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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이석연 편저 / 와이즈베리 / 2015년 11월
평점 :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을 만나게 되면 하루의 의미가 새롭고 활기가 가득한 날을 보내게 된다. 비단 하루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그 글의 영향을 받아 기분 좋은 날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나서는 꼭 독서노트에 좋은 글귀를 적어 놓고는 한다.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도중에 그만두기를 몇 차례 거치고 나서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 독서노트의 장점이라고 하면 좋은 글을 짧은 시간에 다시 찾아 볼 수 있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글귀를 자주 봄으로써 또 다른 사유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사유는 곧 나의 성장과도 같은 것이므로 독서노트의 효과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적으로도 독서노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독서노트를 볼 기회가 있다면 이건 무척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 안에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인생 통찰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광의 독서노트에서 삶의 과정에서 고민하면서 얻어 낸 글들만을 묶어 놓은 독서 노트라면 배움과 통달의 경지를 훨씬 뛰어 넘는 수준의 에너지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이기에 조심스럽게 첫 장을 펼쳐보았다.
독서광이었기 때문일까? 먼저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공직생활을 한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띈다. 그 전에 남과 다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중학교를 졸업한지 6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사실과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김제 금산사에 들어가 22개월 간 세계문학, 동서양 고전, 철학, 역사서 등 400여 권을 정독한 발자취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전한다. 그러다보니 독서 노트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었다. 1부는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역사의 흐름,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모아놓았고, 2부는 리더의 중요성과 리더가 갖추어야 할 것과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모았으며 3부는 위기를 대하는 삶의 자세와 예술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모았다.
책 속에 많은 글들이 내 마음과 동화되어 물 흐르듯 읽혀진다. 그 중에서 마음에 깊이 다가온 글귀들이 있었으니 법과 독서와 글쓰기와 삶의 자세와 관련된 글들이었다. 법을 주제로 한 글귀에서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관행되어 온 잘못된 정치적 현실을 빗대어 얘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현 정치인들에게 올바른 정치를 하게끔 조언하는 것 같았고 독서와 글쓰기의 주제로 한 글에서는 가끔 독서와 글쓰기가 힘에 부칠 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으며, 삶의 자세와 관련된 법정스님의 글에서는 앞으로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삶의 기준을 어떻게 세워가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어기기 때문이다. -사마천,<사기> 상군열전”
“헌법은 정치라는 위성이 운항할 수 있는 궤도를 마련해 준다. 헌법에 의해서 마련된 궤도를 이탈하는 정치는 이미 헌법적 상황이 아니다. 폭력적 상황에 다름 아니다. -허영, <한국헌법론>”
“임금은 존귀한 존재지만 그보다 더 존귀한 것은 천하 민심이다. 천하 민심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심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오직 백성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정도전, <조선경국전> 서문 ”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서부터 손대면 좋을까 망설일 때 지금 그대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나는 것에서부터 쓰기 시작하면 된다. -헨리밀러”
“가슴 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 -추사 김정희 ”
“비록 책을 읽을 수가 없다 하더라도 서재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정조”
“크게 버리면 크게 얻을 수 있다. 적게 버리면 적게 얻을 수밖에 없다. 어중간하게 버리면 어중간하게 얻는다. 이것이 소유의 법칙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다 차지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 가진 것만큼 속박을 당한다. -법정스님 법문에서 ”
수많은 책과 신문기사와 여행지에서 만난 표어나 문구 등에서 뽑아낸 명문장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니 매우 큰 영광이었고 독서하는 내내 지금 내가 꾸준히 쓰고 있는 독서노트 방향성에 대한 점검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열정과 내공이 내재되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기록들을 보며 깊은 안목을 키우게 되었으며 새로운 생각의 길을 창조해 내는데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나에게도 몇 십 년 후에 저자와 같은 여운이 짙은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도 앞으로도 독서와 독서노트 기록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