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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출판사 '든'에서 리커버 출간기념으로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제본서평단 #협찬

《벼랑 위의 집》은 판타지의 옷을 입은 우리 시대의 우화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책 한 권에 잔잔하고 깊이 있게 스며들어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라이너스와 아서의 대화이다. 두 사람은 마치 창과 방패 같았다.
라이너스는 규칙은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마법적 존재들과 비마법적 존재들이 동화되어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아서는 그러한 규칙은 아이들을 잠재적 위험으로 보기 때문에 만들어졌으며, 아이들은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면 마르시아스 고아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아이들을 대했을까? 두 사람의 주장은 모두 설득력이 있었고, 모두 공감이 되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관점은 다르지만,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안전과 자유, 질서와 사랑, 사회와 개인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닐까.
'다름'이 곧 '위험'이 되는 사회에서, 이 소설은 '이해'와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라이너스는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름'을 두려움이 아닌 '개성'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아서를 통해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세상이 두려워한 존재들이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도 용감하게 나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지나쳤던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또한, 편견이 만연한 현실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였다.
"집이란 그 어디보다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우리도 그렇지, 얘들아? 우리 집에선 우리들 자신이 되잖아."
마르시아스 고아원의 아이들은 '위험한 존재'로 불린다. 그러나 아서와 함께하는 고아원에서는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적그리스도라는 무시무시한 꼬리표를 단 루시조차, 그곳에서는 그저 한 아이로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진정한 집, 진정한 소속감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것이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집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다시 보면 처음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숨어 있었다. 라이너스가 한 달의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듯이 말이다.
"아끼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해야 하는 일만을 합니다. 애착을 형성하는 것과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애초에 그렇기 때문에 고아원에 있게 된 거고요. 아이들이 밤에 허기진 배로 자리에 눕는다거나, 몸이 닳도록 착취당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아이들을 일반 아동들과 격리한다 해서 취급마저 다르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모든 아이들은 그... 성향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아낌없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 P61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 해. 두려움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혐오로 바뀌고. 사람들은 섬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워서, 그 애들을 혐오하는 거야. 이런 이야기, 처음은 아니잖아?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니까." - P98
"집이란 그 어디보다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우리도 그렇지, 얘들아? 우리 집에선 우리들 자신이 되잖아." - P168
"사람들이 흑백으로 나뉘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벗어나지 않고 한 길만 갈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난다고 해도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예요." - P241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향한 편견만을 마주하며 살고 있어요. 그렇게 자라면 오로지 편견만을 아는 어른이 되고 말겠지요. 당신마저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루시가 예상과는 달랐다는 건 당신이 이미 머릿속에서 그 애가 어떤 아이일 거라고 재단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변화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편견과 싸우겠습니까? 편견을 그대로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P248
"하지만 비눗방울 속에 갇혀 살기란 참 쉬워, 반복되는 일과는 평온을 주거든. 그러다가 비눗방울이 터지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면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게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차마 믿어지지 않는 거야. 심지어 겁이 나기도 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시 그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기도 하지. 나 역시 그 비눗방울 안에 존재했던 게 사실이고."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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