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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우리
수산나 알라코스키 지음, 조혜정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헝가리를 배경으로 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이 세 가지 거짓말>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였다. 어느 책은 읽고 나서도, 다시 대하게 되면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당황하게 되는데 이 책은 아직도 여운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돼지우리>도 같은 유럽권이고 성장 소설이라 하여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레나라는 주인공 소녀의 눈에 비친 그들의 삶의 고난의 역사는 처절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본 한 편의 가정 몰락사의 보고서 같은 책이라 많은 인용을 해 보았다.
“라디오에서는 아바의 <워터루>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289P) 아바를 검색해 보니 이 노래가 유행한 것이 1975년경 이었다. 우리에게 핀라드 사우나로 알려진 그 나라가 그렇게 가난했었는가 하는 의문 때문에 검색해 본 것이다. 나는 막연하게 스웨덴을 비롯한 그 쪽 동네가 복지 천국이요 잘 사는 부자나라로만 알고 있어서 의아해 했다. 주인공 뿐 만아니라 이 책에서 묘사된 핀란드는 우중충하고 빈곤의 삭막한 이미지였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핀란드의 레나 가족이 새로운 삶을 찾아 스웨덴에 정착하면서 겪는 고난이 아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처럼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주인공의 가족사는 처참하기 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레나의 부모는 절망 끝에 알콜에 탐닉하게 된다.
“아빠는 <만 송이 붉은 장미>라는 스웨덴 노래를 배웠다. 그는 곧 앞으로 고구라질 것 같은 자세로 그 노래를 독창했다. (중략) 엄마는 취해서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284P) 부모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정상이라면 레나의 고통과 염려는 줄어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은 그에 따른 상승작용으로, 그녀의 엄마는 한 술 더 떠서 더욱 마시게 되고 아이들에게는 식사도 제대로 차려 주지 못한다.
그들의 주변의 이웃도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가난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자포자기의 길로 빠져든 것이다. “오쎄 엄마는 독한 술을 마신 것을 다 게워 내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녀의 의치가 변기 안에 빠져 버렸다.(중략) 손을 변기 속에 넣어 휘젓기 시작했다.”(286P)
“술에 잔뜩 취했지만 정신은 있는 상태의 오쎄의 엄마가 우리 방에 들어와 잘 자라며 내일은 또 일상처럼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혀 짧은 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술 취한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벽 너머에 있는 저들을 우리는 증오의 눈길로 바라봤다.”(287P)
레마 술에 취해 널 부러져 있는 부모와 이웃들을 보고 조바심과 슬픔 속에서 보내지만 간혹 희망의 미소도 잃지 않는다. 수영도 열심히 하고 리따라는 친구와 일상을 통해서 희망을 키워나간다. “나는 수영에 집착했고 죽도록 수영을 했다.”( 309P)
그런데 술에 취하며 당연히 폭력이 따르듯이 부모의 욕설과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레나에게도 폭력을 서슴없이 행사한다. “아빠는 나를 내 침대 쪽으로 내몰았다. 그러곤 침대 위로 나를 내동댕이쳤다. 내 옷을 찢고는 혁대를 가지고 와서 온몸에 매질을 했다.”(308P)
이 책을 들면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부모는 ‘아빠의 팔과 다리는 고무 팔, 고무다리에 불과했다.’ 로 묘사할 정도로 늘 술에 취해 살았다. 우리의 주인공 레나는 항상 약간의 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어야 했다. ‘25외레를 항상 수중에 넣고 있어야하는 레나’ 왜냐하면 그녀의 부모가 술에 취해 자해를 한다든가 싸우다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즉 응급차를 공중전화로 부르기 위해서 동전을 수중에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절망은 어떻게 끝나는가? 우선 가장 문제가 되는 알콜은 어떻게 극복이 되는가?
“그래서 아빠가 바지에 오줌을 싸기 시작하면서 음주기간이 끝났다. 아빠의 몸에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할 것이고 거대한 공룡들이 아빠의 영혼을 짓밟을 것이다.”(334P) 결국 알콜 치료 병원의 입원을 거듭하다가 섬망증에 시달려서야 레나의 가정은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직 여름이 되어도 휴가를 갈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