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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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판사 '든'에서 리커버 출간기념으로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제본서평단 #협찬

《벼랑 위의 집》은 판타지의 옷을 입은 우리 시대의 우화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책 한 권에 잔잔하고 깊이 있게 스며들어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이너스와 아서의 대화이다. 두 사람은 마치 창과 방패 같았다.

라이너스는 규칙은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마법적 존재들과 비마법적 존재들이 동화되어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아서는 그러한 규칙은 아이들을 잠재적 위험으로 보기 때문에 만들어졌으며, 아이들은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면 마르시아스 고아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아이들을 대했을까? 두 사람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있었고, 모두 공감이 되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관점은 다르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안전과 자유, 질서와 사랑, 사회와 개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다름'이 곧 '위험'이 되는 사회에서, 이 소설은 '이해'와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라이너스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름'을 두려움이 아닌 '개성'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아서를 통해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세상이 두려워한 존재들이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도 용감하게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지나쳤던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또한, 편견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였다.


"집이란 그 어디보다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우리도 그렇지, 얘들아? 우리 집에선 우리들 자신이 되잖아."

마르시아스 고아원의 아이들은 '위험한 존재'로 불린다. 그러나 아서와 함께하는 고아원에서는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적그리스도라는 무시무시한 꼬리표를 단 루시조차, 그곳에서는 그저 한 아이로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진정한 집, 진정한 소속감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이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집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다시 보면 처음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숨어 있었다. 라이너스가 한 달의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아끼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하는 일만을 합니다. 애착을 형성하는 것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고아원에 있게 된 거고요. 아이들이 밤에 허기진 배로 자리에 눕는다거나, 몸이 닳도록 착취당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아이들을 일반 아동들과 격리한다 해서 취급마저 다르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모든 아이들은 그... 성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아낌없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 P61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 해. 두려움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혐오로 바뀌고. 사람들은 섬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워서, 그 애들을 혐오하는 거야. 이런 이야기, 처음은 아니잖아?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니까." - P98

"집이란 그 어디보다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우리도 그렇지, 얘들아? 우리 집에선 우리들 자신이 되잖아." - P168

"사람들이 흑백으로 나뉘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벗어나지 않고 한 길만 갈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난다고 해도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예요." - P241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향한 편견만을 마주하며 살고 있어요. 그렇게 자라면 오로지 편견만을 아는 어른이 되고 말겠지요. 당신마저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루시가 예상과는 달랐다는 건 당신이 이미 머릿속에서 그 애가 어떤 아이일 거라고 재단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변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편견과 싸우겠습니까? 편견을 그대로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P248

"하지만 비눗방울 속에 갇혀 살기란 참 쉬워, 반복되는 일과는 평온을 주거든. 그러다가 비눗방울이 터지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면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게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차마 믿어지지 않는 거야. 심지어 겁이 나기도 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시 그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기도 하지. 나 역시 그 비눗방울 안에 존재했던 게 사실이고."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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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김희숙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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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클래식북스(클북)'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이 물음표 하나 없는 문장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질문 같지만 독백 같고, 회상 같지만 탐색 같은 이 문장을 책을 펼치기 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처음에는 가족과 함께 웃었던 시간이나 친구와 보냈던 즐거운 순간들만 떠올랐다. 그러나 저자는 특별하지 않아도 미소 짓게 하고,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해준 소소한 일상을 담백하게 이야기하며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었다.

우리는 종종 '평범한 하루'라는 말을 한다. 별일 없이 지나간 날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그러나 저자는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치열함을 발견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하고, 끼니를 챙기고, 하루를 버텨내는 일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고 나서야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는 구절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살아낸 시간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었다. 결국 삶이란 몇 개의 극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 조용하고 잔잔한 하루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커피 한 잔으로 얻는 에너지, 타인과 나눈 대화, 맛있는 한 끼 식사. 이러한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내 삶을 채운다. 그리고 그 순간에 집중하고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일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작고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행복의 파편들을 주워 담는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지루함을 느끼곤 했다. 평범한 하루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때로는 더 역동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원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러한 내 마음을 마주하면서,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행복은 평범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도,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평범한 하루도 특별한 하루도 충분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주변과 자신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오늘 내가 살아 있는 평범한 하루를 충분히 느끼고 감사하는 것. 이 책은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과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무사히 흘러간 하루가 무사히 끝난 듯하지만, 마음 한편은 헛헛하다. 나에게 정말 무사한 하루였을까. - P21

불안함과 무사함의 불협화음을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진짜 무사함을 찾아가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 P22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태어나 걷고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걷는다. 그런데 정말 같은 시간일까? 어쩌면 각자의 시계를 품은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혹은 같은 시계를 보도록 강요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 P83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서로 다름을 키워내는 삶을 꿈꾼다.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도, 각자의 꽃을 피우는 그런 삶을. - P84

모든 이의 삶은 하나의 고전이다. 세월을 견디며 많은 이들에게 검증받은 고전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삶을 고전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누군가의 서가에 꽂히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니, 서가에 놓이지 않아도 괜찮다.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고전도 있으니까. 기억되는 죽음도, 잊히는 죽음도 모두 아름답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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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아파트 1 - 1001호 뱀파이어 몬스터 아파트 1
안성훈 지음, 하오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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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제본서평단 #협찬

익숙한 곳을 떠나는 불안,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 그러나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모과의 마음이 잘 느껴졌다. 모과는 행운마을 솔음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학교에서도 아파트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느낀다. 모과와 테오가 이사 오기 전 동네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친구들과 이웃 주민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과 그곳에서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모과와 테오를 더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장소보다는 그곳에서 누구와 어떤 추억을 공유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웃게 하고, 함께할 수 있는 친구와 이웃들이 있다면 낯선 곳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진짜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아닐까? 새로운 곳에서의 행복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에게서 온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모과는 이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행운 저금통 열쇠를 잃어버린다. 이 열쇠는 모과의 마음 상태를 상징하는 것 같다. 모과가 행운 저금통 열쇠를 잃어버린 지금은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함에 마음의 문이 닫힌 상태인 것이고, 찾을 때쯤이면 모과의 마음의 문이 열린 상태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모과가 새로운 환경에 마음을 여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드니 말이다.

몬스터 아파트1은 테오네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권에서 살짝 언급된 이웃들을 시작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개성 있는 주민들이 모과의 세계를 넓혀줄지 기대된다. 정말 너무 재밌게 읽어서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 때문에 모과의 두 뺨이 금붕어처럼 부풀어 올랐다. - P9

아이들과 얼른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모과는 온종일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말하고 서툴게 행동했다. - P30

"네 잘못은 아니야. 여긴 정말 다양한 존재들이 사는 곳이거든. 현관문 안쪽에 각자의 사정이 있을지 모르잖니?" - P70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야. 이웃들과는 천천히 친해지면 돼. 기다리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소원 같은 거지." - P71

토요일 오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시간의 악보를 펼쳐 오후 두 시와 네 시 사이에 도돌이표를 찍어놓은 모양이었다. 하늘에 높게 뜬 해가 산과 건물 뒤로 사라질 때쯤 아빠가 퇴근할 텐데, 해는 도통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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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문
서맨사 소토 얌바오 지음, 이영아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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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클하서포터즈1기 #협찬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양자역학적 세계관이다.

손님들은 지난 선택에서 생긴 후회를 전당포에 맡긴다. 전당포에 맡겨진 후회는 곧 실현되지 못한 또 다른 우주의 흔적, 즉 선택의 가능성 중 사라진 잔해라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중첩 이론'에 따르면, 선택의 순간마다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중첩 상태는 붕괴하고 하나의 현실만이 확정된다. 그렇다면 전당포에 후회를 맡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선택의 기록을 지움으로써, 그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삶이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그 영향이 크든 작든 말이다.


하나는 운명이 정해진 세계에 살고, 게이신은 선택을 통해 미래가 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다. 두 세계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물리 법칙이 다르다. 하나의 세계는 모든 사건이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은 단지 그 운명 위를 걷는 존재에 불과하다. 반면 게이신의 세계에서는 선택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그 선택이 현실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하나의 닫힌 세계에 게이신이라는 '변수'가 들어오면서, 예측 불가능한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시쿠인이 등장한다. 하나의 세계에서 시쿠인은 질서를 유지하는 관리자로, 누군가 자기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즉,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선택의 가능성이 생겼을 때 그들을 추적한다. 시쿠인은 선택으로 생긴 수많은 가능성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자신의 운명대로 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가 게이신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와 도난당한 선택을 찾겠다고 '선택'하여 떠나는 여정에서 시쿠인에게 쫓긴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른다. 하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을 한 것이고, 이는 시쿠인이 용납할 수 없는 파동함수의 붕괴, 즉 결정론적 우주에 균열을 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후회와 선택, 그리고 인간의 운명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양자역학적 관점과 결합해, 우리가 '선택'과 '후회'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워터 문>은 물에 비친 달처럼 닮았지만 다른 두 세계를 의미하며, 현실과 환상이 겹치는 이야기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선명하게 보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 닮았지만 다른 두 세계, 우리가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 바로 그 갈망이야말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내린 선택들. 그것이 나를 만들었다. 후회도 있고, 아픔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다. 만약 그것들을 지운다면? 아마도 나는 나일 수 없을 것이다.



"망가진 건 뭐든 아름답지요. 의자든, 건물이든, 사람이든."
이즈미는 찻잔에서 고개를 들었다.
"사람도요?"
"사람이 특히 그렇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방식으로 망가지거든요. 움푹 파이고, 긁히고, 갈라진 곳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눈에 안 보이는 흉터는 가장 깊은 상처를 숨기고 있어 무척 흥미롭지요." - P21

"끝과 시작은 시간의 같은 지점에 있지. 오늘 밤은 나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중요해. 어쩌면 너한테 더 중요할지도 모르지." - P40

"실패가 뭐가 나빠요?" 하고 게이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어때서요? 어떤 방식을 써왔다고 해 서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실패하면, 뭐 어때요? 잘못된 방향이 하나 제거되고 옳은 길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인데. 과학은 위대한 사람들의 어깨 위에 지어졌죠. 그들이 이룬 업적뿐만 아니라 실수를 발판으로 삼아서요. 내가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겁니다,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가능한 일." - P175

게이신은 이제껏 저지른 실수들을 하나하나 훑으며, 잃는다 해도 아쉽지 않을 실수를 찾으려 애썼다. 저마다 다른 민망함과 실망, 고통을 초래한 실수들이지만, 그중 없어도 상관없는 것을 고르려니 어려웠다. 미련 없이 쉽게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힘들게 싸워 얻은 보물처럼 느껴졌다. 각각의 실수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상처 같았다. 기쓰네는 그의 인생에서 딱 한 알갱이를 떼어 달라 요구했지만, 혹시 다른 모든 것이 그 알갱이 위에 지어진 건 아닐까 게이신은 의문이 들었다. - P200

"여기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다 그래. 생각할 시간이 많으니까.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공간에서 기쁨을 찾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걸 깨닫게 된단 말이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영영 못 닿을지 몰라도, 인생을 돌이켜보면 단 1초도 괴로움에 시간을 낭비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행복은 장소에 있는 게 아니라오. 우리가 쉬는 모든 숨에 깃들어 있지. 그러니까 숨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셔야 해." - P371

생물학이 뭐라 가르치든 간에, 누군가를 진정 살아 있게 하는 건 혈관 속의 피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었다. 목적을 잃어버린 게이신은 자신이 아직도 숨 쉬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이것이 인간의 기묘한 점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을 때도 우리의 일부는 죽기를 거부한다.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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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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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밝은세상'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투 오브 어스>는 전문 사기꾼 '메그 윌리엄스'와 그녀를 10년간 추적해온 저널리스트 '캣 로버츠'의 이야기를 두 여성의 시점으로 교차해 들려준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중심으로, 두 여성의 십 년에 걸친 추격전은 피해자와 가해자, 복수와 정의의 경계를 끊임없이 묻는 치열한 심리전으로 펼쳐진다.


미니밴에서 잠을 자고 피트니스센터에서 샤워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 메그, 성폭행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캣, 코리로 인해 꿈을 잃고 학교를 떠난 크리스틴, 론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잃고 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난 로지 등 작품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돈과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피해를 입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인물들이다. 작품은 이들이 겪는 폭력과 불평등을 조명하는 동시에, 메그와 캣을 통해 생존과 저항의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메그는 사기라는 무기를, 캣은 진실 폭로라는 방법으로 세상에 맞선다.

코리를 시작으로 메그는 십 년 동안 여러 도시를 떠돌며 여성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찾아다닌다. 뛰어난 사기 실력으로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인생을 회복 불가능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녀의 표적은 모두 여성을 착취하고 약자를 괴롭히지만, 권력과 돈으로 법망을 빠져나간 인물들이다.

십 년 전, 수습기자였던 캣은 메그의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섰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캣이 증오하는 대상은 가해자인 네이트가 아니라 오히려 메그였다. 왜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메그를 더 증오할까?아마 캣에게 메그는 '그날의 시작'이자 자신의 삶을 무너뜨린 불행의 원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법적으로 네이트를 단죄할 수 없었던 캣은, 결국 분노의 화살을 메그에게 돌려 그녀를 추적하며 자신의 상처를 통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메그를 쫓으면 쫓을수록 캣은 흔들린다. 메그가 표적으로 삼은 인물들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그녀의 행위를 단순한 범죄로만 규정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그의 표적이 악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방식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법이 외면한 악인들을 대신 응징하는 메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의란 무엇이며 복수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고, 그때마다 이전의 장면들이 새롭게 해석되었다. 메그가 과연 복수를 성공할 수 있을까? 캣은 메그를 믿게 될까? 어떠한 방법으로 론에게 복수할까? 등 모든 질문의 답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드러나 끝까지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 론에게 복수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사기를 벌인 메그나, 트라우마를 안고 메그를 10년간 뒤쫓은 캣 모두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을 만큼의 인내력이 없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메그와 캣, 두 여성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장을 통해 '정의'와 '복수'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연기해온 수다한 인물과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겹겹이 쌓인 때를 벗겨낼 수만 있다면 이곳을 떠날 때와 별반 달라질 게 없는 사람이었다. - P24

남자에게 기대서 얻는 안락은 필요 없어. 너와 내가 힘을 모아 바라는 걸 쟁취하면 돼.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어.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무서울 게 없지. - P51

"저에게는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고통 없는 삶은 없으니까요. 암울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힘껏 헤쳐나갈지 아니면 맥없이 주저앉을지는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 P59

"당신은 꿈이 없었던 게 아니라 도중에 잃어버린 거예요. 누군가 당신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가로막았을 수도 있죠. 한 번뿐인 인생을 꿈도 없이 산다는 건 너무 허망하잖아요. 그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한 삶을 살아봐요 - P367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부터 나에게는 고향이 사라졌어요.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줄곧 어떤 환영 같은 감정에 휩싸여 살았어요. 그 감정이 내 삶의 질서를 다시 찾아줄 리셋 버튼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이제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영을 따라잡는 행위를 그만두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요."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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