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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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를 통해 처음 접한 글이다. 처음에는 뉴요커에 기고한 글이라 착각했는데, 알고 보니 2019년 6월 분게이쥬에 실린 글을 뉴요커에서 10월에 가져간 거였다. 하루키 작품의 영어 번역가인 필립 가브리엘의 실력은 탁월하지만 한글로도 읽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2020년 드디어 한글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었다.

길지 않은 글이다. 잡지 기고문이라 보면 긴 축에 들고, 책으로 보자면 다소 아쉽다. 서문으로 이 글이 있고, 이어지는 소설이나 수필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미련에 괜히 책장을 매만지게 된다. 삽화가 가오 옌의 부드러운 그림이 아쉬움을 달래 준다. 글은 과거를 바라보는 쓸쓸함으로 가득한데, 아이와 고양이와 바다의 그림을 보면 이 또한 지난 일이며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 알려주는 듯하다.

사실 글에서 중요한 건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로 시작하니 술술 풀린 글이라고 하루키는 말하지만, 아마 그건 이 글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게 고양이라 그렇지 않나 싶다.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않거나, 고양이를 버리러 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비하여.

길이에서 알 수 있듯 하루키는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의 삶을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짚어나갈 뿐 어느 부분-중일전쟁이나, 태평양 전쟁 등-에 대해 깊이 파고들거나 새로운 의견을 개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알린다. 이 글에는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사실 가족사라는 게 그렇다. 구전설화나 다름없는, 전하는 이와 듣는 이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작은 역사. 이 책은 그만큼 사적인 이야기다.

글의 마무리에서 하루키는 우리 모두를 이름없는 빗방울에 비유한다. 수많은 빗방울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그래도 각자 나름의 감정과 역사가 있는, 그리고 이 역사를 보존할 의무를 지닌 존재. 그렇다면 하루키는 의무감으로 이 글을 작성했는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머뭇거림의 이유를 추리하려 하면 문득 부끄러워진다. 작가라는 개인을 너무 가까이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지아키의 아들이 아버지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림이 예쁘고, 글은 담백하다. 두께는 얇지만, 한 개인의 삶이라 생각하면 딱 알맞은 크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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