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하고 낮에 자겠다는 말을 이렇게 멋지게 하는구나. 시인의 재능이란!



Cut if you will, with Sleep‘s dull knife,
Each day to half its length, my friend, 

The years that Time takes off my life,
He‘ll take from off the other end!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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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준비한 꿈은 모두 매진입니다!
오늘도 잠드는 길에 저희 매장에 들러 주신 고객 여러분.
금일 준비한 꿈 상품이 전량 소진되었으니,
내일 다시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가게는 연중무휴,
매일매일 좋은 꿈을 잔뜩 쌓아 두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부부가 2주가 지나도록 태몽을 찾아가지 않았지. 그래서 부부의 친한 친구나 양쪽 부모님에게 주려고 했었는데, 그들도 오지 않아서 결국은 아내쪽 가장 친한 친구의 친동생에게 태몽을 줬었지. 친구 동생은 미혼에다가 부부를 본 적도 없는데 태몽을 꿔서 적잖이 당황했을걸세. 나도 정해진 기간 내에 전달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이 손님은 항상 이 시간쯤이면 눈꺼풀이 무거워졌었지. 하지만 나이가 드니 잠이 많이 줄어드셨어. 요즘엔 도통 꿈을 사러 오시지 않아. 여긴 내 추억이 깃든 곳이야. 예약해 놓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분들은 눈꺼풀을 아주 살짝 손가락으로 쓸어주기도 하는데, 한창 중요한 일 중에 깜빡 졸아버리면 곤란하니까 함부로 손대지는 말아 주렴."

푸드트럭 앞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머그잔에 담긴 양파 우유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손님들은 노곤한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마시고 있는 반면에, 꼬마들 몇몇은 한 모금 마시더니 죽을상을 했다.
한 꼬마는 바닥에 우유를 일부러 질질 흘리고 있었다.

"게임을 하느라 안 자는 사람들, 스마트폰을 보느라 늦게 자는 사람들, 애인과 통화를 하느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모두들 당장 즐거운 일을 하느라 자는 걸 미루는 거잖아요?"

"주문한 꿈을 제대로 수령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이 지켜주셔야 할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매일 밤 꼬박꼬박 최대한 깊은 잠을 주무세요. 그게 전부랍니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3배 이상 뛰어넘었습니다. 깎아지른 인구 절벽 시대, 올해 입영 군인의 수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입니다. 이에 따라 병무청에서는 만 30세 미만의 전역 군인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재실시하여 재입대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드림 페이 시스템즈 Ver4.5! 가게 운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들어 있는 통합 프로그램이야. 특히 꿈값 정산 시스템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있어."

"하지만, 잊지 마세요. 손님들께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이겨내며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죠."

"이번 주 복권 당첨 번호를 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손님. 그런 용도로는 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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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에서 겪지 못할 일들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꿈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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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계획의 달인 : 계획 전문가의 노트 엿보기
임철순 / 다윗컨설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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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전자책이라 해도 어이가 없는 편집. 문장마다 어미의 존칭이 다를뿐더러, 한 번도 글을 검수하지 않았음이 분명한 황당한 오타의 향연. 내용도 편집 수준과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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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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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를 통해 처음 접한 글이다. 처음에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이라 착각했는데, 알고 보니 2019년 6월 분게이쥬에 실린 글을 뉴요커에서 10월에 가져간 거였다. 하루키 작품의 영어 번역가인 필립 가브리엘의 실력은 탁월하지만 한글로도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2020년 드디어 한글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었다.

길지 않은 글이다. 잡지 기고문이라 보면 긴 축에 들고, 책으로 보자면 다소 아쉽다. 서문으로 이 글이 있고, 이어지는 소설이나 수필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미련에 괜히 책장을 매만지게 된다. 삽화가 가오 옌의 부드러운 그림이 아쉬움을 달래 준다. 글은 과거를 바라보는 쓸쓸함으로 가득한데, 아이와 고양이와 바다의 그림을 보면 이 또한 지난 일이며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 알려주는 듯하다.

사실 글에서 중요한 건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로 시작하니 술술 풀린 글이라고 하루키는 말하지만, 아마 그건 이 글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게 고양이라 그렇지 않나 싶다.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거나,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비하여.

길이에서 알 수 있듯 하루키는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의 삶을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짚어나갈 뿐 어느 부분-중일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에 대해 깊이 파고들거나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알린다. 이 글에는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사실 가족사라는 게 그렇다. 구전설화나 다름없는, 전하는 이와 듣는 이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작은 역사. 이 책은 그만큼 사적인 이야기다.

글의 마무리에서 하루키는 우리 모두를 이름없는 빗방울에 비유한다. 수많은 빗방울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그래도 각자 나름의 감정과 역사가 있는, 그리고 이 역사를 보존할 의무를 지닌 존재. 그렇다면 하루키는 의무감으로 이 글을 작성했는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머뭇거림의 이유를 추리하려 하면 문득 부끄러워진다. 작가라는 개인을 너무 가까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지아키의 아들이 아버지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림이 예쁘고, 글은 담백하다. 두께는 얇지만, 한 개인의 삶이라 생각하면 딱 알맞은 크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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