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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5월
평점 :
전기물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네트≫를 알게 되었다. ≪마리 앙투네트≫는 나에게 전기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같게 했다. 대부분의 전기물이 우선 재미없고,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말도 안 되는 업적 위주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소설보다도 스릴 있고 박진감이 넘치며 세밀한 묘사는 대상 인물에 대한 믿음이 가게 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새로 나온 책을 모았다. ≪조 셉 푸세≫, ≪발자크 평전≫은 이미 읽었고,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절반 정도 진도가 나아갔다. ≪어제의 세계≫는 나의 책무더기 속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튼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16세기 중반의 인물을 다시 20세기에서 되 살려 놓았다. 생명을 불러 일으켜 세워 나에게 다가오게 하고 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전체적으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광신도 칼뱅, 그리고 그에 어설프게 저항하다 화염 속으로 사라진 세르베투스, 관용주의자 카스텔리오이다. 엄격한 광신도 칼뱅에게 점잖게 충고하다 결국에는 죽게 되는 카스텔리오에게 저자는 많은 호감을 보낸다. 카스텔리오는 이 책의 제목과 부합되는 내용을 증언한다. 결국 집과 직장을 잃고 떠돌다가 객사하고 만다. “ 당신의 제자들조차도 나의 엄격한 생활 태도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을 품을 수 없다고 여러 번 인정했다. 그들은 나의 학설이 당신의 학설과 다르기 때문에 내가 잘못이라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 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나에 대해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증오와 분노에서만 생겨난 고발을 위해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칼뱅 당신은 정녕 모르는가?”(250p)
박정희 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도 나온다. 지나치게 억압하고 굴욕적인 숭배를 원하는 칼뱅의 엄격한 요구는 이해하기 힘들게 만든다. “도덕 경찰관은 여자들의 옷을 살펴보고 너무 길거나 짧지는 않은지, 지나치게 주름을 많이 잡지는 않았는지, 위험스럽게 파이지는 않았는지를 검사했다. 또 여자들이 머리를 너무 인공적으로 틀어 올리지는 않았는지 검사하고, 손가락에는 반지를 몇개를 꼈는지, 신발장에는 구두가 몇 컬레나 있는지 세어보았다.”(79p)
또한 서로 고발하고 감시하며, 칼뱅의 절대성에 다른 의견을 말하면 가차 없이 처벌하고 말았다. 이 책의 소제목도 ‘금지, 금지, 금지’이다“국가가 시민들은 테러 상태에 잡어두면, 자발적인 밀고라는 역겨운 식물이 번성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예에 위반되는 일을 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기 위해 모든 시민이 다른 시민을 감시하고 홀겨 보았다. ‘두려움에서 나온 열성’이 모든 고발자들을 초조하게 몰아갔다.” (80p)
그렇게 감시와 고발 처벌의 능사라도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칼뱅은 이 야만적인 사형집행을 통해 제네바 사람들의 자유로운 감정을 파괴하지는 못했다.”(86p)
“칼뱅은 평범한 것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것을 희생시키고, 모순 없는 노예근성을 위해 창조적인 자율을 희생시킨 것이다.” (91p)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만 국면 타개라는 것이 있다. 즉 어떤 우연적 계기로 자기의 의도한 바를 치고 나가는 것이다. “독재자의 개인적인 후광을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분명한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마침내 그런 계기가 찾아왔다. 바로 페스트의 창궐이다. 성직자들은 그들 환자들을 위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칼뱅도 마찬가지다. “그 목사들이 스스로는 가장 작은 희생마저 치를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노와 조소가 섞인 기분으로 주시하면서 비웃었다.”(97p)
마침내 자유로운 양심, 저자가 심도 있게 그리고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카스텔리오가 등장한다. 폭력에 대한 양심,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서로 적대자인 칼뱅과 카스테리오의 초상화를 나란히 놓고 보면, 훗날 정신적인 영역에서 그 토록 첨예하게 부딪치게 될 대립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칼벵의 얼굴은 긴장 그 자체다. 초조하고 고집스럽게 분출을 노리고 있는, 경련적인고 병적인 응집된 에너지를 보여주는 반면 카스테리오의 얼굴은 온화하고 침착하게 기다리는 얼굴이다.”(100p)
“카스텔리오의 성격은 자만하거나 자신감에 넘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한 번도 칼벵처럼 자신의 의견을 유일하게 올바른 것으로 여기고, 어떤 일에 대해서나 자신의 견해를 완벽하고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여지로 여긴 적이 없었다.”( 107p)
물론 카스텔리오 이전에 신학의 돈키호테라 불리는 세르베투스가 등장한다.
저자는 세르베투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 명은 자주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주 우연한 이름을 골라서 후세의 기억에 뚜렷하게 새겨놓곤 했다. 미겔 세르베투스도 특별한 재능 덕이 아니라, 오직 끔찍 말로 인해 기억할 만한 인물이 되었다.”(123p)
그런데 단 한 번도, 어느 누구도 용서한 적이 없었던 칼뱅은 이를 화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칼뱅의 증오는 그의 성격의 다른 면들처럼 완고하고도 조직적이어서 곰 사냥꾼 같은 루터나 거칠고 촌스러운 파렐의 분노처럼 사납게 솟구쳤다가 다시 가라앉는 불꼿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증오는 냉혹하고 날카롭고, 예리한 광석 같은 원한이었다. (135p)
이 책은 독일권의 유명한 번역자인 안인희로 1998년도 판을 재판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주 작은 흠이라면, 너무 한 문장에 명사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어설프고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떤 마사지 없이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의역이 아닌 직역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게 번역한 문장도 보였다. 그리고 책 본문을 한글판에 옮겨 적으면 붉은 밑줄을 긋는 단어가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투르농의 추경과 오리 재판관은,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모든 이단자 중에서도 최고의 이단자인 칼벵의 사랑스런 열성 덕분에 이단자 세르베투스에 대한 이 결정적인 증거물을 손에 쥐게 되자, 우선 큰 웃음부터 터뜨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친 것- “투르노의 추경과 오리 재판관은,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모든 이단자 중에서도 최고의 이단자인 세르베투스에 대한 이결정적인 증거물을 손에 쥐게 되자, 우선 큰 웃음부터 터뜨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칼벵의 사랑스런 열성 덕분이었다.”(144p)
아무튼 누가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탄압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된다. 결국에는 세르베투스는 칼뱅과 다른 신학적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처형되었고, 칼뱅은 카스텔리오를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