고처럼 즉각적으로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심리치료사는 환자의 삶과 개인사를 깊이 들여다보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도록 돕는다. 따라서 정신과에서는 비교적 빠르게 자신의 정신 질환을 인지하고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심리상담은 긴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움직이는 과일에 스티커를 붙이듯, 저자를 비롯한 정신과 의사들은 매일같이 조현병, 양극성 장애, 우울증, 감정 불안정성 인격 장애라는 이름으로 분류된 환자들을 만난다. 환자는 많고, 이를 진찰하는 의사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절차적으로 환자들을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환자들이 가진 다양성은 딱딱한 의학용어로 표시되고, 약 처방으로 단순화된다. 처음에는 너무 기계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다가도, 한정된 병상과 의료진 현실을 떠올리면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의료진의 딜레마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또한, 환자들이 가진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며, 나도 모르게 정신질환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자신의 문제를 '정신 질환'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단편적인 정보로 질환을 오해하곤 한다. 저자가 지적하듯,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우울증은 '화학적 불균형'이 원인이고, 양극성 장애는 창의적 천재를 낳고, 조현병은 '분열된 뇌를 가진' 도끼를 휘두르는 살인자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러한 통념 속에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의 편견을 인식하고, 그것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점을 깨달았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저자가 곳곳에 담은 유머 덕분에 끝까지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책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감정을 쉽게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고, 그 사람만의 이야기와 맥락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그리고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책은 정신의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게 해준 귀한 작품이다.

어느새 나는 극도의 충격, 공포, 슬픔 같은 감정도 전문가답게 로봇처럼 흡수한다. 감정에 너무 많이 동요되지 않는 편이 더 견디기 쉬우니까. - P27

"괜찮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 분야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긴 해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경력 전체를 인간의 고통을 대하며 보내겠다고 선택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정신의학과 종사자가 다른 정신의학과 종사자의 도움을 구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자기 머리를 자기 손으로 자르면 얼마나 엉망이겠어요?" - P88

환자들은 가공 처리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서 움직이는 과일과도 같다. 사과, 오렌지, 바나나 등에 붙는 스티커 대신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조현병, 양극성 장애, 우울증, 감정 불안정성 인격 장애다. - P105

정신의학은 온통 ‘보통,‘아마도‘,‘설마 아니겠지‘로 이루어져 있어요. 인간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정밀과학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임상적 평가와 육감, 그리고 가끔 기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걸로는 늘 충분하지가 않아요. - P306

"항상 아슬아슬해요.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야 하고, 입원시키지 않으면 환자 안전을 걱정하고요. 정신과 의사 노릇이 이럴 줄 몰랐어요." - P358

어쩌면 오랫동안 끔찍한 무감각 속에서 헤맨 끝에 이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아니 감정과 다시 연결된 느낌이 든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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